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쌀이 귀하고 비쌌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집들은 하루 세끼 중 한 끼는 국수 아님 잡곡밥을 먹는 게 흔한 일상사였다.
아침엔 쌀밥을, 저녁엔 국수나 보리밥을 주로 먹었다. 우리 집도 저녁때만 되면 국수 사 오라며 엄마가 돈을 주시면 여동생이나 내가 장터 골목 안쪽 끝에 있는 국수가게에 가서 딱 한 끼용 국수를 사 오곤 했다.
그땐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라서 나뿐만이 아니라 동네 아이들은 다 그랬다. 어쩌다 국수 사 오라는 심부름을 까먹고 친구들과 놀다가 혼이 난 적도 있었다.
지금도 있지만 국수 뽑는 기계로 만든 국수가 그땐 왜 그렇게 맛도 없고 먹기도 싫었는지 저녁밥 먹을 때만 되면 차라리 안 먹고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좋았다.
여동생이 몸이 약해서 우리 집 국수 사 오는 일은 내가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다.
그 무렵 미애를 국수가게에서 첨 만났다.
미애는 탄광이 있는 정선군 사북에서 살았다. 아빠가 탄광에서 광부로 일했는데 탄을 캐러 갱도라는 곳에 들어가 일을 하다 다쳐서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되면서 미애네 큰아버지가 살고 있는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4학년 때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는데 6학년 때 같은 반 짝꿍이 되었다.
같은 반 짝꿍이 되기 전까진 친하진 않았다. 국수 사러 왔다가 미애가 먼저 와있으면 나는 바깥에 나와 있다가 미애가 집으로 가면 그때 국수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상하게 미애만 만나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거의 매일 저녁 국수를 사러 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피하지도 못하고 마주쳐 당황했던 적도 많았다.
그러다 평소 말이 없는 미애가 먼저 말을 걸었다.
" 너 5학년 2반이지. 난 3반이야 "
그 뒤 론 어떻게 된 일인지 미애도 나도 피할 데 없이 막 다른 길에서 만나도 피하지 않았다. 스스럼없이 자연스레 어울리면서 둘이만 이곳저곳 쏘다녔다.
친구들이 여자애 하고만 논다고 놀려대며 방해했지만 미애와 난 꽃잎도 따고 산 계곡 따라서 올라가 며 가재도 잡고 재밌게 놀았다.
미애는 공부를 잘하진 못했다. 나도 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간혹 맘 단단히 먹고 밤새워 시험 봤을 때 반에서 10등 안에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근데 미애는 공부를 열심히 할 생각도 없는 것 같고 머리도 좋은 편도 아니다. 내가 가르쳐주고 싶다 가도 미애가 자존심이 상해서 화를 낼까 봐 안타까 워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6학년 때 일이다. 방정식 문젠데 우리 반 애들 다 풀 수 있는 쉬운 문제였다. 선생님이 미애를 나오라고 하더니 문제를 풀어보라 했는데 미애는 숫자 하나도 쓰지 못하고 선생님한테 혼만 나고 자리에 들어왔다. 속상하고 화가 났다.
그것도 못 푸는 미애한테도 화가 났지만 하필 미애한테 앞으로 나와 문제 풀어보라고 시키신 선생님이 더 미웠다.
집에 갈 때 같은 동네라 매일같이 갔는데 그날만은 미애랑 같이 가기 싫어서 혼자 먼저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