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이라는데

아들에게 쓰는 편지29

by 김운용


섣달 그믐이라는데 아들을 그냥 보냈구나

한달만에 보는데도 밥먹는 자리외엔 너와 변변한 대화도 못했다.

전철역입구까지 데려다주고 헤어져 돌아오는데 허전하더라.

같이 있었으면 아빠와 운동도 하고 술도 한잔하면서 세상살이를 화제로 얘기도 많이 했을텐데 말이다.


실은 니 얼굴표정도 그렇고 행동하는 것도 의욕이 떨어져 보이고 피곤한 것 같아 보이던데 말은 안했다만 무슨일이 있는 건 아닌가 궁금했다.


혹시나 공부때문이라면 복잡하게 생각하지마라. 지난 일은 머리속에 오래 남겨둘수록 머리만 아플뿐이다.


삼학년까지의 일은 다 잊어라. 이미 되돌릴수도 없는 일 후회한들 소용없는일에

집착하고 미련가져봐야 시간 낭비다.

다가올 앞일까지 어제일때문에 지레 겁먹고 의기소침해하거나 다음으로 미루는 태만에 빠지지도 마라.


앞으로 일년, 시간은 충분하니까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면 된다.



옛날 조선시대때 선비들도 공부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면 독서법이란 걸 다 따로 만들었겠냐.


다산 정약용같이 빼어난 학식과 방대한 저술로 이름을 떨친 사람도 책을 잡으면 쉬 머리에 안들어오니까 중요한 문장이나 대목이 나오면 그 부분을 바로바로 옮겨 적었다고 한다.


초서(秒書)라고 하는 독서법을 평생 습관으로 몸에 익혀왔는데

중요한 부분만 적은 글을 모아서 따로 또 읽어보고 몇번을 반복하며 읽고난 후에야 책한권을 제대로 이해할수 있게 되었다며 아들과 후학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니가 집을 떠나 혼자 생활한 게 고등학교 일학년때부터니 벌써 7년이 넘었구나.

잔소리나 통제받지 않아서 자유롭고 좋기도 했겠지만 혼자 밥먹을때나 아플때면 고독감도 들었을거다.


아빠도 너와 비슷한 시기에 똑같은 경험을 겪어봤기에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혼자있으면 독립적이고 자아는 강해지지만 신경쓸일이 없으니 나태해지기 쉽다. 다음에 해도 전혀 손실이 없고 무방한 일이라면 여유있게 시간을 갖고 계획을 세워도 되겠지만 인생 목표에 따른 주어진 절차거나 순서라고 한다면 미루면 안된다. 부족하다손 치더라도 해볼건 해봐야지. 안그러냐.


일년을 미루게 될 경우 그 손실을 물질적으로 따진다해도 알바 3년치 임금 전부 합쳐도 그보다 적지않고 무엇보다 인생의 시간을 허무하게 낭비하는거다.



마부작침(磨斧作針)이란 격언 들어봤냐?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인데 도끼같은 큰 쇳덩이를 갈아서 자그마한 바늘을 만들려면 얼마나 오랜시간 끈기있게 집념을 갖고 몰두해야하는지 짐작이 가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설날이 낼모레니 덕담한마디 더 하자.

까짓거 한번 해보자 자신감 있게 기백(氣魄)을 가져라.

씩씩한 기운과 꿋꿋한 의지로 기개(氣槪)를 쫘악 펴라.

너그럽고 듬직한 성품을 유지하며 기품(氣稟)있게 지내라.


아빤 퇴직 후 누나를 위해 장애인시설을 만들려고한다. 준비하는데 많은 작업과 돈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아빠 스스로도 무모한 일이란 거 잘안다. 현실적인 조건에 맞춰 늙어가며 안주할 수도 있겠지만 한번뿐인 인생, 죽기전에 아빠도 피땀흘려 지켰다는 책임과 의무를 위해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인생 이막이라 부르는 시간 돈키호테같은 행동이라해도 쉬지않고 땀흘리고 싶다. 연금이나 받고 적당히 즐기며 노후를 보낼까 안이한 맘이 들때마다 힘겹고 고단한 일이지만 누나를 위해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의지를 다진다.


지금 너에겐 동기부여가 충분하잖아.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절차를 준비해야하는 문앞에 서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늘 새겼으면 한다.



(덧붙여)


인연은 함부로 맺지도 함부로 끊지도 마라.

한번 맺은 인연 인연이 아닌듯해도 언젠간 만나게된다. 더군다나 sns시대 언제 어디서든 연결되는 세상아니냐. 무슨 말인지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