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쏘야 Aug 27. 2023

5. 유럽에 가족과 친구가 있다는 건

[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2부. 바르셀로나 직장인 이야기

[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2부 - 바르셀로나 직장인 이야기

 2-5. 유럽에 가족과 친구가 있다는 건





 회사에서 제공하는 한 달 임시 숙소에 입주하기 전, 나는 며칠간 게스트 하우스에서 머물렀다. 대학생 시절 세계여행을 할 때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즐거워서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숙박이 좋았는데, 직장인이 되고 나니 여러 명이 함께 자는 도미토리가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 사람 때문이라기보다는 이제는 아늑한 내 공간이 주는 편안함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편치만은 않았던 첫날밤을 보내고 하루를 시작하려는데, 교환학생 시절 친한 무리에 속했던 한 프랑스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Hey Soya, 너 혹시 xx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러?"


깜짝 놀란 나는 맞다며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자신도 이곳에 잠깐 머물고 있다며 unbelivable을 외쳤다. 나조차도 믿기지 않았다. 바르셀로나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곳이다. 그만큼 게스트 하우스도 무수히 많은데 어떻게 우연히 교환학생 시절 친한 친구와 한 곳에서 머물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만나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내게 늘 마법 같은 일들이 펼쳐져."


나는 기욤(프랑스인 친구)에게 말했다.


그는 파리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인턴쉽을 알아보던 중 바르셀로나에 있는 한 회사에서 잠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침 오게 된 시기도 나랑 맞물려 이렇게 동시에 같은 임시 숙소에 머물게 된 것이다. 바르셀로나에 오자마자 든든한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고도 감사했다. 스페인은 내게 늘 이렇게 뜻밖의 선물을 안겨준다.


우리는 그간 밀렸던 근황을 주고받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다. 기욤 덕분에 나는 오자마자 외로울 틈이 없었다. 우리 둘 모두 이곳에서는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더욱 의지가 되었다.







그렇게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며칠을 보내고 나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한 달 임시 숙소로 이사를 갔다. 본격적으로 입사를 하기 전 잠깐 시간이 남아 내 스페인 이야기의 시작인 '말라가'에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말라가에서 지내던 시절에는 현지인 아주머니와 단 둘이 살았었는데, 당시 스페인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나를 친딸처럼 챙겨주시던 아주머니의 따스함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간 이후에도 그녀는 주기적으로 내게 말라가 사진, 내가 머물던 방 사진들을 보여주시며 안부를 물어왔었다. 그러면서 말라가에 돌아오면 언제든 얘기하라며 Aquí es tu casa.(이곳이 네 집이야.)라고 따뜻한 말씀을 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아주머니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하였고, 그녀는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 집에서 머물라며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셨다.


그렇게 2년 반 만에 재회한 우리. 스페인식 양볼 뽀뽀를 하고 나서도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를 껴안았다. 아주머니는 내가 온다며 손수 스페인 남부 가정식까지 준비해 놓으셨다. 그 온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이 먼 타국에 나를 이만큼이나 생각해 주고 환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다.


무엇보다 교환학생 시절보다 부쩍 늘은 내 스페인어 실력 덕분에 우리는 그때 못 나눈 대화를 실컷 나눌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스페인어도 늘고, 일자리까지 구한 내가 정말 자랑스럽다며 제 일처럼 기뻐해 주셨다. 이 집에서 살면서 난생처음 구안와사도 겪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렇게 고향처럼 반가운 곳이 되려고 내 삶에 나타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렇게 내 말라가 집에서의 아늑한 시간을 보낸 뒤, 나는 말라가 현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크지 않은 도시인 말라가의 거리 어디를 거닐어도 과거의 추억이 묻어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정말, 정말 많이 그리웠어.


수없이 많은 날을 상상했다. 이곳에 돌아와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또 그렸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 그림 안에 들어와 있었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난 말라가 친구들, 자주 가던 바의 직원들까지 모두 그대로였다.


"돌아왔구나 쏘야! 보고 싶었어."


나를 반겨주는 그들에게 너희같이 좋은 친구들을 만나 너무 감사하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들은 말했다.



네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야.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법이거든.




말라가에서 꿈같던 시간을 보내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제 이곳은 정말 내게 스페인 삶의 고향 같은 장소가 되었구나. 해외에서 일하면서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테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만큼 힘든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를 테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말라가에 돌아와 마음을 치유하고 에너지를 충전해서 돌아갈 수 있겠다. 마치 서울에서 바쁜 일상을 지내다가 고향에 다녀와 회복 하던 한국에서의 나처럼. 말라가에 온다면 내가 왜 스페인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이곳에 돌아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그 초심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말라가.





Copyrights © 2023 쏘야 All rights reserved 해당 글과 사진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됩니다.







스페인과 저의 우연, 인연, 그리고 필연까지의 이야기를 적습니다.



[지난 화] https://brunch.co.kr/@soyayspain/34


브런치북 [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1부. 말라가 교환학생 이야기

 https://brunch.co.kr/brunchbook/spainandm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