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엘 가면 명동이란 곳이 있다.
춘천시내 중심가에 있는 중앙로 상가의 200m 정도 길이의 번화한 뒷골목 길을 명동거리라 부른다.
서울의 명동에서 이름을 따와 부르게 된 지명인데 퇴근 후 아베크족들로 붐비는 젊음의 거리다.
춘천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닭갈비촌도 80년대엔 명동에 있었다.
지금은 온의동이란 곳에 닭갈비촌을 새로 만들어 명동 닭갈비란 명성이 유명무실 해졌지만 당시엔 음악다방 학사주점과 함께 명동거리에서 젊은이들이 거쳐가는 필수 데이트 코스였다.
본전 다방은 명동거리 중간쯤에 있는 상가건물 2층에 있었다. 테이블이 3 열인데 가운데 테이블 양옆으로 통로가 있었다. 맨 안쪽 왼편에 뮤직박스가 있고 작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오른편엔 주방이 있었다.
좌석수는 100여 명 정도가 앉을 정도로 춘천의 음악다방 중에서는 규모가 큰 편이었다. 뮤직박스 dj자리가 일반 좌석들보다 조금 높은 위치라서 새로 들어오는 손님들이며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특징까지 한눈에 다 관찰이 가능했다.
본전 다방에서 일하는 식구들은
주방과 써빙 쪽에 주방 누나, 서빙 아가씨 둘에 마담(관리인 격인데 나중엔 젊은 아가씨로 대체했음)까지 해서 넷.
뮤직박스 쪽에는 메인 DJ 준식이 형, 보조 성택이, 나, 시다 광수, 기용이 포함 다섯,
총 아홉 사람이 있었다.
주방과 써빙 쪽 식구들은 전편에서 소개했고 이번 글에선 뮤직박스 멤버들을 소개하려 한다.
정준식 형 메인 DJ다.
대학 입학하면서부터 스스로 찾아와 본전 다방 디제이를 시작했다가
국립대 국어교육과 전공이라 나중에 중학교 교사가 되면서 본전 다방을 떠났다.
동생 정준규가 어릴 때 동네 친구지만 세 살 위인 준식이 형을 따라다니면서 더 친하게 지냈다.
키도 큰데 너무 마른 데다가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역시 검게 물들인 미군 야상점퍼를 여름을 제외하고 주야로 입고 다녀 문학도 같은 분위기도 풍겨 여자 손님들의 시선을 많이 끌었다. 인물은 뮤직박스 안에서 제일 시원찮은데도 유일한 대학생이요 뭔가 있어 보이는 듯 한 준식이 형은 다양한 여성편력으로 인해 우리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국어교육과 출신의 대학생답게 언변은 뛰어났으나 습작으로 쓴 소설을 읽어보라고 몇 번 노트를 주길래 건성으로 읽어봤는데 재미도 없고 자신의 일기장을 그대로 옮긴 것일 뿐이어서 글쓰는 재능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워낙 말솜씨가 탁월한 데다가 감정 묘사도 좋고 무엇보다 아는 게 많아 디제이로서의 전문성이 두드러져 보이니 준식이 형이 진행하는 시간엔 늘 손님이 많았고 팬들도 자주 찾아왔다.
멘트를 할 때도 김소월 김영랑 등 유명한 시인들의 싯구 중 클라이맥스 한 두 소절을 노래를 틀어주면서 앞뒤로 덧붙여 한껏 분위기를 잡아준다.
준식이 형은 신청곡만 틀어주고 음악과 관련된 얘기만 하는 고전적인 디제이가 아니었다. AFKN(주한미군 전용 방송) 방송을 자주 시청해 그 영향을 받아선가 다방을 찾아온 손님들을 지명해 유머를 섞어가며 대화도 하고 퀴즈문제도 내서 선물도 주는 이벤트도 종종 진행을 했다.
당시엔 보기 힘든 엔터테이너였으며 아마추어를 훌쩍 벗어난 프로로서도 손색이 없을 끼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전역을 하고 나서 얼마 안지난 무렵에 서울에서 내려온 방송 관계자로부터 방송활동을 제안받았었다는 얘기를 본전 다방을 떠나기 전날 밤 송별식 술자리에서 준식이 형이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준식이 형은 순수 막걸리 파라 막걸리 외에 다른 술은 거의 안 마신다. 주량은 별로 세지 않아 막걸리 한 병을 넘으면 조금씩 주사가 나온다. 가뜩이나 말이 많은 디제이가 직업인 사람이 평소보다 두세 배는 더 길고 끝도 없는 얘기를 쏟아내 지루해서 다들 하품을 해대는데도 좀처럼 끝낼 생각을 안하는 눈치가 꽝인 사람이다. 그럴 때마다 제일 친한 내가 나서서 화제를 바꾸며 끊어버리곤 했었다.
국민학교 동창인 우리 누나를 좋아했기 때문에 다른 멤버들에 비해 나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었다. 담배값도 따로 주고 디제이 일을 하기에 필요한 정보들을 매뉴얼처럼 만들어놓은 노트까지 주었다.
미래의 처남이 될 수도 있는 나에게 그토록 많은 선물을 주며 누나에게 호감을 사려 공력을 들였는데 우리누나는 야속하게도 다른 남자랑 교제를 했다. 준식이 형이 실의에 빠져 잠시 한때 멘트도 없이 음악만 틀어주던 어느 날
" 용식아 여자는 갈대다
누나한테 잘 먹고 잘살라고 전해주라 " 며 대학생 노트를 나비모양으로 접은 편지 한 장을 내게 주었다.
그 뒤로부터 준식이 형의 다양한 취향의 여성편력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정준식 형.
좋은 사람이다. 준식이 형이 중학교 선생님이 되고 얼마 안 지나 누나는 사귀던 남자와 결혼을 했다. 준식이 형이 결혼식 며칠 전 축하한다며 선물을 사들고 우리 집으로 찾아왔었다. 이후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담담히 결혼식장에도 찾아와 나하고 소주도 한잔했었던 영혼이 깨끗한 사람이었다. DJ나 예능 방면으로 쭉 갔어도 충분히 성공을 했을 사람이었다.
지금은 교직을 그만두고 고향부근 시골에서 조그만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뮤직박스 안 NO2는 본전 다방에 발을 디딘 날짜순으로 정한다는 룰에 따라 나보다 같은 나이 같은 학년의 성택이가 자리를 차지했다.
한 달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 하나로 자동으로 No2가 된 것이다.
넘버 투래야 평소엔 별반 차이가 없는데 준식이 형이 자릴 비우게 됐을 때 그 빈자릴 차지하게 되어 피크시간에 마이크를 잡게 된다. 보조 디제이가 피크시간에 마이크를 잡고 방송을 진행하게 된다는 건 가문의 영광이요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말까 한 흔치 않은 기회라 앞으로 메인 디제이의 꿈을 가진 보조 입장에선 경험을 쌓을 좋은 기회다.
성택이는 욕심이 많고 질투심이 강하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자기를 위해서만 주 예수님을 불러낼 뿐 주위의 어려운 이웃인 광수나 기용이 같은 절대빈곤층 계급의 처지에 대해서 눈길 한번 안 줄 정도로 아주 냉정했다. 4평 남짓한 뮤직박스 그 작은 공간 안에서도 권력을 향한 욕심과 집착이 존재했다. 그런 성택이를 난 그냥 무시해버렸다.
시다(보조 DJ의 보조) 광수와 기용이는 스페어타이어와 같은 위치다. 성택이나 내가 빠지게 될 경우 그 빈자릴 땜빵하는 거다. 광수는 팝송이 그냥 좋다며 뮤직박스 앞좌석에 와 죽 때리고 않아있다가 알바 좀 하게 해달라고 준식이 형 쉬는 시간마다 쫓아와 사정사정하며 매달려 좋아 테스트 한번 해보자 장난으로 던진 준식이 형이 막상 실력을 보고는 오케이 해 뽑았다. 광수는 나중에 강변가요제 예선에 나갈 정도로 기타도 잘 치고 노래실력이 수준급이었다.
기용이는 아시다시피 내가 준식이 형한테 영어 잘하고 발음이 기가 막히게 좋다고 소개해서 시다로 채용된 녀석이다.
뮤직박스 안 최고의 권력자는 메인 DJ다. 그의 한마디에 따라 보조 dj의 방송시간대도 결정되고 보조 디제이 자리 유지도 좌우된다. 실질적인 고용주인 셈이다.
임금도 메인 Dj가 사장한테 일괄로 지급받아 자신의 몫을 제하고 나머지를 배분해주는 일종의 도급제다.
1981년 당시에 음악다방에서 뮤직박스 내에 지급되는 임금은 7~10만 원 사인데 본전 다방은 10만 원에 담배값을 만원 더 줬다.
준식이 형이 6만 원을 챙기고 나와 성택이한테 각 2만 원씩 주었다.
광수와 기용인 보수가 없다.
무보수로 일하면서도 뮤직박스 내부 청소도 하고 LP판도 닦고 온갖 궂은일을 군소리 한마디 없이 도맡아 하는 기용이하고 광수가 눈에 밟혀 월급 받을 때마다 내가 데리고 나가 담배도 사주고 떡라면도 사주었다. 그랬더니 하루는 준식이 형이 광수와 기용이를 불러 5천 원씩 주면서 앞으론 매달 지급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광수와 기용이 녀석들 입이 대짜로 찢어지며 형덕분에 용돈 생겼다며 나를 학사주점으로 끌고 가 막걸리를 대접해주기도 했었다.
그때 오백 냥 하우스라는 분식집이 명동거리에 처음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인데 떡라면 한 그릇에 오백 원이었으며 고급 담배인 거북선이 한 갑에 250원이었다.
매주 월요일 영업이 끝나고 나면 준식이 형이 12시부터 한시까지 한 시간 정도 뮤직박스 내부 상태를 점검한다. LP판이 알파벳순으로 정확히 정렬되어있는지 청소할 곳은 없는지 등을 검사해 각자 맡은 일에 하자가 있으면 500원씩 벌금을 매겨 강제로 징수했다.
그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먼 훗날 젊은 날을 돌이켜보며 추억의 앨범을 열어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 본전 다방에서의 짧았던 3년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흐뭇해진다.
요 며칠 퇴직후 할일을 준비하기위해 지방엘 다녀왔는데, 내려가는 날부터 서울로 올라오는 날까지 고속도로엔 계속 비가 내렸다. 비오는 날 혼자 운전할때 음악을 들으면 지루함을 달래주고 추억에도 젖게한다. 마침 카오디오에서 코모도스의 Three Times A Lady가 들린다.
Thanks for the times that you've given me
The memories are all in my mind
And now that we've come to the end of our rainbow
There's something I must say out loud
You're once, twice, three times a lady And I love you
I love you
당신이 내게 베풀어 준 시간에 감사해요. 그 추억은 모두 마음에 간직하고 있어요.
이제 우리 무지개의 끝자락에 다다랐으니 제가 소리 높여 할 얘기가 있어요.
당신은 내게 하나뿐인 연인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You've shared my dreams my joys my pains.
You've made my life woth living for
And if I had to live my life over again dear.
I'd spend each every moment with you.
당신은 나의 꿈, 나의 기쁨, 나의 고통을 함께 합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 나의 삶을 꾸렸어요.
만약 다시 세상에 태어난대도 나의 삶은 같을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 모낸 모든 순간들처럼.
When we are together the moments I cherish
with every beat of my heart
To touch you, to hold you, to feel you, to need you
There's nothing to keep us apart
당신과 함께 있는 그 순간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소중히 간직해요.
당신께 손길을 보내 껴안고 당신을 느끼고 원하니까요.
그 무엇도 우리를 떼어 놓지 못해요.
Yes, you're once, twice, three times a lady, and I love you
I love you
당신은 내게 하나뿐인 연인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비가 오는 날엔 본전 다방에 손님이 더 많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