탓한들 뭐하겠소.

지원스님

by 김운용

다음날 김용식 일행은 어제 하루 종일 운전한 운전자의 피로를 생각해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고 나서 목적지 없는 여행을 다시 시작했다.

새벽까지 별빛 가득한 밤바다를 무대 삼아 음주에 가무까지 곁들인 무리한 행사로 인해 다들 비몽사몽이다.


늦게까지 자고도 차에 타자마자 다들 다시 잠에 빠져버렸다.


"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선배님. 키 주시죠."


강재형은 별로 술이 당기지 않는다며 숙소에 들어가기 전부터 자제하겠다고 말했었다. 장사항 방파 제위 포장마차에서 한잔씩 할 때도 횟거리만 몇 절음 먹다가 술자리를 피해 해변가로 혼자 나갔었다.


와이프한테 전화를 했더니 몸이 안 좋아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은 것 같다며 바람 좀 쏘이고 오겠다고 술자릴 빠져나간 거였다.

둘째를 임신했는데 나이가 있는 데다 워낙 약해서 고민이 된다는 말을 이번 여행 내려오기 전 통화하면서 말했었다.




키를 넘겨주고 술도 오르고 피곤해서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겨 눈을 붙였다.


" 재형아. 동해안 북쪽 끝 가는 데까지 가보자. 철책선 넘을 수 있으면 재지 말고 넘어버려라. "


" 알겠습니다. 선배님. "


아직 숙취가 남아있어 머리가 띵하고 무거워 창문을 여니 시원한 동해 바닷바람이 얼굴에 부딪치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재형아. 검문소 신경 써라. 여긴 주로 군인들이 검문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


" 그럼 화진포 쪽으로 돌아갈까요. "


김용식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일행들에게 지인들의 신분증을 빌리거나 여의치 않으면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라도 외워오라 주문은 했지만 일행 대부분이 경험이 많지 않아서 돌발상황이 발생할 경우 걱정이 되었다.


김용식은 이번과 같은 상황을 이미 여러 번 겪은 터라 돌발상황에 대한 예측과 대비가 가능하지만 처음 겪는 사람은 누구나 긴장하게 돼있어 막상 불심검문을 받게 되면 불안해져서 의심을 받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경험이 많은 김용식의 판단이 중요하기 때문에 김용식 자신이 운전하는 차를 일부러 맨 앞에 세웠던 거였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검문소가 많아서 불안했다.




아침도 아직 못 먹었고 행선지도 정해야 할 것 같으니 해장국이나 먹으며 고민하자 횟집 나오면 주차해라 김용식은 뒤로 젖힌 몸을 운전자인 강재형 쪽으로 일으키며 주문을 했다.


얼큰한 오징어 한치물회에 밥까지 말아 쓰린 속을 달래고 나서 밥 먹는 그 자리에서 일정을 얘기해보자며 말문을 열었다.


밤새 방파제를 휘젓고 다녀 피곤한지 배종 수형이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길게 하품까지 하더니 결정하는 데로 따를 테니까 김용식에게 결정하라며 주문을 한다.


그럽시다 다들 같은 입장이라는 걸 확인을 하고는


" 낙산사로 갑시다. 어제 그 스님이 오라고도했으니 거기로 일단 갑시다.

내일 이후 일정과 앞으로의 입장은 낙산사 갔다 나와서 결정합시다. "




낙산사.

관동팔경 중 하나로 바다전망이 좋은 곳이고 지은 지 천년도 넘는 오래된 절이다.

바다를 향해 바라보고서 있는 해수관음보살 석상이 유명하다. 최근에 산불이 나서 절 일부가 피해를 입어 손실이 커서 근심이란 얘기를 어제 스님으로부터 자세하게 들었다.


낙산사 종무소에 들러 신흥사에서 만난 스님 얘길 하며 뵈러 왔다고 하니까 종무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 지원스님. 어디 계신지는 모르지만 절 안에 계시니까 다니시다 보면 만날 수 있을 거라며 보타전으로 가는 길을 손으로 가리켜 주었다.


보타전 앞 석탑 앞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보타전 법당 안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와 법당으로 올라가 계단 앞에 서니 지원스님이 예불 중이었다.


김용식 일행은 몇 년 전인가 뉴스에도 나온 커다란 화재에도 훼손되지 않고 꿋꿋하게 남아 낙산사가 천년도 넘는 고찰임을 알려주는 증거라는 오층 석탑 앞에서 예불이 끝나길 기다렸다.


김용식 일행을 보더니 지원스님은

불자와 신도는 격이 없어야 하니 절차 생략하고 진짜 차나 마시러 가자며 다래헌이란 찻집으로 안내했다.


바다가 보이는 찻집이라 전망이며 분위기가 좋았다.


근데 무슨 일로 사내들이 단체로 몰러 다니는 거냐. 다른 사람들 눈에 띄면 별로 좋은 일도 없을 텐데 혹여나 안 풀리는 문제 있으면 부처님 앞에서 백팔배나 하고들 가라면서


처사님이 대장쯤 같아 보이는데 생김새도 눈썹 뼈가 불쑥 튀어나온 걸 보면 몽니도 제법 있어 보이고.


스님은 건너편에 앉은 김용식을 지목하며 속내를 말해보라는 듯 똑바로 쳐다보며 궁금했던 걸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런 줄 알았소.


김용식이 미처 답변도 하기 전에 이경덕 씨가 위원장이라며 대신 답변을 했다.


위원장이라. 장짜 들어가는 자들은 별로 안 좋은 일만 하던데 그런 인물은 아닌 거 같은데 근데 왜 피해 다니는 겁니까.


역시 예사롭지 않은 스님이구나 하면서도 김용식은 끝내 스님의 물음에 답변하지 않았다.


금강역사라고 부처님과 사찰을 지키는 수호신이며 경호대장 격인데 힘이 셀뿐만 아니라 아주 지혜롭다


처사님이 책임자라면 막히는 데는 뚫어가고 정 갈 수 없는 길이면 돌아서 가면 되는데 타인에게 너무 큰 기대도 의존도 리더에겐 불필요한 생각들이다. 누구를 탓해봐야 답이 없고 문제 해결도 어려운 법 금강역사의 지혜를 생각해봐라. 이 좋은 낙산사에 왔으니 스님이 절 구경한 값은 받아야지 않겠냐며 빙긋이 웃었다.


절깐에서는 날 지원이라 부르는데 서울 올라갔다가 낙산사에 또 오고 싶으면 담부턴 낙산사로 전화해서 날 찾아라


다래헌을 나오며 스님을 다시 만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김용식은 숙취가 풀리기도 했고 지원스님의 충고를 들어서인지 무겁게 누르던 짐을 벗은 듯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서울로 올라갑시다. 일행들의 의견을 듣고 난 후 김용식은 결론을 내린 듯 서울행을 전달했다.


차 안에서 김용식은 법률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책임지겠다. 다른 사람들은 문제없게 처리해달라. 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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