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 hard rock을 좋아했다

3. 우리매형 하면좋을 텐데

by 김운용


김지영 선생님과 나도 조금은 인연이 있다. 중학교 선배다. 선생님은 내가 다닌 중학교와 같은 재단에 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라서 중학교도 당연히 같은 재단 학교를 다녔던 것이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도심 한복판에 도시를 상징하는 듯이 솟아있는 산 밑에 중, 고등학교가 앞쪽에 있고 맨 뒤 후미진 곳에 고아원이 있다. 중학교에 다닐 때 우리 반에도 고아원에서 생활하는 하태강 이란 친구가 있어서 잘 안다.


태강이는 도시락을 안 싸온다. 고아원에 가서 먹고 오는데 더러는 안 가고 학교 뒷산에 올라가 점심시간 끝날 때 내려오곤 했다




내가 10대 시절을 보낸 이 도시는 호수와 산이 많은 풍경 좋은 곳이다. 도시 이름도 풍경 좋은 것만큼이나 예쁘다.


300m밖에 안 되는 높이의 산이 도심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어 산 중턱에만 올라가도 사방이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분지형 지형이라서 사방이 탁 트여 도시 전체를 한눈에 다 조망할 수 있다.


특히 봄가을에 이 작은 도시 전체를 희뿌옇게 덮어 버리는 안개 풍경은 이국적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로 좋다. 안개가 자욱하게 도시 거리 곳곳에 내려앉아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거리 풍경은 사람들을 무겁고 우울하게도 하지만 차분하고 사색에 젖게 만들기도 한다. 난 그래서 고향은 아닌데도 이 도시가 고향 같다.


이런 좋은 환경과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학교 내 풍경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복지사업을 한다고 고아원을 설립했지만 고아들에 대한 안 좋은 얘기들을 태강이는 말 안 했지만 눈으로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1947년생인 김지영 선생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 해에 두 살 아래 여동생을 데리고 고아원을 나와 다. 성인이 되면 고아원에 더 이상 있을 수 없고 자립해야 하기 때문에 고등학생이 된 여동생을 데리고 사글셋방을 하나 얻어 신문이나 우유배달도 하고 막노동도 하며 생활했다고 한다.


여동생도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간호전문대학을 입학해 지금은 동해 바닷가에 있는 중소도시 공립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선생님은 여동생이 간호전문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뒷바라지하다가 고등학교 졸업한 지 3년 만에 이 도시에 있는 유일한 4년제 국립대학 수학교육과에 합격했다.


지난번 하숙집에서 말씀하신 김지영 선생님의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자 현재 우리 학교 교감선생님 이신 이창영 선생님이 참고서도 주시고 돈 버느라 시간이 부족해 뒤떨어진 과목 학습지도도 해주시 는 등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한다.


나중에는 이창영 선생님이 교회 장로 시라서 교회 사택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숙식을 걱정 없이 해결할 수 있게끔 큰 도움을 주셨다.




기타도 교회에서 선배한테 틈틈이 배웠는데 생김과 는 다르게 재능이 있었는지 봉사활동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여름 성경학교 때 기타로 반주까지 할 정도로 실력을 뽐냈다고 한다.


그러다 다른 교회와 연합으로 여름 성경학교를 진행하다 다른 교회 선생님과 첫눈에 반해 연애를 하게 되었다. 결혼을 약속하고 1년 가 까이 사귀었는데 아가씨 부모님이 고아라고 결사반대해 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충격을 받은 선생님은 이창영 선생님께 사택을 떠나 독립하겠다고 말씀을 드린 후 대학 다닐 때부터 후배 소개로 알바를 해왔던 음악다방 DJ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방에 딸린 방이 두 개나 있는데 하나는 여자 종업 원들이 사용하고 다른 방하나를 선생님이 사용했 다. 숙식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어 고아인 선생 님한테는 선택의 고민도 할 필요없었다.


돌체란 팝송 성인가요만을 전문으로 틀어주는 음악다방인데 선생님도 목소리가 테너톤이라 인기가 있었다고 하며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한 미국 방송 AFKN을 주로 시청하면서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팝송이나 록음악 들을 소개하며 양키시장에서 LP판까지 구입해 방송까지 했다고 한다.


선생님 말고 디스크 쟈키로 쭈욱 나갔어도 잘 나갔을 만큼 실력이 있었다. 수학선생님인데도 영어실력 이 좋아서 윤홍자 선생님 대신 스페어로 영어수업도 더러 맡곤 했다.




CCR과 팀의 리더인 존 포거티를 너무 좋아해 우리에게 숙제를 내준 것이다.


존 포거티는 지금 표현대로라면 전형적인 흙수저로 미국의 하층계급의 가정환경에서 자라 기득권에 대한 저항의 식이 높았고 그가 만든 노래 대부분이 반전 기득권에 대한 저항을 주제로 다룬 인물이라 선생님이 자신의 처지와 같아 더욱 좋아한 것 같다.


70년대 말 암울한 시기라 선생님은 우리에게 CCR 이 부른 가사에 담긴 의미나 메시지에 대해선 특별 히 말해주지 않았다.




그 후로도 선생님의 하숙방에 태호와 같이 자주 들렀다. 선생님이 고아였다는 것을 포함해 과거 이야기는 그때마다 들려주신 것이다.


호와 난 외롭고 불쌍한 선생님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찾아보자며 고민하다가 언젠가 우리에게 누나 있냐고 물었던 일이 퍼뜩 기억이 났다.


태호도 누나가 있고 나도 누나가 있다. 태호네 누나는 25살이고 우체국에서 일하고 있고 얼굴도 예쁘다. 그리고 대학도 나왔다. 집도 우리 집보다 잘살아서 카세트도 두 개나 있는데 규호 방에 따로 있어 늘 부러웠다.


우리 누나도 이쁘긴 한데 솔직히 태호 누나한테 꿀린다. 공무원이긴 해도 대학을 안 나왔다. 나이도 스물한 살로 어리다.


근데 김지영 선생님이 우리 매형이 되었으면 좋겠 는데 태호 누나보다 꿀려서 선뜻 선생님께 말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