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재는 우리 직장에 입사한 지 5년 차 되는 동료직원이다. 우리 지사로 전보 온 지 벌써 3년가량 지났다. 내가 입사한 지 35년 됐으니 그야말로 입사 연도별로 줄을 세워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후배다
성격이 워낙 서글서글해 우리 지사로 전보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이모 같은 여자 선 배들로부터 사윗감으로 점 찍힌 인기 남이다.
첫눈에도 호감이 갈 정도로 싹싹하고 얼굴도 잘생겼다. 나이는 30대 초반 물론 미혼이다.
옷맵시도 매우 좋고 멋쟁이다.
몸이 불편하거나 아웃사이더 동료들한테는 특히나 더 배려하고 세심하게 잘 챙긴다.
민원으로 출장 갈 때도 담배냄새를 지우려고 출장 가기 직전에 가글링을 한다. 민원인들에 대한 예의라며 잊지 않고 가글링을 한다.
선배들과의 관계도 처세를 잘하기 위해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성의를 다한다. 나이차 많이 나는 선배들과의 술자리가 사실 엄청 불편하고 재미없는 자린데 자진해서 참석도 하고 스스로 선배들 술자리까지 주선하는 대견한
친구다. 술 실력도 꽤나 세다. 술자리 매너도 좋다.
이렇게 씩씩한 석재가 한동안 표정에 힘이 없어 보여 이유가 궁금했지만 꼰대처럼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 같아서 물어보진 않았다.
근데 어느 날인가 석재가 표정에 힘이 없었던 이유를 나한테 털어놓았다. 8년이나 사귄 여자 친구와 아쉬운 이별을 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실연과 이별, 누구나 겪는 일이라며 위로의 말을 해주었지만 그땐 아무 말도 들리지 않고 아무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해줄 말은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여자 친구와 결혼 후에 살집을 준비하자며 의논하다가 입장차가 너무 크고 나중에 감정까지 상하게 되어 결국 헤어지기로 둘이 합의했다는 거다.
여자 친구는 빚을 내고 부모님께 도움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자는 입장이 강했고 석재는 우리 둘 다 취직했으니까 부모님 손 빌리지 말고 우리 힘으로 현실에 맞게 시작하자고 현실론으로 설득했는데 간극만 커져서 헤어지게 됐다며 우울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 후 한동안 방황하다 안정을 하려고 늙다리 선배들과 등산을 가기 시작했다.
하여간 석재는 특이한 녀석이다.
그러다가 등산을 전문적으로 할 생각이었는지 100대 명산을 오르겠다며 혼자 등산을 시작했다.
억지로라도 심리적 안정을 가지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석재가 산을 다니면서 서서히 안정을 되찾은 듯해 보여 여자 친구 소개해주겠다며 사진까지 보여주자 선배님 제 스스로 해결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멋진 녀석이! 난 그만 말문을 닫고 더 이상 진행하진 않았다.
석재의 관심사는 등산에서 이번엔 몸만들기로 변모했다. 매일 정해진 프로그램 따라 식단도 조절하고 술도 금하고 운동으로 석 달을 그렇게 노력하더니 어느 날 복근에 왕짜가 뚜렷한 모델급 사진을 자랑삼아 보여주는데
은근히 부러웠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될 때까지 집념을 보여준 나의 후배 석재가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 경외심도 들었다.
이별 이후 한동안 스스로 진정을 찾으려 고민하더니 어느 날 제 이상형이라며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선배님 너무 예쁘고 착해요 드디어 새로운 여자 친구를 찾았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내게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자랑을 했다.
이제 제대로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요즘 sns를 이용하는 시간이 많은 걸 보면
새로 만난 여자 친구와 많이 가까워져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 거 같다. 가끔 먼저 두자던 바둑 대국도 중단된 걸 보면 석재의 연애 행보가 순조로운 듯해 보인다.
그동안 반농 반진담으로 주변 동료들한테서 석재만 너무 아끼고 편애한다며 핀잔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석재는 그만큼 괜찮은 녀석이다. 진짜 괜찮은 친구다.
흠이라면 맘이 여리다. 이런 친구들은 혹 상처 입었을 때 그 치유가 오래 걸린다.
나도 그런 과여서 지난번 실연의 아픔이 거의 내일처럼 걱정됐고 심정이 내 맘 같으면 오죽하겠나 싶어 각종 위로의 수단을 동원해 빨리 치유되게 하고 싶었다.
물론 MZ 세대답게 부모님의 과도한 관심과 요구에 반발해 한때 독립을 시도하려고도 했다. 아빠에게서 받은 지나친 권위적 태도로 서먹한 사이로 지내다가 같이 등산을 몇 번 다니면서 뒤늦게나마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다며 공개하가 꺼려지는 속 얘기도 털어놓는 걸 보면 동재는 MZ 세대임에는 틀림없다.
요즘은 잠시 시들해졌지만 한때 나의 바둑 친구요 동급자였다. 지사 사옥 옥상이 꽤 넓어서 캐치볼도 가끔 하곤 했었는데 사랑하는 나의 새까만 후배 석재와 같이 근무할 날도 일 년 여 밖에 안남았다.
퇴직한 후에도 가끔 만나서 석재와 소주 한잔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