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정작 이런일을 하다보니 아이러니하게 웃음심판자(웃겨, 안웃겨를 판단한다는거 자체가 말도 안되는거지만 사람이 감투를 쓰고 그 자리에 앉으면 진짜 무슨 판사님 납시게 된다)되어 웃을 일이 없었다. 엄근진 그자체. 같이 일하는 동료출연자들이 안웃겼다거나 일이 재미없었다거나 보단, 사실 내가 모든 일에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타입이어서 그랬을지도. 정작 내 자신은 1도 재미없는 사람이고, 늘 불만과 스트레스 투성이면서 남을 웃기는 일을 한다는 것 자체부터 아이러니 일지도.
아무튼 그래서 늘 쉴때는 뭐 웃긴거 없나가 내 입버릇이었다. 그러다가
만난 영드 미란다.
이 여자 기가막힌다. 거구의 몸으로 능청스럽게 시청자들을 들었다놨다, 게다가 넘치는 자신감과 콧대높은 자존감은 또 어떻고.
덩치크고 여성성이 떨어지는(이것도 다 한국기준이지만) 여자가 주인공인 시트콤이 그 여자가 못난이라서 겪는 차별을 코미디로 삼지 않고, 자신을 당당히 들어내며 오히려 시청자들을 놀리고, 친구들을 놀리는 천진난만함으로 일관하는 사랑스러움이라니.
이 시트콤에 미쳐서 한국에도 미란다와 같은 주인공이 있다면 이런 시트콤을 만들어서 웃음사냥꾼이 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가진 적도 있었다. 뭐 이건 내 창작의 힘이 부족해서 무산됐지만.
언젠가 정말 그냥 이렇게 미란다처럼 보는 내내 웃을 수 있는 시트콤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 인상쓰지 않고. 웃음심판하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