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아프다면서 손가락으로 턱을 가리키길래
그저 양치질만 깨끗이 하라 다그쳤었다.
아픔을 몰라주니까 답답했었던지 어느 날엔가 내 어깨를 잡아 흔들면서 입을 크게 벌리고는 어금니안쪽을 들여다 봐달라며 보여준다.
들여다봐도 특별한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의 직감으로 미루어 볼때 그 정도나마 의사표시를 하는 걸 보면
그동안 꽤나 아팠겠구나 싶어
다음날 휴가를 내고 치과를 찾았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남다른 치과의사는 사랑니가 누워있어 충치가 생겼다며
누워있는 사랑니를 빼려면 전신마취를 해야하니 소견서를 가지고 동대문에 있는 장애인치과에 가보라 했다.
장애인치과
이름 그대로 장애인을 위해 성심을 다하는 곳이었다. 간호사가 격무에 귀찮았을텐데도 진료가 끝난 후에 몇차례씩이나 대기실로 나와서 치아상태와 치료방법을 세심히 설명해 주었다.
전신마취하려면 여기선 더디니 대학병원에 가야한다며.
이후 입원 준비를 위해 분주히 뛰어 다녔다.
대학병원에서 진료상담을 하고 난 후 입원수속을 밟고 수술일정도 확인하고 당사자는 물론 보호자까지 PCR검사를 받아야 입원이 가능하대서 보건소에서 음성이란 결과를 받아 병원에 연락해주었다.
사랑니발치 수술 전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데 당뇨를 앓고 있어도 이상이 없다는 의견도 필요해 전에 다니던 당뇨치료센타를 방문해 별도의 진료를 받고 소견서를 받아다 제출했다.
사실은 그보다 입원할 병실을 선택하는 일이 제일 신경이 쓰이는 일이라 입원 수속을 밟을 당시 병원관계자들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협조를 구했다.
발달 장애라 4인실 공동 병실에서 생활하게 될 경우 혹시라도 소란스러운 행동을 하게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되니 사전에 설명을 하고 일일이 양해를 구해야 했다.
가뜩이나 몸이 아파 예민해진 사람들이 불편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 안되면 선택의 여지없이 일인실로 갈수 밖에는 없지만 병실료가 수십만원씩이나 해 부담스러웠는데 다행히 비슷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입원한 3인실로 배정이 되어 조금이나마 안심이 됐다.
가뜩이나 편식이 심한 터라 병원에서 주는 음식 즉 당뇨조절식은 잘 먹지도 않을거고 수술 전날 금식도 해야 하는데 배고픔을 잘 참을수 있을 지 전신마취하고 나면 후유증도 만만찮다는데 사뭇 걱정이 앞섰다.
당뇨를 앓고 있어 수술전 여러 반응검사를 위해 그 맞기 싫은 주사와 링겔 영상촬영도
해야 할텐데 가슴이 아팠다.
수술하는 날 아침
오전 8시 수술이라 잠을 설치다 새벽에야 잠깐 눈을 붙였더니 머리가 무거웠다.
수술시간은 대략 2시간 정도고 회복하는데 에도 1시간 가량
걸린다는 집도의의 설명을 듣고 수술실로 이동하기위해 침대위에 누워 있는 민주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수술이란 상황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 수술실로 들어가면서도 싱긋이 웃고 있는 민주의 모습을 바라보다 나도 몰래 콧등이 시큰거렸다.
사랑니 발치와 충치치료보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니 그게 더 염려가 되어 병원 건물 뒷편 흡연구역이 있지만 병원을 나와 멀리 하천뚝방까지 걸었다.
병실에서 이틀밤을 새며 설쳤는데도 피곤하지가 않았다.
장마비로 물이 불어난 하천을 무리 지어 한가로이 떠도는 청둥오리 가족들의 모습을 오랫동안 쳐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또 피웠다.
병실로 돌아와 민주가 누웠던 침구를 정리하는데 수술이 잘 끝났고 회복실로 이동했다는 병원에서 보낸 문자가 도착했다.
병실로 돌아온 민주가 너무도 반갑고 대견했다.
수술 경과도 아주 좋고 워낙 건강해서 회복력이 좋아 예정 시간보다 훨씬 빨리 끝났으며
저녁부터는 일반식을 해도 된다는 의사의 설명을 들으며 슬그머니 돌아보니 크고 잘생긴 이빨을 드러내며 민주가 활짝 웃었다.
지혈을 위해 물고 있어야된다는 가제솜도 불편할텐데도 함부로 뱉지않고 지시에 잘 따랐다.
일반식이라지만 저녁식사로 나온 미음을 퇴원할때 맥*** 햄버거 사준다며 유도를 했더니 삼분지 이나 넘게 먹었다.
가글액도 삼키지않고 오글오글 행궈 잘 뱉어내고 항생제 주사와 수액주사를 주는데 눈한번 찡그리지않고 잘 이겨냈다
사흘밖에 안되는 시간, 병실에서 낮과 밤을 함께 보낸 시간, 의사표현에 장애가 있어 말로 다 알뜰히 챙기고 확인해주진 못했지만 민주와 나의 잊지못할 추억앨범 하나가 더 생겨나 흐믓했다.
퇴원하는 날 새벽.
병원밖으로 나와 사흘간의 병상일지를 정리하면서 어제 걸었던 하천 뚝방길을 다시 걸었다
사랑니가 문제였다. 망할놈의 사랑니가 하필이면 누워 있었다니. 그것도 세개가 전부.
누워있는 사랑니 발치를 하려면 민주와 같은 장애인들은 대부분 전신마취를 해야 하니 이중 삼중으로 고생을 감수해야한다.
사랑니와 어금니사이에 충치가 있어 아팠을 민주가 이제 더는 아프지않아 내 속이 다 후련하다.
우려도 많았는데 지난 사흘동안 조용하고 차분하게 치료와 병실생활을 견뎌준 민주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불암산에서 하천을 타고 불어오는 아침바람이 사흘간 병실에서 보내느라 세수도 제대로 못해 찌들은 얼굴을 시원하게 씻겨주는 것만 같았다.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설흔 두살의
나의 딸. 민주.
장애를 안겨준 원죄도 원죄려니와 엉뚱하고 보이쉬한 매력으로 가끔 가끔 나를 웃게한다.
아빠의 안경다리를 부러뜨리고 나서 화가 난 내 얼굴을 보자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쳐다보면서 순진한 눈웃음을 지을때 정말이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새 가까워진 간호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병실을 나서는데 민주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사랑한다.
Stevie Wonder는 시각 장애가 있어 사랑하는 딸의 얼굴을 한번도 볼 수 없었기에 간절한 마음을 노래로 만들어 선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딸이 커서 무대에 서서 같이 불렀죠.
Isn't She Lovely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