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살았던 시골엔 5일 건너 한번씩 장이 선다. 장터 한복판에 떠들썩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가면 한 사람은 아코디언을 메고 또한 사람은 차력사라며 도복을 차려입고 입으로 휘발유를 허공에 내뿜어 불을 지르며 한바탕 쑈를 벌인다.
찐하게 분장한 젊은 여자는 노래를 부른다. 어릴 적 장날 장터에서 제일 인기 있는 풍경이다.
텔레비전도 동네에 한두 대나 있을까 말까 그런 시 절에 흔하게 볼 수도 없는 진기명기와 같은 묘기도 보여주고 손풍금으로 연주도 들려주고 뽀얗게 화 장한 예쁜 여자 가수의 구성진 노랫가락으로 이미 혼이 빠져나간 시골 사람들은 너도나도 만병통치 약상자를 한 손에 건네받고 는 꼬깃꼬깃 쌈짓돈을 꺼낸다.
장이 끝나고 어둑해지면 장꾼들은 장날마다 숙소로 이용하는 밥집으로 이동을 한다. 내일 장이 서는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승합차나 트럭을 자가 용으로 개인이 소유하기엔 당시로선 부담이 컸기 때문에 사람 이 서있는 곳이면 죄다 정차하는 완행 버스를 이용해 다음 장터로 이동한다.
완행버스 운행시간이 밤 7시 전에 끝나므로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장 서는 곳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완행버스 첫차를 타고 다른 장터로 이동하는 것이 다. 어릴 때 우리 집 골목이 장터였고 바로 뒷집이 장꾼들의 숙소였기 때문에 자주 보던 풍경이었다.
장보따리래야 간단하다.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자기 물건을 챙기고 메고 들면 된다.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였던가 어머닐 모시고 경기도 부천엘 갔었다.
어머니 둘째 오빠의 딸, 즉 조카딸을 만나러 가기 위해 직행버스로도 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서울을 지나 어머니와 함께 난생처음 부천이란 곳을 찾아갔다. 돌아가신 어머니 둘째 오빠의 큰딸 금자 누날 만나기 위해서였다. 국민학교 졸업하고 집을 나갔 으니 20년도 넘는데 얼굴이나 알아볼 수 있을까 걱정을 하신다.
불쌍한 년......
부천에 도착해 주소를 적은 종이쪽지를 들고 물어 물어 금자 누나의 집을 마침내 찾았다. 알아볼 수 있을까 염려하시더니 어머니도 금자 누나도 한눈에 들 알아보신다.
누나 내외는 반갑게 뛰어나와 어머니를 끌어안으며 울먹인다.
금자 누나는 생전 처음 보는 날보고 아들이냐며 많이 컸다며 손을 잡는다. 고생을 많이 해선지 아직 젊은 누나의 손이 보드랍기도 하고 거칠기도 했다.
나나 누나나 오늘 서로 첨 본다. 부천으로 오는 버 스 안에서 어머니로부터 금자 누나의 과거에 대해 서 이미 자세히 들었다.
기억력이 남다른 어머니는 둘째 오빠가 일찍 돌아 가시자 오빠의 부인인 올케는 어린 딸 둘을 남겨 두고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어디론가 가버렸으며 남겨진 어린 두 딸을 막내 외삼촌이 국민학교 졸업할 때까지 키웠다고 한다.
큰딸인 금자 누난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느 날인가 장터에서 만난 아코디언 연주하는 약장수 광대 아저씨를 따라 가출을 해버려 그 후로 십몇 년 을 소식도 모른 체 지냈다고 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 장날 저녁에 금자 누나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반짝이가 달린 무대복을 입은 채 화장도 지우지 못하고 낯선 얼굴로 어둑해진 저녁 무렵에 불쑥 말이다.
막내 고모가 여기사 신다는 건 어릴 때 기억이 나는 데 떠돌이 약장수 따라왔다가 고모가 보고 싶어도 차마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원기소란 약상자와 지폐 몇 장을 문턱 끝에 살짝 놓고 금세 가버렸다고 한다.
어머니는 금자가 둘째 오빠를 닮아서 눈이 크고 예쁘고 어른들 앞에서 노래도 잘 불렀다며 혀를 차시며 안타까워했다.
부모 없이 배우지도 못하고 객지로 나가 갖은 고생 했을 거라며 돌아가신 오빠를 만나러 가듯이 금자 누날 찾아 난생처음 가보는 부천을 찾아가는 것이 다.
금자 누나는 족보상 사촌 누나지 나와는 실은 이모 뻘쯤 나이차가 난다.
어머니와 금자 누나와 나이가 열 살 정도밖에 차 이가 안 난다. 어머니 형제가 3남 4녀인데 금자 누나 아버지인 외삼촌이 위로부터 셋째고 어머니가 막내라 두 분 남매간 나이차도 10살 정도나 나기 때문에 외삼촌의 큰딸이 니 그럴 수밖에 없다.
금자 누나는 약장수 광대 아저씨를 따라나선 후 광 대 아저씨의 소개로 서커스단에 들어가 서커스도 배우고 노래도 부르면서 악극단 생활을 하다 남편 이 된 광대 아저씨와 살림을 차리면서 쫓겨나듯 서꺼스단을 나왔 다고 한다.
그 후 안 해본 거 없이 지내다 남편하고 이장 저장 장마다 돌며 약장수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금자 누나는 부랴 부랴 서둘러 밥을 한상 차려왔다. 금자 누나의 남편, 내게는 사촌매형인 셈인데 인상이 좋다. 625 전쟁 때 고아가 됐다는데 누나보다 대여 섯 살 많지만 더 늙어 보인다.
어려서부터 서커스단에서 생활했는데 아코디언을 잘 쳐서 주로 금자 누나랑 막간에 연주와 노래를 했다며 잘살고 있다며 누나 같은 처고모를 향해 술잔을 건네며 웃는다. 반주로 마신 막걸리가 얼 큰 하 게 달아올랐는지 매형은 단칸방 윗목에 놓인 아코 디언을 끌어당기더니 모처럼 고모님 오셨으니 솜씨를 보여드리겠다며 밥상도 물리지 않은 채 익숙한 손놀림으로 연주를 했다.
작은 단칸 방안에 아코디언 소리가 가득히 퍼지는 데 금자 누나가 어머니 손을 잡으며 눈물을 글썽인 다.
고모 염려 마세요. 우리 잘살고 있어요. 금자 누나 가 너무 이뻤다.
헤어지려는데 금자 누나가 어머니 손에 몇 장의 지폐를 또 손에 쥐어준다. 금자 누나의 어려운 형편을 아시면서도 어머닌 그냥 받았다. 어머닌 아까 누나가 저녁상 치우러 부엌에 나가고 매형이 담배 한 대 피우러 밖으로 나간 사 이에 아코디언 밑에다 삼만 원 정도의 돈을 몰래 끼워 놓으셨다.
동생아. 고모 잘 모시고 조심히 가. 나중에 서울 오면 꼭 다시 와라. 고모 잘 가세요. 사연 많고 눈물 많은 금자 누나 가 또 운다.
어머니와 같이 금자 누날 만난 게 고등학교를 졸업 한 그해 봄이니까 1981년 정확하게 40년 전이다.
금자 누날 그 후론 만나지 못했다. 살아있으면 80 대 초반쯤 되셨을 거다.
어제 아침 아코디언 아저씨를 보면서 금자 누나의 얼굴이 아련하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