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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 왜 그대만
by
김운용
Sep 22. 2021
아래로
새벽
4시 반이다.
아직 통증이 남아 있다.
며칠
전 나이차가 얼마 안나는 조카딸과 오래간만에 경북 봉화에 있는 청량산으로 산행을 다녀왔다.
추석 연휴라 가는 곳마다 차가 막혀 운전만 다섯 시간 걸려서 청량산에 도착해 휴식 없이 바로 산행을 시작해 힘은 들었지만 서울에선
보기 힘든
하늘빛과
구름 색들이 눈을 밝게 해 주었으며
화장도 안 하고 먼 산행길을 주저 없이 따라나선 예쁜 미인 조카딸과의 산행이라 더욱 기분 좋았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서울로 올라온 다음날
딸을 데리고
장 보러 갔다 짐을 차에 싣는데 갑자기 허리에 통증이 오며 펴지질 않았다. 억지로 참고 운전을 했는데 점점 통증이 심해져 병원을 가려니 연휴라 진료를 보는 병원이 없어 약국에 가 근육이완제와 진통제를 샀다.
무리한 산행과 장시간에 걸친 운전으로
허리 근육이 심하게 경직이 온 것이라 이완제를 먹었더니 초저녁부터 잠이 들어 새벽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통증도 있어 귀찮아서 잠을 더 끌어안고 누워있으려다 담배가 당겨서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통증이
있기 전 평소 동작으로 일어나다 보니까 허리 끝이 찌릿하게 아
파왔
다.
어차피 곧 아침이라 잠을 끝내고 이어폰을 꽂은 채 슬리퍼만 신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시원
했다. 아무도 없는 새벽길 옆 철길로 전철 1호선 첫차가 지나간 자리에 어둠이 남았다.
어둠 옆으
로 세워둔 가로등
이
길게 늘어선 길을 따라가며 석 달 가까이 끊었던 담배를 한 개비 꺼내서 물었다. 끊었다 다시 피게 되면 흡연욕구가 증가해 금연 이전보다 더 많이 피우게 된다.
희뿌옇게 허공으로 날아가는
담배연기 사이로 비 맞은 새벽달이 비구름 지나간 끝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숨겼다 반복한다.
통증도 잊어버리고
걷다 보니 가로등 아래 달맞이꽃이 노랗게 빛이
나는게
눈에 띄었다. 비 맞은 물기가 아직 남아 가로등 불빛에 반짝반짝거리는 게 마치 날보고 반가워 웃는 것 같아 자리에 서서 잠깐 내려다보았다.
허리를
구부릴 때 찌릿하게 전해오는 통증을 참아가며 달맞이꽃의 노랗게 웃는 얼굴을 근접 촬영했다.
달맞이꽃을
볼 때마다 신비롭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꽃들은 햇빛이 쏟아지는 한낮에 꽃잎을 활짝 펴는데 왜 달맞이꽃은 새벽에 꽃을 피우는 건지 사연이 궁금했다.
꽃말이 그리움이기에 그리운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수줍어서 아무도 보지 않는 밤부터 새벽까지 만 꽃피라는 사연 그대로 생리가 만들어진 거라면 그 운
명
이 정말 기구하다.
홀로 걷는 새벽길.
세 번째로 빼어 문 담배연기만큼이나 사색도 길어졌다.
가로등
밑 내 그림자에도 달맞이꽃처럼 외로움과 그리움이 짙게 가라앉아 있다.
인간이 정한 규칙과 기준을 지키려
애쓰다 보니 더욱 그립고 고독하다.
자기만의 이유가 있음을 자유라 하는데
혼자
있을 땐 아직 펴보지 않은 자유의 날개를 펴보려 꿈을 꾸곤 했었다.
파악!
갑자기 가로등이 꺼지면서 잊었던 허리의 통증이 찌릿하게 얼굴로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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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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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소설을 쓰고 있는데 종결을 하게 될는지 알수없다. 그래도 다들 휴식에 젖는 시간에 난 소설을 쓸거다 나만의 탈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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