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잠을 잔다. 하루 동안 축적된 피로를 회복하고, 면역력을 강화하며, 지친 뇌를 쉬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잠을 ‘죽음을 연습하는 일’이라 말하기도 한다. 조금 과장된 말 같지만, 어쩌면 틀린 말도 아니다. 죽은 듯 고요한 상태로 모든 기능을 내려놓고, 잠에 든다는 건 생각보다 근본적인 일이다.
가끔 생각한다. 왜 신체는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설계되었을까. 왜 계속 칼로리를 섭취해야만 하고, 왜 알약 하나로 하루를 버틸 식량은 아직도 발명되지 않았을까. 하루의 1/3 이상을 잠으로 보내야 하고, 그것도 고요하고 깊은 수면 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 외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람은 철저히 모든 걸 내려놓은 상태로 잠들어야 하니, 더 불안정한 생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나는 잠을 좋아하는 편이다. 일상에서 충전할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기도 하니까. 평일에는 기본적으로 5시간쯤 자고, 주말이 되면 12시간 가까이 내리 자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언제나 개운한 건 아니다. 하루를 빠듯하게 살고, 늦은 밤이 되면 이상한 보상심리로 잠을 미룬다. 뉴스와 영상, 사람들의 이야기, 머릿속에 가득 채우고서야 겨우 눈을 감는다.
몸은 쉬고 싶다고 신호를 보내지만, 머리는 기어코 깨어 있으려고 한다. 잠들고 나면 또 아침이 오고, 다시 시작되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늘 “오늘은 일찍 자야지” 다짐하지만, 정작 밤이 되면 또 잠을 미룬다. 이 악순환이 계속되니 하루하루가 개운하지 않고, 어쩌면 이렇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피로의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잠이 인생의 필수 요소라면, 사람은 그만큼 잠잘 권리도 가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침 9시 출근을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그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출근길에 시달린다. 퇴근은 6시, 늦으면 9시를 넘긴다. 왕복 시간까지 합치면 하루의 절반 이상이 일과 이동으로 사라진다. 남은 시간엔 집안일, 운동, 공부, 인간관계, 자기계발을 끼워 넣으라 한다. 결국 희생해야 하는 건 잠이다.
그래서일까. 잠을 충분히 자는 삶이 ‘갓생’으로 포장된다. 수면을 보장받는 삶이 이상적으로 묘사되고, 오히려 일반적인 수면 시간이 특권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수면이 부족해질수록 면역은 무너지고, 병은 쌓인다. 결국 "죽어서야 푹 잔다"는 자조가, 농담처럼 떠돌지만 그 안엔 현실의 피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잠은 본래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사회에 편입되면서 이 자연스러움은 평가 기준이 된다. 남들 잘 때 깨어 있으면 열정이라 하고, 남들 일할 때 자고 있으면 무능력이라 낙인찍힌다. 누가 더 오래 깨어 있었는지가 근면함의 지표가 되고, 피로에 허덕이다가 병들어도 그건 자기 관리 실패로 치부된다.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잠들 수 있을까. 주말? 휴가? 아니면 죽고 나서야? 잠이라는 기본 욕구조차 사회의 잣대와 맞물려 평가받는 지금, 우리는 정말 편히 눈감을 수 있을까. 최소한 하루라도,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가뿐히 눈을 감고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쯤은 세상을 멈추고, 나를 위해 조용히 잠들 수 있기를. 살아 있는 동안에도, 깊게 잘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