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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호태
따뜻한 사람들
by
김운용
Jun 1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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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열면 야트막한 산이 손에 닿을 만큼 담장 뒷편 가까이 붙어 있다.
산이라 부를만큼 높지는 않지만 소나무와 밤나무 상수리나무로 가득히 숲이 우거져 있어 숲속에서 불어오는
상긋한 바람은 여늬 큰 산 못지않게 맑고 시원하다.
아침마다 떼를 지어 이나무 저나무를 옮겨 다니며 울어대는 까치와 참새 까마귀들의
합창소리는 피곤에 지쳐 무거워진 눈꺼풀마저 가볍게 일으켜 세운다.
호태와 난 맑은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산아래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데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엘레베이터를 타고 아파트정문을 나와 전철이 지나가는 철로밑 굴다리를 함께 건넌 후 전철역입구에서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간다.
우리 아파트는 전철이 지나는 철로 아래 굴다리를 건너가야만 외부로 통하는 길로 이어진다.
500여 세대가 살고있지만 편의점 하나 없다. 한 이삼년전에 ○○○마트가 있었는데 장사가 안된다며 문을 닫은 후
부터
약국이나 마트와 같은 생활에 필요한 편의시설을 이용하기위해 주민들은 철길아래 굴다리를 건너 십분은 걸어가야 했다.
치킨을 먹거나 호프한잔을 마시고 싶어도 굴다리를 건너가야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니 편리함을 쫒는 사람들에겐 선호도가 떨어지지만
재개발 이전부터 살아온 주민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친밀도가 좋고 크고 작은 이벤트도 자주 열리는 공동체커뮤니티같은 곳이다.
봄이면 주민들이 아파트 담장밑에 새로운 풀꽃들을 심어 꽃길을 만들고
여름엔 할머니들이 정자에 둘러앉아 수박을 썰어 오가는 주민들을 불러 세우고 한조각씩 건네주곤 한다.
빨갛게 익은 고추와 올망졸망 도토리 알맹이를 수북하게 쏟아붓고 따가운 가을 볕이 내리쬐는 양지쪽을 찾아 이리저리 돗자리를 옮기는 할머니의 굽은 등을 보며
멀리 떨어진 고향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흔적만 남은 계곡엔 엣날에 사슴이 살았대서 사슴마을이라 불려온 작은 아파트에 호태와 내가 살고 있다.
" 안녕하세요."
" 안녕."
마주칠 때마다 호태와 난 언제나 반갑게 인사를 한다.
호태는 초등학교 삼학년 열살
나와 나이차이가 오십살도 넘지만 통하는게 많아 절친하다.
학교 끝나자마자 학원에 가야하는데 빼먹고 친구들과 놀았다가 엄마한테 혼이 난 날 풀이 죽은 모습으로 아파트현관 계단에 앉아 있다가 나와 마주쳤다.
" 뭐하냐? 태권도학원은 갔다왔니? "
현관 출입문 비밀번호를 누르려다 돌아서서 물으니 들릴듯 말듯 작은 소리로 대답을 하는데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않았다.
암때나 만나도 씩씩하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를 놓치는 법이 없었는데 오늘은 잘생긴 눈을 내리감은 호태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보였다.
엄마 올때 됐다며 능숙한 손놀림으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다람쥐처럼 들어선 호태의 시무룩한 얼굴을 마주하니 왠지 측은한 생각이 들어
" 앞으론 엄마한테 미리 얘기해. 친구하고 놀다가 학원가는 걸 까먹었다고. 알았냐? "
땀으로 흠뻑 젖은 호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할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6층에서 문이 열리자 호태가 인사를 한다.
" 호태야. 아이스크림 사먹으러 갈래."
호태는 번개보다 빠른 동작으로 다시 엘리베이터안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안엔 호태와 나 둘뿐이라 9층버튼을 다시 누른뒤 1층 버튼을 눌렀다.
철길아래 굴다리 너머 아파트 상가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호태와 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호태는 6층 난 9층
엘리베이터안에서 만나는 짧은 순간에도 우린 마음을 열고 서로의 관심사를 터놓곤 했다.
관심사라고 해봐야 호태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 뿐이지만 그래도 자기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니까 만날때마다 나보다 먼저 말을 걸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터놓고 말 할 수 있어서 였는지 호태와 난 날이 갈수록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됬다.
호태는 날 자신의 할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별별 얘기들을 다 해주었다.
퇴임기념으로 한잔 하자는 친구들과의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전철역 출구를 빠져나오자 마자 하늘이 부숴질듯 요란한 천둥소리가 울리고 번쩍번쩍 번개가 치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집을 나설때는 하늘이 멀쩡해 우산을 챙길 생각은 꿈에도 하지않았다.
비가 그칠때까지 잠시 기다릴까 망설이다 집까지 멀지않으니 뛰어가야겠다며 전철역 출구 앞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자마자 냅다 달렸다.
마침 전철을 타기 전에 무심코 받아둔 아파트 분양광고 전단지의 겉포장 비닐을 뜯고 속에 든 행주용 수건으로 머리만 가리고 뛰어가는데
" 할아버지!!"
누군가 날 불렀다.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목소리였다.
돌아다보니 꽃무늬가 새겨진 비닐우산을 든 나의 친구 호태가 횡단보도를 건너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태권도복을 입은 호태가 우산을 건네며
" 할아버지 우산없어요? 비맞으면 머리 빠지는데 "
" 우산? 할아버진 필요없어. "
" 왜요? "
" 음 머리카락이 별로 없잖냐."
호태가 받쳐주는 우산을 받아들고 빗물에 젖은 호태의 가방을 손으로 가려주며 우리들의 아파트를 향해 걸어갔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호태와 내가 만난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호태가 내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온 게 호태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부터니까
벌써 2년이 다 돼간다.
엄마손을 붙들고 등교하던 날 엘리베이터안에서 첨 만났는데
배꼽아래에 닿을 만큼 자그마했던 호태는
그새 많이 자랐다.
아이스크림껍데기를 손에 들고 현관입구에 서서 할아버지랑 친하니까 니 이름 하나 지어주마 했더니 자기 이름있다며 반색하면서도 궁금해하는 호태에게
옛날엔 이름이 여러개 있었는데 어릴때 부르는 이름, 어른이 되서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었다니까
"뭐라고 지을건데요."
엄마닮아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뜨면서 내 얼굴을 올려다 본다.
" 음. 돈키호테라고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무진장 착하고 좋은 사람이야. 너도 그 사람 처럼 착하니까 호태라고 부르면 어떨까? "
" 어때? "
" 엄마 아빠가 지어준 이름은 진짜 이름이고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은 별명이지."
우리 아파트에 새로이 마트가 생겼다.
담배를 사러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6층에서 문이 열렸다.
호태엄마였다.
" 안녕하세요. 저희 호태가 9층 할아버지가 아이스크림 사주셨다고 하던데요."
" 호태가요? 아 예. 고녀석이 많이 컸어요. 요만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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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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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고 있는데 종결을 하게 될는지 알수없다. 그래도 다들 휴식에 젖는 시간에 난 소설을 쓸거다 나만의 탈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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