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우이천을 가로지르는 징검 다릴 건너 가로수길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휴식을 위해서 만들 터놓은 작은 데크 위에서 아코디언을 멋들어지게 연주하는 아저씨를 가끔 만나게 된다
건반수가 34개인 빨간색 아코디언을 좌우로 흔들 며 무릎 춤을 적당히 추어가면서 제법 멋을 부리기 도 하는 걸로 볼 때 아코디언 연주경력도 꽤나 오래된 듯도 하고 소싯적엔 한가락 놀아본 솜씨다.
키도 크지 않고 별로 미남형도 아닌데 이 아침에 최진희가 부른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를 연주하는 아저씨 가 멋져서 데크 앞에 털썩 양반 다릴 하고 앉았다.
뜻하지 않은 관객이 생기자 기분이 업됬는지 마저 씨의 춤사위는 그리 넓지 않은 데크 전체로 넓게 퍼져간다.
평소보다 오버 워크 하는 걸로 보여 다소 불안해 보였는데 갑자기 나타난 나의 존재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김수희의 애모를 잠시의 멈춤도 없이 곧바로 이어 서 연주한다.
주로 여자 가수들의 노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 도 애절한 곡조만 골라서 선택한 건지는 몰라도 아 저 씨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건반을 누르는 오른손보다 베이스를 누르는 왼손가 락의 놀림이 아주 빠르고 현란하다. 저런 정도의 연 주 기량이라면 전문가급일 텐데 아저씨의 정체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지쳤는지 아니면 내가 누군가 궁금해서 물어보려는 건지 아코디언을 벤치 위에 내려놓고 싱긋이 웃으며 날 쳐다본다.
매일 아침 이길로 다니면서 아코디언 소리가 들려 궁금했는데 오늘은 출근시간이 여유가 있어 들러봤 다고 내가 먼저 말문을 여니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코디언 연주 솜씨 못잖게 빠른 속도로 자신을 소개한다.
십 년 전에 상처했으며 직업은 목수였고 아코디언 은 아내가 죽고 나서부터 배웠단다. 마누라가 죽고 난 후 너무 외로워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매일 아침저녁으로 두 시간씩 장소를 바꿔가며 아코디언 연 주를 하다가 보니 실력이 많이 늘어서 이젠 노인정에 가서 무료 공연으로 재능기부도 하고 있다며 은근 자랑도 한다.
내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 도 괜찮겠냐 물으니 얼마든지 찍으라며 제대로 폼을 잡는다.
선글라스에다 모자도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 나이를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데다 목소리가 낭랑해 나이가 얼마냐 됐냐고 물으니 소띠라 해서 소띠면 61살 저보다 한 살 많네요 했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일흔셋이라고 바로 잡는다.
그렇게 안 보이고 건강해 보인다니까 댁은 뭐하슈 묻는다. 그냥 월급쟁이고 나이는 62년생 호랑이띠라고 하니 인상도 좋고 목소리가 아주 좋아서 노래를 자알 부를 것 같다며 자신의 반주에 맞춰 한 곡조 하란다.
아이고 이 아침에 무슨 노랩니까. 손사랠치며 거절하고는 큰길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생수 한 병을 사다 드렸다.
좋은 연주 들었으니 갈증도 나실 텐데 생수라도 드시라고 건네주니 목젖이 움직이도록 벌꺽 들이 켜단다. 내가 온 후로도 세곡을 연주했는데 그전부 터 연주했다면 목이 탈만도 했다.
생수병을 벤치 위에 내려놓고는 바쁘냐고 묻길래 9시까지 출근인데 여기서부터 사무실까지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데 조금 여유 있다고 하니 해장국이나 한 그릇 할 까해서 물었다며 출근길이 바쁠 테니 오늘은 그냥 가시 고 나중에 또 보게 되면 그때 소주 한잔 하잔다.
사실 아저씨와 나도 얘기가 하고 싶고 좀 더 사연도 듣고 싶었지만 출근길이라 퇴근할 때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 소주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하니 저녁땐 여기 없어요. 딴 데로 갑니다. 인연이 있으면 또 봅시다 서운한 듯 입맛을 다시면서 인사를 건넨다.
가기 전에 자신의 십팔 번지를 듣고 가라며 익숙한 듯 악보를 펴고는 남진의 가슴 아프게 연주를 시작했다.
가슴 아프게는 1967년 남진이란 남자가수가 부른 공전의 대히트곡이다. 가슴 아프게만 노래는 60년 대 중반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잘 아는 노래일 거고 그 이후 태어난 사람들도 부모님을 통해 한두 번쯤 간접적으로 들었을 트로트 명곡 중 명곡으로 꼽히는 노래다.
노래방에 가면 즐겨 부르는 노래 중 하나라서 이번 엔 앉지 않고 데크 난간에 기대서서 빨간색 아 코디 언 몸통 안에서 울려 퍼지는 아침 이른 시간에 난 뽕짝 뽕짝 뽕짝 노래를 듣는다.
눈감고 들으니 아코디언 소리가 풍금소리와 똑같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