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첫 수학 시간이다. 공부잘하는 놈이나 못하는 놈이나 수학 시간은 방금 까지도 멀쩡했던 싱싱한 머리를 갑자기 빙빙 돌게 만드는 골치 아픈 시간이라 다들 은근 걱정이다.
수학 시간 앞으로 1년 미래의 안위가 걸린 문제라 수학선생님의 성격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쨌든 첫 수업을 앞두고 아이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교실 출입문이 열렸다. 문제가 시작됐다.
교실문 열어젖히는 소리부터 요란한 걸 보니 수학꼰대 안 봐도 딱이다. 성질 더럽거나 엄청나게 급한 것 같다.
X 됐다. 거친 문소리 하나만으로도 판단은 끝났다는 듯 내 주변 우범지대 친구들은 일제히 탄식을 질렀다.
아니나 다를까 교실로 들어온 수학선생님은 인상도 우락부락하고 덩치도 크다. 성질 더러운 선생님들의 필수 소지품인 몽둥이도 각이 잡힌 각목으로 특별히 골라온 것 같다. 겁주려고 눈에 확 띄게 가슴에 품고 교탁 앞에 떡허니 섰는데 첫인상 진짜 더럽다.
잠시 침묵과 긴장이 묘하게 뒤섞여 교실 안은 일체의 움직임도 없이 정지된 상태다.
자신의 존재를 충분히 부각했다고 확신했는지 자신감에 찬 필체로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크게 쓴다.
김지영.
뭐야. 여자 이름 아냐.
얼어붙었던 적막을 깨고 긴장이 풀린 듯 애들이 왁 자지껄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선생님은 잠시의 이탈 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듯 이름 끝자를 서둘러 휙 휘 갈려 쓰며 돌아서더니 난 수업시간에 수학 이외의 발언과 행동은 단하나도 허락지 않는다.따라서 문 제 발생 시 그에 따른 책임도 분명히 지울 것이다.
내 뒷자리 절친 태호 녀석이 아직 개시도 안 한 내가 새로 산 월간팝송책을 보다가 돌려주면서 야 X 됐다. 선생님이 교실문 들어설 때도 내뱉은 신음 같은 탄식을 또 한 번 재생한다. 그래 X 됐다 나도 맞장구치며 키득거리는데
앞으로 나와. 날 쳐다보며 김지영 선생님이 부른다. 애써 외면하며 딴전을 피우자 아까 보다 짧은 하이 톤으로 다시 한번 부른다. 앞으로 나와!
아. 첫날부터 재수 옮붙었네. C풋.
일어나기 싫었지만 일단 첫날이라 느릿느릿
최대한 천천히 교탁 앞으로 걸어갔다.
최대한 속도를 느리게 나가는 건 나의 전략이다. 상대방에게도 긴장감을 주는 한편 나 역시 상대방의 예기치 못할 공격으로부터 효과적인 대비를 하기 위한 무수한 실전 경험에서 나온 효과 만점의 자기 방어 전략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전방에서 둔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미확인 비행 물체가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그것도 빠른 속도로.
그러나 내가 누군가. 아직까지 친구들과의 싸움에서 맞아본 적이 없는 스피드와 순발력이 내겐 있다. 우리 학교 탁구부 선수 출신 친구 녀석과의 스피드대결에서도 가볍게 제압한 난데 이 정도 비행물체쯤이야 슬쩍 허리 굽힘만으로도 충분하다.
미확인 비행물체는 나를 비껴 내 뒤를 향해 계속 질주했다.
아야. C8.
욕인지 비 명소 린지 구분하기 어려운 절규에 가까운 낯익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절친 태호의 목소리다. 내가 피한 비행물체가 태호의 잘생긴 안면을 정면으로 강타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날 향한 회심의 선제공격이 보기 좋게 비켜갔음에도 선생님의 표정엔 변화가 없다. 그리고 규호를 향해서도 너도 같이 나와. 인마.
선생님이 던진 비행물체는 애초부터 나와 태호 둘을 향한 것으로 일타 양피를 노린 것이었구나 그제야 선생님의 속 깊은 의도를 눈치챘다.
애초에 태호와 나 둘을 지목해 앞으로 나오라 한 것이었는데 나는 나만 부른 줄 알고 슬로 전략을 택했던 건데
졌다. 꼰데 눈치 백 단 이네.
태호와 난 교탁 옆으로 나란히 섰다. 선생님은 둘 다 교실 밖으로 나가 있을래 아니면 정신봉으로 교육받을래 양자택일 하란다.
의외였다. 자기 수업권과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가슴에 품은 각 잡힌 각목으로 선택의 여지없이 체벌할 줄 알았는데 선택권을 준다. 이 꼰대가.
갑자기 긴장이 확 풀렸다. 결정을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자 눈치 빠르고 시력 좋은 태호 녀석이 복도에 나가 있겠습니다 전광석화같이 대답했다.
그래 넌
나가 있어. 태호를 향해 선생님은 개인별로 징계를 내렸다.
넌? 나에게 다시 묻는다.
태호와의 의리를 지키게 되면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이 들어오라 지시가 있기 전까지 복도로 나가야한다. 그것 만이 아니다.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이동하는 선생님들과 다른 반 애들의 시선과 비웃음 등 온갖 수모를 겪어야 하는데 실로 쪽팔리는 일이다. 입학식 날 첫눈에 반해 버린 우리 담임 윤홍자 선생님도 보게 될 텐데.
복도로 나갈 건가 빠따를 맞을 건가 마침내 결단의 순간. 교탁을 잡고 말없이 엎드려뻗쳐 자세를 선택했다. 태호와의 의릴 저버릴 수 없어 같이 나가자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해버린것이다. 순전히 윤홍자 선생님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었다.
복도에서 원망 어린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태호 녀석도 눈에 들어왔다. 미안했다. 근데 오히려 내가 걱정되는가 보다. 나 따라 그냥 복도로 나오지 그랬냐 규호의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고등학교 입학 후 첫 번째 수학 시간 그 시작이 쌔드무비 일지 해피 데일 지는 오로지 꼰대 김지영 선생님의 손끝에 달렸다. 열 대는 때리겠지 꾹 참자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밖에 있는 놈 들어오라 그래."
선생님의 지시가 있자 교실 앞 쪽문 입구 맨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복도에 있는 태호에게 손짓으로 들 어오라 표시하니 규호 녀석 잘생긴 이를 다 드러내며 웃는다.
너희 둘! 숙제다. 내일까지 해와. 숙제,
제대로 안 해오면 그때 가서 다시 벌 받는다. 알았나!
예! 이번에는 태호보다 내가 더 빨랐다.
자리로 들어가려 돌아서는데 아직 안 끝났다며 꼰대 아니 존경하는 김지영 선생님이 칠판에 뭔가를 다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