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초맨!

여름 이야기1

by 김운용


관측사상 최고로 무덥고 긴 여름이 될 거라는 뉴스를 보다가 비따닥하게 소파에 반쯤 기댄 몸을 반사적으로 일으켜 친구 P에게 전화를 걸었다.


" 친구! 삼복더위에 수고가 많다. 무탈하지?

야. 근데 시원한 계곡물에 한번쯤 발이라도 담그고 여름을 보내야 하지 않겠냐."


" 다른 친구들한테는 내가 따로 연락하마."


복잡하게 질질 끄는걸 싫어하는 P는 자신의 성격 그대로 두말도 않고 O.K시그널을 보냈다.


P와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O와 K에게 계곡으로 물놀이 가자고 카톡을 보냈다.


P와 O와 K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은 남다른 우정을 기념하는 친구들이다.

해마다 한 두번씩 느닷없이 모임을 추진해도 번개같이 고향땅으로 달려가는 의리와 우정으로 뭉친 사내들이다.


유일하게 고향땅에 남은 친구 P.

옥수수와 고추 농사를 짓고 가을이 오면 깊고 깊은 산을 올라 버섯을 따는 심마니다.


모임때마다 숙소 잡는 일이며 반찬같은 먹거리 일체를 포함해 모든 준비를 도맡아 하는데 툭툭 싫은 소리를 뱉으면서도 실은 챙길걸 챙겨주는 자상한 남자다.


그의 콘테이너 창고는 그야말로 산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보물창고다.

3년간이나 소주에 담가 만든 산더덕이술이며 송이술, 오이자발효액 등 흔하게 볼 수 없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젊은 날에 그를 보면 별로 성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는데 그의 보물창고를 보고 적지않이 감탄했다.


친구들이 방문할라치면 자신의 보물창고에 들어가 귀한 자연의 작품들을 아끼지않고 나누어 주곤 한다.


노는 거라면 제삿날밤이란 것도 잊어버리고 홀딱 빠져버리는 P가 많은 돈을 땄다는 소리를 나는 별로 듣질 못했다.


노름엔 눈뜬 장님인 내가 어쩌다 노름판에 끼였다가 금새 바닥이 나자 선뜻 자신의 판돈에서 일부를 건네주며


" 친구끼리 놀자고 하는 건데 이거 갖고 더 놀아라."


조선시대때 태어났으면 한량으로 딱 제격인 친구다.


K.

고등학교를 마친 뒤 일찍이 고향을 떠나 다른 지방에 있는 D도시로 진출해 건물 내부 인테리어와 실내수리를 업으로 하는 작은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들 가운데 키가 젤 크다. 멀대같이 키만 크고 마른 몸매때문에 학창시절부터 붙여진 별명인데 수십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이름보다는 별명으로 통하는게 더 자연스럽고 많이들 불러준다.

옛말에 키 크면 싱겁다는데 이 친구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써야할때 기꺼이 쓰기는 하는데 기본적으로 짠내가 나는 친구다. 모르긴해도 모처럼 여자와의 데이트기회가 생겨도 손익관계를 따져가면서 계산기를 두들겨 재고 또 재다가 여자의 분내를 맡을 절호의 기회를 놓치기 일쑤일거다.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물질적 투자를 시도하고 아직은 정력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식의 남성미를 의도적으로라도 과시한다면 기본적으로 선한 얼굴과 말수도 적고 차분해서 뭍 아낙들로부터 호감을 받게 될텐데 만날때마다 아쉬운 생각에 연애론을 전해주게된다.


연애질에 서툴다고 충고를 하면 자신도 같은 교회다니는 신도중에 친한 여자도 있고 저녁마다 반찬 챙겨서 가져다주는 아줌마도 있다며 침을 튀겨가며

내게 반박을 하는걸 보면 얌전한 강아지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 앉는다는 속담처럼 K도 영 쑥맥은 아닐것이다.


키가 크니 눈도 높아 지 맘에 쏙드는 여자를 찾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O.

나와는 너댓살부터 이웃해 어울려지내던

불알 친구다. 불알친구란 말의 자세한 유래는 모르지만 미루어 짐작컨데 같은 해 아기를 낳은 엄마들이 서로 자신의 아들의 고추와 불알을 꺼내어 비교해가며 가까이 지냈던 친구사이를 말하는 것 아닌가추측해본다.


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어릴때 사타구니근처 바지밑을 둥그렇게 구멍이 난 바지를 입었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바지를 내리지않고도 똥오줌 싸는 일을 쉬이 하게 하도록 만든 특별한 용도를 위해 만든 옷이다.


오래된 앨범을 뒤적이다 찾은 O와 나의 불알밑이 뚤린 바지를 입고 찍은 사진속에서 불알친구의 어원과 증거들을 찾아 낼 수 있었다.


O는 염력, 우주, 영혼과 정신세계 등 정신심리나 그와 관계가 있는 철학에 전문성은 부족해도 나름의 논리와 이론적 근거를 갖고 있었다.


한때 이외수의 칼이나 장수하늘소와 같은 심미주의 염세주의 자연주의 경향에 심취해 털이 많은 부류들의 전매특허인 도인의 풍모마저 제법 풍겨나왔다.

어수룩한듯 해보이지만 허허실실하다고나 할까 노름할때를 보면 은근 현실적인 뱃팅과 관리로 몸을 사리는데 세파에 시달려 어쩔수 없이 일부 변신을 선택한듯 하다.


요즘은 프리메이슨이 제기하는 거대한 음모론에 적지않이 빠져든듯해 우려스렵지만 천성이 선한 친구라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 지루했어도

끝까지 경청해주고 싶은 친구다.


금욜 오후

P가 미리 선점해놓은 모임장소이자

국민학교때 단골 소풍을 갔던 도솔암계곡을 향해 나의 검은색 애마의 시동을 걸었다.


울퉁불퉁 커다란 바위사이로 거칠게 흐르는 계곡을 배경으로 작은 돌위에 서서 사이다 한병 들고 폼을 잡던 나의 어린 추억을 찾아서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았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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