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Times A Lady 1

by 김운용


언젠가 사랑을 한다면

첫 번째 연인도 당신이고 두 번째, 세 번째 역시 당신이 나의 연인일 겁니다.


창밖에 봄비가 오네요. 창가에 앉으신 숙녀분이 오늘처럼 비 오는 날에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멋진 사랑의 노래

Commodores의 Three Times A Lady를

신청했었는데요.


숙녀분 잘 감상하셨습니까.

제 마지막 시간 끝 곡을 신청해주신

아름다운 숙녀분께 사비로 커피 한잔 드리겠습니다.

주방 누님. 부탁합니다.


아. 오늘은 왠지 떨려서 말이 잘 안 나옵니다. 매일 낮 12시부터 2시까지 두 시간 동안 부족한 게 많은데도 저의 방송을 듣기 위해 본전 다방을 찾아주신 손님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시간이 마지막 방송입니다.

그동안 실수도 많았는데 너그러이 봐주시고 아껴주신 점 잊지 못할 겁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84년 5월 1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지난 3년간 하루도 안 빠졌다.


학교를 이렇게 성실하게 다녔다면 돌아가신 어머님 소원도 들어드릴 수 있었을 텐데 죄송할 따름이다.


어머니 소원은 아들이 판사되는 거였다. 그런데 가라는 대학은 들어가려고도 안 하고 레코드 판만 닦고 있으니 어머니 속이 아마 까맣게 타들어가셨을 거다.


어찌 됐든 성격은 다르지만 법정의 판사 자리 나 뮤직박스 안의 디제이 자리 나 둘 다 방청객들을 내려다볼 정도로 높은 자리에 앉아 자신의 뜻대로 진행하는건 도진개진 비슷하다.


판사나 판돌이 디제이나 둘 다 다 첫 글자도 같은 판으로 시작한다. 또 재판을 해달라고 신청을 받는 것과 음악을 틀어달라 신청받는 거나 내가 볼 땐 별반 차이도 없어 보였다.


법원 민원실에 가면 민원대 탁자 위를 아크릴벽으로 막아놓았는데 탁자와 아크릴이 맞닿은 아랫부분에 조그만 반원형 구멍 사이로 민원서류를 신청하고 접수를 받는다.


판돌이 디제이가 일하는 뮤직박스도 아크릴 벽 아래에 반원형 구멍으로 신청곡과 사연을 접수받는다.


먼 훗날 얘기지만 병석에 누워계신 어머니께 위로한답시고 판사나 디제이나 하는 일이 비슷합니다 이제 소원 조금 풀렸죠 그 시절 추억을 꺼내서 농담으로 말씀드렸다가

예라. 이 쓸개 빠진 놈아 머머님께 혼이 났었다.




지난 3년 열심히 LP판 정리하고 턴테이블 청소도 하면서 고단하기도 했지만 날 쳐다보는 시선에 우쭐거리기도 하며 정말 즐거웠다.


시다로 있다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난 후 봄 스무 살부터 정식 dj자리에 앉아 시작한 본전 다방에서의 짧은 아마추어 DJ 생활도 이제 끝이다.


3년이란 시간을 좁다란 뮤직박스 안에서 턴테이블이며 수만 장의 LP판들을 교과서보다 훨씬 더 많이 들여다봤고 월간 팝송책을 보며 방송시간에 멘트로 사용해야 할 만큼 중요한 대목이 나오면 색연필로 빨갛게 줄을 쳐서 외우고 또 외웠다.


눈에 밟힐 것 같다.

이 시간도, 벽이 돼버린 LP판들도 내 인생 얼마나 살진 모르지만 제일 재밌고 오래갈 추억의 무대였으며 영원히 스탑 된 정지화면으로 남겨질 것이다.




정들었던 본전 식구들 못 잊을 거다.


주방 누나, 사실대로 말하면 이모뻘 아줌마가 더 팩트에 가까웠지만 누나라 다들 불러 나도 누나라 불렀다. 뮤직박스 출입문 살며시 두들기며 계란 프라이 두 개 붙였으니까 나오라 손짓해 살짝 나만 불러 먹으라 줬었다.


12시 넘어 손님들 다 가고 퇴근하기 전에 박스 앞 테이블로 비빔밥을 한 양푼씩이나 비벼가지고 와서는 다들 나와 밥 먹고 가라 했는데 그 비빔밥 진짜 맛있는데 앞으로 더는 맛볼 수 없으니 정말이지 아쉽다.


서빙하는 친구들 자주 바뀌어 친하진 않았지만 손발을 맞추어야 할 파트너였다.


나와 동갑 춘영이. 예쁘지 않은데 내가 저한테 관심 있는 줄 알고 까칠하게 굴어 살짝 재수 없기도 했지만 저도 듣고 싶은 노래 있다며 신청곡 쪽지 손에 쥐어주길래 얄미웠지만 그래도 같은 식구라서 두 번이나 연속해서 틀어줬다.


그랬더니 고맙다고 커피타서 박스 안으로 배달해 줬었다.


마담 누나들과는 별로 안 친했다. 친근하게 놀지도 않았고 대부분 노땅 다방으로 빠르게 자리를 옮기기 때문에 친해질 시간도 없다.


돈 되는 노땅 다방으로 건너가는 간이역쯤으로 여기다 보니 자신들도 본전 다방에 애정이나 소속감을 별로 느끼지 않았으며 특별히 기억날만한 정도 남기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