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으로 날짜를 특정하기 어렵지만 언젠가 부터 이곳 봉대산에서 다람쥐를 구경하기가 부쩍 힘들어졌습니다.
조선시대때 이곳 봉대산은 궁궐에서 가깝고 야트막하지만 산세가 좋아서 왕실에서 밤나무를 심는 등 특별히 관리를 해왔으며 상궁이나 내관, 양반사대부들까지도 묘역으로 사용하던 곳이었습니다.
수령이 백여년도 훨씬 넘는 굴참나무,
상수리나무와 밤나무의 군락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숲이 무성했으며 다람쥐와 청설모 산새들의 천국이었는데,
떼굴떼굴 굴러가는 도토리를 주우러 통통 튀어다니며 상수리나무와 밤나무를 오르내리던 다람쥐가 이제 더는 보이질 않습니다. 어쩌다 간혹 눈에 띄어도 왜소할 정도로 작고 삐쩍 마른 모습들 뿐이라 반가움보다도 측은함이 앞섰습니다.
'도대체 다람쥐가 다들 어디로 갔을까.'
도토리동산에 다람쥐들이 보이질 않으니 적막하고 공허하기만 합니다.
다람쥐가 살던 굴에는 오색 딱다구리가 둥지로 이용하며 드나들었던 흔적만 남아 깃털들이 날리고 있습니다.
다람쥐들은 청설모같은 상위 포식자들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혼자서는 다니지않고 두마리씩 짝을 지어 다니는데 자취를 찾을 길 없어 봉대산숲을 헤매며 다람쥐의 행보를 찾아 보았습니다.
다람쥐가 보이지않는다면 상위포식자들의 존재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서 토요일마다 봉대산을 찾아 생태계를 조사해보았습니다. 망원경까지 구비해 기록을 해가며 관찰도 시도했습니다.
사람이 있다는 눈치를 채지못하도록 다람쥐와 청설모의 굴 주변 7~8m 쯤 떨어진 곳에서 나무뒤에 몸을 숨긴 채 시간당 다람쥐가 얼마나 눈에 띄는지 출현횟수를 기록했습니다.
나무타기에 있어 다람쥐의 최고의 라이벌 이자 수시로 둥지를 공격하며 위협하는 청설모들도 눈에 띄게 그 수가 줄었고 많지는 않았었지만 너구리의 흔적 마저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청설모나 너구리의 자취도 보이지않는 걸로 볼때 다람쥐의 실종과 상위포식자의 습격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음이 확실해 사람들 때문이거나 다른 환경적인 요인이 작용한건지 조사범위를 늘려서 더 확인해 보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전문적인 자격을 가진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해 몇년전 명예퇴직한 전직 경찰출신의 친구와 산림감시원으로 활동했던 선배를 만나 도움을 요청하고자 오랜만에 산행도 함께 했습니다.
산행을 겸한 모임이라 일단 300m 높이의 봉대산 꼭대기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다람쥐가 전보다 보이지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설명을 해주자 산림감시원 선배는 나도 요즘 다람쥐를 통 못보겠더라면서 사실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주변 나무들을 두리번 두리번 살펴보며 손으로 다람쥐 굴이 있는 곳을 가리켰습니다.
산을 내려오면서도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다람쥐의 실종문제로 계속 이어졌습니다. 진지하게 논의를 해야겠기에
봉대산 산행을 마치고 하산할때마다 찾는 인심좋은 주인이 반겨주는 막국수집으로 들어가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막국수와 소주 한병, 안주로 메밀전을 주문 하고 나서 먼저 다람쥐를 찾으려 했던 이유와 봉대산을 오르내리며 활동해온 경과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난후 다람쥐찾는 일을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더니 두사람 다 흔쾌히 수락해주었습니다.
다람쥐가 자취를 감추게 된 원인과 대상을 좁혀 한가지씩 탐문 수사를 하자며 전직 경찰출신인 친구는 소주 몇잔이 들어가자 열을 내면서 구체적 방법까지 제시했고 산림감시원 선배도 친구의 제안에 손뼉을 치며 적극 호응하고는 이참에 수사본부를 구성하자 거들었습니다.
" 선배님. 수사본부보다는 봉대산을 찾는 사람들의 관심과 경각심을 고려해 봉대산 다람쥐 동산을 지키는 사람들이란 이름을 내걸고 다람쥐들이 다시 봉대산으로 돌아 오도록 주말마다 산행을 하면서 환경 캠페인을 벌이는게 어떻겠습니까! "
두사람의 의견을 종합해 수정제안을 하자
" 역시 운동을 한 사람이 다르구먼"
" 좋아."
다람쥐동산 지키기 캠페인 활동에 필요한 준비는 내가 맡기로 하고 두사람은 동조자를 찾는 일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