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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해서 좋은 사람들
공덕동에 비 내리는데
by
김운용
Oct 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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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어젯 밤 하얀민들레.
참 사연도 많았던 곳인데 한번 떠나니 일부러 찾지않으면 자주 올일도 없거니와 이젠 어쩌다 들르게되도 변해버린 것들때문에 예전같진 않다.
그래도 모처럼 가게되면 예전 생각에 아직 남아있는 추억의 흔적을 찾아 이골목 저골목을 둘러보게된다.
경의선 철길아래 철길벽을 타고 옆으로 쭉 이어진 갈매기구이 집들이 있었다. 둥그런 드럼통위에 둥글게 파인 홈에 달걀풀어 붓고 가운데 불판위에 올려진 가마솥위에선 갈매기살이 오그라들며 익어갈때면
마셔 여기 저기서 술잔 부딪치는 소리에 밤 가는줄 몰랐다.
그때 마포의 밤엔 낮보다 사람이 더 많이 모여 들었다.
일본식 가게문을 오랫동안 수리하지않고 지켜와 어릴적 어머니가 하시던 쌀가게 점빵 여닫이문하고 똑같이 생겨서 정깊어 일차 이차도 아쉬워 삼차 오늘은 이걸로 끝이다 찾아간 천원에 한장 돼지껍데기집.
밤이면 포장마차거리에서 들려오는 술에 젖어 끝까지 이어지지도 못하는 노래소리들,
아파트단지로 바뀐 뒷골목 허름한 단골 밥집들,
마포동태탕, 콩나물해장국, 황태해장국집, 중국집 마포성, 스트릿파이터 출신 사장님 광화문석쇠불고기집, 당구장, 비밀접선지 정우빌딩 지하 쬐그만 찻집,그중에 청국장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던 집,
집회만 끝나면 모처럼 만나는 동지들과 헤어지기 서운해 몰려간 공덕시장 부침개 전(煎)집들,
복직의 꿈을 꾸며 한강물따라 달려갔던 마포대교아래 고수부지 길,
이사갈 곳 찾아 올라간 도화동 산꼭대기,
수배중인거 알고 경찰이 주변에 있으니 자신의 건물옥상으로 피하게 도움주신 한량끼많았던 건물주 사장님, 작년에 세상을 뜨셨다.
동도공고 뒷편 먼저간 절친이 살던 옥탑방 그아래까지, 그가 가고 없어 한동안 생각나 몇번 찾아왔었는데 지금도 그집은 그대로 있다.
배고플때 제일 먼저 찾았던 분홍립스틱 그녀가 있는 집 명동칼국수를 끝으로 들렀다. 만두칼국수를 주문했더니 모처럼 비빔밥도 드셔보라며 공기밥에다 푸짐하게 담은 소고기비빔밥 재료를 따로 가져왔다.
주방으로 돌아가 날쳐다보며
내가 알던 공덕동 사람들 절반은 떠났다며
한숨을 내쉰다.
점심시간이 삼십분 정도 지났지만 홀안에 손님은 나밖엔 없다.
그래도 마포는 사람이 몰리는 곳이고 여전히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은 많은데도 여기는 없다.
큰걸 건너 재개발땅에 새로운 건물에 새로운 사람들이 새간판을 내걸고 그리로 사람들을 부르고 있어 내가 알던 낡은 건물 허름한 골목 밥집들 술집들 빈자리가 많아진건데 코로나 방역 규제로 더욱 찬바람이 불어와 그들
의 떠남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남원추어탕집 노부부는 장사도 안되고 나이들어 더는 일하기 힘들다며 핑계김에 떠났다.
절친했던 그들의 한숨소리가 남의 일 같지않아 나도 기분이 좋진않았다.
마포는 그래도 덜하다는데 다른 곳은 찬비가 더많이 내릴텐데 그만큼 더 우울할거다.
차를 세워둔 장소인 지금은
농협건물이 들어선 예전 본사건물로 가려고 횡단보도에 서있다가 진짜 서글픈 장면을 목격했다.
ZUZU라는 맥주, 일식 전문점이 있는데 문은 굳게 닫히고 유리창에 수많은 포스트잇 메모들만 빼곡하게 붙여져 있었다.
나도 여러번 갔었고 고인과 약간의 친분도 있어 사정이 궁금해서 주변 아는 상가에 들어가 알아보니
스스로 목숨을 끊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추모의 글을 적어붙인 거라했다.
코로나 규제가 장기화되면서 매출이 크게 줄어 직원들 임금도 체불하게되고 심각한 고통을 겪어오다 자신이 살던 원룸마저 방을 빼 직원들 월급을 주고 나머지 모자란 돈은 지인들에게 빌려 정리해주고는 자신의 가게 지하 단칸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녀가 남긴 휴대전화엔 빚 독촉과 집을 비워달라는 채권자들의 문자 메세지들만 잔뜩 있었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기에 나도 담배한개피 꺼내 불붙여 창문아래 돌틈에 끼워 놓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인생 무상. 죽으면 두어시간도 안되는 분량의 인생의 드라마도 끝인걸
죽기전까지 그 얼마 안되는 짧은 시간 돈 돈 돈 물질에 끌려다녀야하는 내인생 참 부질없다.
죽는순간 그많은 돈도 값비싼 치장들도 단 하나 가져갈수도 없고 그토록 눈에 불을 켜고 열냈던 욕심도 연기처럼 사라져갈뿐이다.
사는 동안 인간의 맛 사람냄새 느끼며 맘껏 자유롭게 좋은 일하다 떠나고 싶다.
젊어서 한때 주류 도매유통업을 했던 경험이 있다. 94~5년경인데 거의 독점이라서 연매출 3억에 순이익도 절반에 가까워 그길로 쭉 나갔다면 부자가 될수도 있었다.
당시 상계동 20평대 아파트 한채가 2000만원대였다. 코피가 터지고 양말에 구멍날 정도로 박터지게 일했는데 결국엔 망했다.
그래서 오늘 이곳의 서글픈 이야기가 친분있는 분들의 사정이기도 하지만 나도 겪어본 일이라 더 서글퍼졌다.
공덕동 여기 참 사연많은 곳이다.
지금 공덕동에 비가 내리는데,
다른 날
내리는 비보다 더 촉촉한 기분이 든다.
저 비 맞으며 못다핀 ZUZU의 꽃도 다시 피어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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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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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고 있는데 종결을 하게 될는지 알수없다. 그래도 다들 휴식에 젖는 시간에 난 소설을 쓸거다 나만의 탈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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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진 말야. 나현이가 젤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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