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 hard rock을 좋아했다

4. 김지영장가간다.

by 김운용


종례시간까지도 멀쩡했는데 집에 가려고 학교 정문을 막 나가려는 순간에 갑자기 소나기가 수돗물

처럼 쏟아지는 바람에 집에도 못 가고 10여분째 음악실 건물 입구 계단에 앉아있는 중이다. 처마가 넓어 계단에 앉아있어도 비가 들이치지 않아 안전 하긴 했다.


학교 운동장에는 금세 물웅덩이가 곳곳에 생겨 났다. 장마가 시작돼서 언제든 비가 내릴지 모르니 우산을 챙겨가라는 엄마의 예언 같은 잔소리를 귓등으로도 안 듣고 무시했는데 후회막급이다.


교무실에만 들르지 않았더라도 비오기 전에 시내버스를 탈 수 있었을 텐데 괜스레 담임 백 씨가 원망스러웠다.

오늘은 암튼 여러모로 재수 없는 날이다.




아침에 모처럼 시내버스 타고 등교하는데 버스 안에서 반가운 얼굴 미애를 만났다.

빈자리가 있어도 개폼 잡느라고 앉질 않고 버스 뒷부분으로 들어가 손잡이를 잡으려는데

" 용식아 너 이 버스 타니? "

옆을 돌아보니 미애였다.

" 어, 어, 미애야. 오랜만이다. 너도 이 버스 타? "


미애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원래 말이 없었다.


미애는 국민학교 6학년 때 같은 반 내 짝이었고 동창생이다. 얼굴도 예쁘고 목소리까지도 예뻐서 우리 반 되고나서부터 좋아했다.


갑자기 만난 탓에 나도 별로 할 말도 없어서 창밖만 내다보고 있는데 그때였다. 난 미애 혼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용식이 너 나는 몰라 보니 또 누군가 하고 옆을 쳐다보니 미애 옆에 가려져서 안 보였는데 역시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왈가닥 성자가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가뜩이나 목소리 큰 성자는 너 요즘 공부 잘하냐며 마치 버스 안에 탄 사람들 다 들으라는 것처럼 얼굴을 내쪽으로 내밀며 물었다. 일단 짜증이 밀려왔어 나 미애도 옆에 있어 꾹 참고 그래 잘한다고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다시 앞만 보고 있으려는데


" 너 6학년 때 꼴찌 한 적도 있었지? 그렇지. "


성자 너 이 나쁜 놈의 계집아이야. 너도 꼴찌 했었잖아.

차마 이 말은 내뱉지 못하고 너무 쪽팔려서 아직 학교까지 두 정거장 더 가야 하지만 중간에 그냥 내려 버렸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날 쳐다보는 것 같아서 서둘러 내리다 보니 미애한테 인사도 못했다.




아침부터 진짜 재수 없었는데 잊을만하니까 재수 없는 문제가 내게 또 일어났다. 종례를 끝내면서 평소에 나한테 조금도 관심을 표시하지 않던 담임선생님 이 뜬금없이 날 지목하면서 남으라고 한다.


너하고 태호가 빳따를 잘 아니 목공실 가서 빳다 좋은 거 구해서 다듬어 오란다. 나와 태호가 빳따를 왜 잘 안다고 판단하시는 건지 그것도 이해가 안 갔고 하필 태호도 광철이도 문수도 있는데 왜 날 콕 찍어 서 지목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정작 빳따를 잘 알고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은 따로 있었다. 매일 지각하는 박호순이, 짤짤이 도사 명수, 기석이, 우리 반 단골 꼴찌 종호 걔들이 진짜 빳따를 잘 아는 애들인데 걔네 안 시키고 날 시킨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담임선생님 빽씨의 오판이다.


어이가 없었지만 담임선생님 지시라 목공실에 가서

한 대만 맞아도 부러질 듯 약해 보이는 각목 한 개를 대충 구해서 담임 빽가한테 전달해주고는 집에 가려고 막 나오는데 멀쩡하던 하늘에서 비가 갑자기 쏟아지는 것이다.




호는 오늘 엄마랑 큰집 제삿날이라며 먼저 갔다. 규호는 우산도 갖고 있었다.


벌써 10분도 더 지났는데 비는 쉽게 그칠 거 같지 않다. 평소 이슬비 정도는 그냥 안 피하고 맞으며 다녔다. 우리 집 전통이다.

아버지, 큰형도 우산 없이 비가 오는데도 그냥 비를 맞고들 집에 오셨다.


버스 정류장까지 5분은 걸리는데 뛸까 기다릴까 고민하고 있는데 김지영 선생님이 교무실 쪽 건물에서 나오고 있다. 우산을 쓰고 약간은 불편한 걸음임에도 바삐 걷고 있다.


선생님 같이 가요 불렀는데 굵은 빗소리 때문에 못 들었는지 그냥 간다. 이 자리에 계속 있을 순 없어서 선생님한테 달려가려는데 김지영 선생님 앞에 누군가 서있는데 그 얼굴을 확인한 순간 난 제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우산을 나란히 쓰고 뒤도 안 돌아보고 정문을 나섰다. 윤홍자 선생님과 김지영 선생님이 다정하게 학교 정문을 나간 것이다.


교무실에서 서로 마주 보는 자리라지만 별로 친하신 것 같지 않았는데 두 분이 왜 다정히 같이 걷는 걸까 궁금했다.




그새 비가 그쳤다.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오는 내내 김지영 윤홍자 두 분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어쨌든 오늘 재수 옴 붙은 날이다. 딴 데로 새지 말고 학교 끝나고 곧장 집으로 오라는 엄마의 말씀을 오늘 만은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미련 없이 우리 집 쪽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비 많이 맞았지. 앞으론 우산 갖고 다녀. 니아 부지 닮을 게 없어 그런 걸 닮냐. 이눔아.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엄마의 잔소리가 젤 먼저 날 반겨준다.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어제저녁과는 딴판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하게 개인 기분 좋은 날씨다. 후다닥 세수만 하고 콩나물국에 밥만 말아서 신속히 해치우고는

다녀오겠습니다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오늘도 버스를 타고 싶은데 타지 않았다. 미애가 궁금해 타고 싶었지만 성자가 또 나타날까 봐 걸어서 등교하기로 했다.


교실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으려는데 광철이 녀석 이 내 자리로 다가와 니들 들었냐며 수선을 피운다.


" 뭔데 아침부터 시끄럽냐. 뭔데? "

" 수학 김지영이 윤홍자랑 결혼한데 "

" 광철이 너 이 새끼 뻥치는 거 아냐"

" 아냐. 김지영네 반 애들이 그러더라 "


호가 내 등을 두들기며 용식아 X 됐다. 우린 어쩔 내며 우는 흉내를 내며 지랄을 한다.




나는 어제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목격한 터라 태호나 다른 친구들보다는 충격이 덜했지만 그래도 왠지 기분이 착잡했다.


태호와 난 은근히 자신들의 누나와 김지영 선생님이 연결되어 매형이 되었으면 했었는데 그 기대가 허무하게 무너져 섭섭하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상대가 윤홍자 선생님이라니 슬프다.


2교시가 수학 시간인데 기다려진다. 20년도 안 되는 짧은 내 인생에 수학 시간이 기다려진다는 건 만으로 도 두 분의 결혼 소식은 큰 사건이었다.


좋은 아침이다. 어제 비안 맞고 잘들 들어갔냐!


2교시 시작종이 울리기도 전에 교실문을 들어서면 서 김지영 선생님이 평소 같지 않게 너스레를 떠신다.


주번 누구냐? 칠판 좀 한번 더 깨끗이 지워라.




우리 줄 맨 앞자리 종열이가 지우개를 털러 나간 사이에 광철이 단짝 문수가 벌떡 일어서며 질문 있습니다 선생님께 용감하게 질문을 한다.


대답은 않고 문수를 쳐다보는 선생님을 향하여 모두의 시선이 꽂힌다.


윤홍자 선생님이랑 결혼하시나요? 머뭇거림 없이 바로 용건을 말하는 진짜 문수 오늘 너무 용감했다.


그래 선생님 담달에 장가간다.

교실 안이 갑자기 뒤집어진다. 책상 위로 올라가는 놈, 책상을 치며 오버하다 뒤로 자빠진 놈, 흥분과 충격의 도가니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다. 나도 갑자기 C.C.R이 생각나 책상을 두두두두 두들겨댔다.


Who will stop the rain.


<1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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