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술.
물건을 사고 파는 일을 상업 또는 장사라고 하는데 선사시대때에도 물물교환식의 거래가 있었다고 하니 다른 사람과의 거래 즉 상업을 통해 물질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해결하려는게 사람들의 본능인가 보다.
상업이란 말이 중국의 고대국가인 상(商)나라에서 그 유래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주나라와의 전쟁으로 나라가 망하자 상나라 사람들이 호구지책으로 물건 을 파는 일에 많이들 매달리자 그런 연유로 상나라 사람(商人)들이 하는 일을 상업(商業)이라 불렀다 고 하는구나.
상업의 발달과 전쟁이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타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나 기회가 거의 없어 전쟁이야 말로 음식 의복 언어와 같 은 생활방식등의 문화양식이 전파되는 주요 통로였을거다.
물론 그이외의 교류들도 전쟁이 끝난 후 승패에 따라 조약이나 협상의 결과로 교류가 이루져 관례화된 것 이겠지.
우리나라 상업의 역사도 마찬가지야.삼국시대에 이미 고구려를 비롯한 여러나라 들간에 무수히 많 은 전쟁이 있어 잦은 영토변경으로 인해 인적교류 가 발생했고 중국과의 활발한 교역으로 들여온 물건들을 사고 파는 시장도 열렸고 이를 관리하는 관청을 두었었다는 기록도 있더라.
쌍화점이란 고려가요 배웠을걸. 아마.
' 쌍화점(만두가게)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회회인(위구르사람쯤으로 보인다)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가게 밖에 나고들면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
쌍화점이란 만두를 파는 점포를 말하는데 만두가게 와 술집을 매개로 남녀간의 은밀한 정분도 이루어 지고 있었음을 묘사하고 있는데 만두가게와 술집이 있었으니 다른 업종의 점포들도 당연히 있었을거라 는 건 익히 짐작가는 일이지않냐.
더군다나 고려시대는 유교가 풍습을 지배하는 이념 으로 자리잡기 이전이라 자유롭게 다양한 생활양식 의 발달이 가능했고 몽고 등 다른 나라들과의 문화 교류와 교역이 활발해 상업이 발달했었을 거라 본 다.
조선시대야 지배질서가 완고했던 시절이라 상업이 신분상 하위계급으로 차별을 당했지만 시장의 기능은 오히려 확대 발전해 시전 육의전등의 시장 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기도 했고 보부상같은 이동식 장사꾼에 난전까지 생겨났지.
대동강을 팔아먹었다며 부정적인 인물로 낙인찍어 온 봉이 김선달도 실은 부동산 매매 및 상품을 중개 하는 거간 즉 유통업자 란다.
90년대 이전만해도 동네골목 어귀에는 어김없이 구멍가게라 부르던 소규모 가게가 있었다. 담배 한갑 사와라 아버지로부터 심부름이 떨어지면 귀찮 다않고 쏜살같이 달려갔었지. 담배한갑사고 남는 거스름돈은 필히 내차지였고 아빤 그길로 다시 구멍가게로 달려가 뽀빠이과자 한봉지를 손에 쥐고 득의만만해했지.
요즘 추억의 구멍가게는 대형마트나 체인점에 밀려 자취도 없이 사라졌지. 전문화되고 유통과정상 가격경쟁면에서도 상대가 될수 없으니 구멍가게와 같이 개인이 장사할 기회는 자리할 틈이 없을 수 밖에는 없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죽지않으려면 장사라도 해야 겠다 빚을 내고 대출이라도 받아 어렵게 가게 문을 열어도 생산 유통 모든 부분을 돈많은 이들이 움켜 쥐 고 있으니 그들이 허락하거나 남긴 푼돈만을 쫒아 야하는 불공정한 장사판에서 살아남는다는게 기적이 다.
트래킹이니 하이퍼래딩이니 커머스니 이해도 안가 는 마켓팅 전문용어만 통용되는 복잡한 유통구조의 장벽앞에서 누군들 장사할 엄두를 쉬이 낼수 있겠냐.
구멍가게들이 없어지자 덕분에 골목길 안쪽에 사는 사람들의 소통의 사랑방도 후한 인심이 오가던 상술도 따라서 사라졌다.
대형마트든 작은 가게든 장사의 근본은 인심에 바탕을 둔 상술이다.
마케팅이니 뭐니 전문적인 이론으로 거창하게 떠들 어봤자 장사의 기술 즉 상술은 인심을 얻는거지.
생산 유통 마케팅 일체를 장악한 대형유통업체가 자신들이 짜놓은 구조안에서만 장사를 하게하니 개인은 큰돈을 벌래야 벌수없는 불리한 판안에서 발버둥치는 격이다.
주식도 마찬가지야. 기업의 은밀한 내부정보를 이 용한 큰손과 마름격인 작전세력들이 벌린 큰판에 판돈 몇푼가지고 덤벼봐야 궁극적으론 큰돈을 벌기 어려운 일이라 본다.
카지노 바카라게임이라고 알지 모르겠다만 딜러의 승률을 이길수 없는 노름판에서 골머리 썩여가며 밤을 새는 사람들을 보면 실로 안타깝더라.
카지노도박장에서 일주일동안 먹고자면서 승산도 없는데도 미련을 버리지못하고 코인을 연신 던지는 이유는 언젠가 한번 누군가 대박을 떠뜨렸다는 기억이 마치 내 기억인냥 착시에 빠져 더욱 깊은 수렁으로 끌려 들어가는 풍경을 많이 목격했다.
가볍고 순수하게 장사얘기만 하려했는데 자꾸만 논리의 질곡으로 빠지려하니 이쯤에서 아빠가 오늘 편지에 쓰려던 본론으로 돌아가야겠다.
장사의 기술 즉 상술은 인심이라 위에서 했던 말 생각나지.
에누리없는 장사없다는 말처럼 인색하면 돈을 못 번다. 후한 인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야 사람들 이 모여들지. 상술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도 마찬가 지다.
아빠가 가끔 들러 한잔하는 삼겹살 구이 식당이 있는데 고기의 질도 좋고 반찬도 맛이 있다. 거기다 사람이 붐비지않을때는 직접 고기를 썰어 구워주고 반찬이 필요할때면 더 달라고 부르기전에 빈 그릇을 가져가 푸침하게 담아다 갔다주는 선제적 친절을 보고 사람들은 한번 올거 두번 오게되는 거거든.
상술 하나 또 있다.
고기를 다 먹었을때 쯤이면 싱싱한 파인애플 속에다 아이스크림을 담아다 주는데 원래 오천원주고 사와서 만원에 파는거야.
근데 주인이 가져다 주면서
" 아이스크림 서비습니다."
던지는 주인의 웃음띤 후한 인심 한마디에 우리도 앞으로 회식장소는 이집이다 맞장구를 쳤지.
너도 알지. 우리가족이 자주가는 싹쓰리 삼겹살집도 인심이 후하잖아. 우리식들이 많이도 먹지만 다먹고 나오며 계산하려할때 주인이 집에 가서 드시라며 생삼겹살 1인분을 까만 비닐봉투에 담아주었잖아.
주인아저씨의 친절한 인심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쏠리게 해 단골손님을 만들었잖아.
마켓팅 그거 별거 아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례 한마디 해주마.
할머니 할아버지 두분이 아빠 아주 어릴때 쌀가게 를 했었다. 자본금이 넉넉치 않으니 여유가 없어 후하게 인심을 쓰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셨지.
길건너편 앞집은 우리보다 나중에 쌀가게를 차렸는 데 그집은 직접 쌀농사를 지었기때문에 쌀사러온 손님들한테 한움큼씩 더주곤 했지.
후발주자였고 욕심도 많은데다 다른동네에서 이사왔으니 불리하다 생각하고 의도적인 경쟁 심리가 작용했던거지. 그게 효과가 있어 우리집보 다는 손님이 많았다.
반면에 우리집은 직접 농사를 짓지않아
할머니는 가게를 보시고 할아버지가 산동으로 여기 저기 다니시며 농사짓는 시골사람들을 찾아가 곡식 을 선매도해 확보한 후 할아버지 친구분의 삼판차를 빌려 곡식을 실어다 팔았지.
할머니는 산동사람들이 장날이나 때로 볼일이 있어 장터에 나올때면 그분들이 편하게 들러 국수며 밥도 먹고 쉬었다 갈수있게 안방문까지 열어놓으셨었다.
상술의 기본은 인심, 인간관계 역시 기본은 인심임 을 말해주려다보니 글이 아주 길어졌구나.
전철역으로 가는 길 공원옆 상가에 교회 첨탑처럼 높다란 곳에 걸린 간판이 인상적이더구나.손님도 많은 걸 보면 저집도 상술이 후하거나 맛이 있는가본데 담번에 집에 오면 삼겹살 먹으러 가보자.
일년동안 공부하려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이 힘들거다.
아빠편지보며 힘내라. I try l made it !
2022년 정월 대보름날.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