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늘 내 앞에 앉아 있었다

by 서이

그냥 해. 안되면 울어. 그리고 다시 해.


어디선가 본 짧은 문장이다.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어 저장해두었고, 고민이 생길 때마다 꺼내 본다. 나는 가만히 앉아 가정을 쌓고, 시나리오를 그려보다 지치는 편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항상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뭐, 어쩌겠어. 그냥 해야지.” 지금 걱정한다고 미래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았기에 그 불안은 결국 공허하게 떠돌 뿐이다.


나는 어떤 일이 닥치면 그 일이 가져올 모든 가능성을 미리 시뮬레이션해본다. 그중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내고, 불필요한 리스크는 줄이려 애쓴다. 그런데 이런 사고는 동시에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무엇을 시작하기도 전에 수많은 변수를 생각하다 보니 마음이 금세 지친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반복된다. 아마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주 진취적인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구나 이런 불안을 안고 산다.


요즘 가장 고민되는 건 직장 문제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직종으로의 이직은 어려워지고,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는 계속 승진에 실패하고 있다. 벌이는 점점 줄고, 회사에 다니면 다닐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다. 때론 빚이 생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미래의 나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다. 스스로에게 ‘그래도 아직은 끝나지 않았어’라고 되뇐다.


그렇게 나를 돌아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지금 내 인생을 간보는 중이구나. 뜨겁게 달려가는 것도, 확실히 포기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중간에서 맴돌고 있다. 미래에 대해선 많은 바람이 있지만, 정작 그걸 이루기 위해선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 로또도 안 사면서 로또 당첨을 바라는 것처럼.

젊을 땐 그래도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해보고 후회하자”는 마인드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차면서 ‘이젠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더 커졌다. 체력도 줄고, 기회도 줄고, 자신감도 점점 줄어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앞날이 불확실해서 불안한 건, 내 탓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애초에 원하는 몸과 환경, 자본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삶은 늘 예상 밖의 변수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떻게든 방향을 바꾸고, 다시 걷는 걸 반복할 뿐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거였다. ‘이 더러운 세상!’ 하고 욕하기보다, 불확실한 미래에 생기는 불안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 나는 심리학자도 아니고 신도 아니며, 인생을 달관한 사람도 아니다. 당장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불안에 갇히지 않고 살아갈 수는 있다. 그래서 다시 ‘그냥 해. 안되면 울어. 그리고 다시 해.’를 꺼내든다.


어린 시절처럼 무모하게 부딪히진 못하겠지만, ‘죽진 않겠다’ 싶은 일엔 일단 시도해보자고 마음을 먹는다. 안 되면 망한 거고, 망해도 경험은 남는다. 만약 운 좋게 되기라도 하면, ‘역시 해보길 잘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이 단순한 공식이 요즘의 나를 붙드는 줄이다.


이런 불안은 아무 계획도 목표도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온다.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일에 기대며 행복회로만 돌리고 있을 때, ‘정말 될까?’ 하는 의심이 시작된다. 결국 불안은 믿음이 없을 때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인생에 대한 확신을 붙잡고 살아간다. 어설프고 불완전하지만, 내 인생의 항로는 내가 결정하는 거라고 믿는다.


모든 선택이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삶이라면, 그게 정답일 수도 있다. 실패가 있어도 괜찮고, 잠시 멈춰도 괜찮다. 그 안에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앞날이 불확실한 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생이 원래 그런 거니까.


그러니 오늘도, 그냥 해보자. 안되면 울고, 다시 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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