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의 집을 먼저 들러 낚시도구를 포함한 생필품을 챙긴 후 마트로 이동해 과일이며 고기 술 음료 채소등을 사서 각자의 차량에 분담해 실었다.
목적지인 캠핑장까지는 면소재지 마을에서 지방도로를 따라 십여분을 더 달려야 했다.
서두른답시고 일찍 길을 나섰지만 어느새 한낮을 뜨겁게 달군 태양이 해넘이를 하며 풀어놓은 빨간 물감때문에 푸르디푸른 강물엔 붉은 빛깔이 번져가고 있었다.
시원하게 뻗은 도로를 타고 저 강을 지나갈때면 한겨울에도 맘이 푸근했다. 어릴적 추억이 묻어있고 부모님이 살아온 고단한 역사가 있기에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겨울 강변에 몇번이고 차를 세우곤 했었다.
지금은 폐교가 된 국민학교터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우측으로 계곡이 보인다. 국민학교라 불렸던 어린시절 흙먼지가 날리는 비포장길을 터덜터덜 걸어서 소풍을 갔었다.
그때 그 기억속에 남아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는 달라진 계곡이 어쩐지 낯설었다. 산천은 의구한데라 했는데 그말이 무색하리만큼 물이고 산이 있는 곳엔 죄 개발의 삽질로 파헤쳐 산도 물도 더는 옛산 옛물이 아니다.
원래는 계곡물 가까운 모래밭에 자리를 잡을 계획이었는데 주변에 수풀이 있어 모기나 벌레들도 많고 음식물처리나 화장실 이용을 위해선 물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는 것이 좋겠다는 다수의견에 따라 캠핑장터를 야영지로 결정했다.
몇년전까진 캠핑장으로 운영해왔었는데 주민들간에 잇권문제로 갈등이 생기게 되면서 관리를 하지않아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곤 텐트를 설치할 터와 낡은 벤취들 몇개 뿐이었다.
물이 있고 숲이 우거진 곳마다 시설좋은 팬숀이나 혹은 리조트를 지어대니 마을주민들이 운영하는 캠핑장은 점점 설 자리가 없어졌다.
돈을 들여서라도 수익을 만들어내자는 쪽과 어차피 편의시설이 구비된 곳을 찾는 추세니까 돈들이지 말자는 주민들간의 입장차가 커지고 갈등이 심화되면서 양쪽다 캠핑장 관리에 손을 놓아버려 흉물스러운 폐가가 되었다.
감회도 새롭고 땀도 식힐 겸 짐을 내려놓기 바쁘게 계곡물로 달려갔다.
계곡바닥의 돌들이 미끄러울 정도로 이끼도 많고 물도 썩 시원한 느낌을 주지 않았지만 이끼가 산다는 건 그래도 물고기들이 많이 서식한다는 증거다.
수질오염 요인만 잘관리한다면 아직은 좋은 물이다.
캠핑장에 해거름이 생기기 시작해 곧 날이 어두워기전에 서둘러 텐트 설치와 음식부터 준비해야 했다.
짐을 정리 하던 손들을 툭툭 털고 하나 둘 캠핑의자를 끌어당겨 평상앞으로 모여 앉으며
" 배고프다 밥부터 먹고보자"
합창을 하듯이
세 친구가 일제히 나를 향해 소리쳤다.
라면을 끓이고 밥하는 것 외에는 음식만드는 일엔 잼뱅이들인 마초맨
P와 O 그리고 K .
몇년 전만 해도 나도 친구들과 별반 다를바 없었다. 그런데 술마시고 귀가한 어느날 밤 아내의 손을 빌리는 것보다 간단한 음식들은 내손으로 직접 만들어 먹자는 깨달음을 문득 느끼게 되면서 주방을 자주 들락거렸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칼질이 익숙해지니 친구들과의 모임때 해정하라며 한 두번 북어국을 끓여주었던 일이 있었는데 단지 그 기억하나 때문에 조리사이자 주방담당으로 나의 역할이 고정되어 버렸다.
아직은 달걀말이같은 밑반찬 몇가지와 국이나 찌개류 몇가지를 맛을 낼 뿐이지 드러내놓고 조리를 하겠노라 나설 처지는 아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긴 했다.
그러나 야영이라 제대로 된 밥상차림을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만서도 극히 일부의 불만세력이 맛이나 재료를 문제삼아 시비를 걸 것을 대비해
미리 일침을 해두어야겠어서
캠핑의자를 젖히고 누워 입만 벌리고 있는 친구들을 일으켜 세웠다.
잠시 주목!
에 앞으로 이박삼일 동안 주방을 책임져야하는 입장에서 몇가지 방침을 발표하겠다. 특별한 일 아니면 무조건 따른다.
첫째 죽이되든 밥이되든 주는데로 먹는다.
둘째 밥먹은 뒷처리는 다같이 해결한다.
셋째 간편하고 빠르게 필수재료만 이용해 음식을 만들거다.
넷째 환경을 생각해 버리는 음식이 없도록 깡그리 먹자. 이상.
삼일 동안의 식단운영방침을 발표하자
친구야 그런게 어딨냐?
여기가 무슨 공산주의 독재국가도 아니고
니가 아무리 주방장이라지만 먹고싶은거나 맛이 좋다 나쁘다 의견은 말할수 있는거 아니냐.
노조하다 해고까지 됐었다는 놈이 그럼 안되지.
옳거니!
배가 고프니 아무거나 대충 대충 요기를 하자고 애원하던 민초들이 돌연 낯빛을 바꾸어 집단적으로 불만을 제기해왔다.
성질 급한 P는 뒤로 젖혀진 캠핑용의자를 똑바로 일으켜 자세를 고쳐앉더니
'독단적인 식단운영방침을 철회하라'
구호를 외치며 핏대를 세웠고
K와 O는 노조일을 했던 내 경력을 거론하며 P의 행동에 합세해 압박을 가해왔다.
'노조하다 해고까지 된 놈이.'
잠시나마 주방장이란 권력의 맛에 빠져 얇아진 내 양심의 벽을
불알친구 O의 일갈이 사정없이 긁어버렸다.
민주투사, 권력, 독재자, 내로남불, 자기기만, 위선
작금의 시대상황이 현실이 되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흔들었다.
의리와 우정으로 오랜 세월 다져온 내 친구들의 눈에도 내가 칼잡은 권력으로 비쳐지고 독재자라고까지 생각이 들었다니 그건 정말이지 억울한 일이었다.
그래 친구들은
굴종만 강요하는 권력에 맞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며 단체행동에 나서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조와 직장민주화를 외치며 온갖 탄압과 고난을 겪어가며 싸워온 지난 날을 스스로 부정할 순 없기에 O의 말을 듣는 순간 숙연해지지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사람 참 간사하다.
친구들의 정당한 주장을 수용하려는 의사에 앞서 노조에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권위가 서지않고 끝도 없는 요구를 주장해 회사분위기가 방만해진다며 노조탄압에 앞장섰던 이사장의 터무니없는 목소리가 먼저 떠오르니 말이다.
권력이란 그 맛이 참 마약과도 같은가보다.
한줌도 안되는 능력을 가지고 권력을 행사하고 쥐뿔도 아닌 것들이 공정과 상식이라 허울좋은 가면을 쓰고 위선의 칼을 휘두르는 걸 보면.
한낮 백년도 못사는 미물이요 중생이거늘
어찌하랴만은.
결국 난 친구들의 정당한 요구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여 양파컵질을 벗겨내고 감자를 씻고 김치와 소시지 햄등을 넣은 부대찌개를 한냄비 가득 끓여 친구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었다.
소주와 맥주를 일대일로 섞어 몇순배 돌리며 식사를 마친 뒤 앞서 내가 말한 식사에 관한 방침과는 무관하게 자발적으로 설겆이와 식탁청소를 분담해 처리해늫고
우리는 계곡으로 달려갔다.
어린 날 홀라당 벗고 멱을 감던 그시절로 돌아간 듯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않은 채 원초적 본능을 과시하며 어두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보름을 살짝 지났지만 보름달처럼 밝고 환하게 계곡을 내리 비추고 있는 어스름 달빛탓에
물장구를 치는 친구들의 적나라한 실루엣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캠핑장이었던 곳이어서 여기저기 버려진 목재와 판자등을 주워다 모닥불을 피웠다.
나방이나 각종 풀벌레들도 쫒고 분위기도 잡자는 의도였는데 벌레도 날아들지 않았고 특히 극성맞게 달려드는 모기가 하나도 없어 편안했다.
저녁을 먹기전에 놓아 둔 어항을 꺼내어 어항안에 몰려든 쉬리 꺽지등 민물고기로 끓인 얼큰한 매운탕과 삶은 옥수수와 수박으로 본격적인 술판을 시작했다.
여느 마초들과 달리 우리의 캠프화이어는
정치와 돈 그리고 종교에 관한 논쟁은 금기다.
간혹 금기를 깨고 화두를 던져도 반박이나 토론은 결코 길게 이어가질 않는다. 누군가가 그만하자 이의를 제기하면 즉각 종결해버린다.
친구들의 의식은 특별한 이념이나 주의도 없고 편향적이지도 않다. 단지 마초맨 본능에 충실해 기본적으로 약자의 편에서고 정의감이 뚜렷하다는 게 전부다.
그래서 난 나와 나의 친구들을 순정 마초맨이라 이름을 지어 밴드까지 만들었다.
물론 일반 마초맨들의 특징도 다분히 보유하고 있어 반항끼와 의리를 빼면 시체다. 정력의 남성미를 뽐내고 걸쭉하고 야한 육담도 즐긴다.
환갑을 넘긴 우리들의 나이,
분수도 모르고 아직도 젊은 냥 결기를 보이며 분기탱천 무언가를 벌여보고자
허세를 부려보지만 우리는 안다. 인생시계로 볼때 휴식을 준비를 할 때라는 걸.
의학기술이 발달하고 질병예방을 위한 건강관리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대 수명이 80대 중반에 이르렀다고 한다.
작고하셨지만 어머님 생전에 지내실 요양원을 찾아 여러군데를 다녀봤는데 가는 곳마다 할아버지에 비해 할머니들의 수가 훨씬 많았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기대 수명이 칠 팔년 정도 높기 때문이란다. 어머니 입소문제로 상담을 했던 어느 요양원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기대수명외에 건강수명이란 게 있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만큼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아야한다는 욕구도 커져 남녀 공히 70대 중반까지는 아프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논리에 따른 주장인데
육십 둘,
환갑을 지난 나의 친구들이 마초맨으로 살 날도 그리 많이 남진 않았다.
입추가 가까워져가는 밤,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찌르르 찌르르 어둠속 적막을 깨고 들려왔다. 가을이 오면 날개를 접어야하는 슬픈 운명을 노래하는 애절한 노랫소리처럼.
밤은 깊어가고 평상위의 술병의 수도 늘어가자 슬그머니 금기가 깨져갔다.
잼버리 사태며 러시아 우크라전쟁,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 정치사 전쟁과 국제관계, 이데올로기까지 분야별 시리즈로
확대되었다가
마지막엔 풀벌레가 애절하게 울어대는 감성이 일어나는 고즈녁한 밤에 어울리는 연애담으로 마무리되었다.
육십년을 지켜온 순수남 친구 K가 가까이 지내는 여인들(?)이 생겨서 고민이라며 상담을 요청하면서 우리들의 화제는 다시 마초들의 논리구조안으로 들어왔다.
K는 삼십대초에 결혼했다 이혼한 이후로 지금껏 혼자 살고 있다.
그런제 어느날 십년간 같은 교회에 다니며 성경공부도 같이 하고 여러 봉사활동도 다니던 여인과 단둘이 여행도 가며 가까워졌고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 수리를 해줘 고맙다며 저녁마다 반찬을 해다주며 친절을 베푸는 또다른 여인이 접근해와 둘 사이에서 누구에게 순정을 주어야하는지 고민을 털어놓았다.
P와 O 그리고 나 셋 다 각자의 입장에 따른 선택지를 술기운에 불콰하게 달아올라 높아진 톤으로 저마다의 논리로 펼쳤다.
O는 의외의 물질숭배론자 답게 식당을 운영하고 아파트를 두채나 소유하고 있다는 반찬녀의 선택에 목청을 돋구었고 P는 누가 착하고 이쁘냐 외모론을 강조했다.
사랑의 바이블「연애론」을 지은 스탕달은 무수한 여인들과의 염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도 바칠 만큼 평생을 단하나의 사랑에 순정을 주었다.
스탕달의 그녀는 유부녀였으며 그리 미인도 아니었으나 스탕달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뜬 그녀를 위해 수많은 연애편지를 썼다.
그 연애편지를 토대로 일생의 역작 연애론을 집필한 것이다. 사랑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심리 분석을 적어놓았으니 서점에 가 한권 사서 읽어보라고 했다.
어떤 선택도 미리 경험해볼수없는 일이라
친구 K에게 해줄 걸맞는 해답은 없었다.
사랑은 뭔지 모를 끌림과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그리움과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게 하는 설레임 같은 것.
더늦기전에 그런 사랑을 해보라며 우리는 술잔을 높이 들고 친구 K의 연애가 제대로 익어가길 기원하면서 계곡아래로 울려퍼져 나갈만큼 큰소리로 건배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