인삼으로 유명한 충남 금산 진악산 입구에 있는 세 우거진 지 무려 천년이 넘는 오래된 고찰입니다.
볼 일이 있어 대전을 방문했다가 금산까지 들르게 됐는데 지방도로변 삼거리에 세워진 보석사를 가리 키는 이정표에 갑자기 시선이 끌렸습니다.
일단 차를 세우고 기록을 위한 사진을 찍은 후에 보 석이란 이름이 주는 강렬한 속세의 물욕이 궁금증까지불러일으켜서 마침 볼일은 다 본터라 여유도 있으니 세상 어느 누구랄 거 없이 모두들 흠모하며 탐을 내는 이름, 보. 석. 사. 가. 는. 길로 차 키를 돌 렸습니다.
내비게이션을 작동하지 않아도 주변에는 대안학교 인 간디학교들도 있고 또 지방도로와 보석사 주차 장이 바로 인접해 있어서 가는 길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사찰 경내 밖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니 눈앞에 키가 아파트 5층 높이는 족히 넘어 보이는 전나무와 은행나무들이 숲길 쪽으로 100m 정도 길게 이 터져 있어 풍경만 으로도 보석사란 이름값을 충분 히 할 만했습니다.
보석사 경내로 이어지는 돌계단 건너편에 신령한 기운을 보였다 해서 마을 사람들이 신목이라 부르 는 또 하나의 보석, 수령 1000살의 은행나무가 40m나 되는 거대 한 몸집을 자랑하며 우뚝 서있습니다.
크기와 나이로 보아 과연 신령스러운 기운을 느낄 만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육중한 은행나무 허리에 는 다양한 색상의 종이에다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많이도 적은 수많은 중생들의 기원들 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불길한 앞날까지도 예측한다는 신령스러운 기운을 가진 신목이라지만 천년의 억 겹이 지나는 동안 수많은 중생들이 앞다퉈 매달은 욕심의 무게를 과연 감당할 수 나 있을까 한편 근심스러웠지만,
사찰안도 궁금해서 의문부호만 떨궈놓고 내부로 들어서는데 경내 입구에서 주지스님과 두어 분의 보살님들 이 상차림을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서 주지스님께 예불로 인사한 후 연유를 물어보니 금강역사라는 보살을 향한 제를 드리려고 준 비 중이라며 친절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주지스님이 나와 비슷한 연배인 듯해 보이고 인물 도 정갈하면서도 편한 인상을 주길래 친근함의 표 시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금강역사가 누군지 조 심스레 물어봤습니다.
주지스님은 즉답은 하지 않은 체 대체 보살님은 뭐하는 사람이시요 물어보는 듯이 의아한 표정을 짓 길래,
어색함을 덜어 보고자 실없이 웃으며 보석사란 이 금이 특이하기도 하고 평생 부처님을 향해 소원 하 시던 어머니가 지난해 돌아가셨는데 의식이 있어 실 때 절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었는데 결국 그 말씀을 들어 드리지 못해 절 앞을 지날 때마다 걸려서 그냥 들렀다고 변명을 했더니,
스님은 금강역사는 부처님의 호의무사요 절을지키는 수문장이라며 간단명료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근심은 병이요, 오늘은 중생 구제를 위한 행사니 잘 오셨다며 특별한 생각이 들게끔 환대해 주시길래 기회가 되면 또 찾아뵙겠다는 답사를 남기고 절문을 나섰습니다.
보석사를 들르기 전엔 근심보다도 염려스러운 일이 한 가지 있기는 했는데 뜻하지 않게 들른 짧은 사찰 행에서 얻게 된 주지스님이 주신 보석이 염려의 무 게를 다소나마 가볍게 만들어줘서 기분 좋았습니 다.
다음번 대전행 때에도 보석사는 꼭 들려야겠습니 다.보석사를 품 안에 안은 배 후산인 진악산은 석동 지라는 물빛 좋은 호수도 중턱에 있어 산행 하 기에도 좋은 곳이니 산 좋아하는 친구들과 같이 와야겠습니다.
뭐든지 처음 해보는 일에는 긴장도 되고 흥분도 되고 어지간히도 신경 쓰게 만드네요. 이것저것 실수는 없을까 수정하느라 손도 많이 가구요.
사실 블로그(아직은 남 앞에 내가 쓴 글을 내세우기 가 두려워서 카카오스토리에만 올렸지만)와 같이 공개된 곳에 글을 써보는 건 처음 하는 일이라서 신경이 꽤나 쓰입니다.
맞춤법이며 띄어쓰기 등에 잘못이 많아서 나를 모 르는 다른 사람들이 보게 될 경우 엉망이라고 눈살을 찌푸리진 않을까 걱정도 크고 해서 공개된 장소 에다 글 쓰는 것 을 망설였는데 기꺼이 독자가 돼주 겠다는 절친한 친구들이 보내준 격려의 카톡에 용 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금강역사님이시여. 재주도 능력도 별로 없는 한낱 중생의 못난 욕심을 부디 굽어 살펴주시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