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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빈 Sep 12. 2024

[단편소설] 이웃사람

별 2개★★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평소와는 사뭇 다른 천장이 X에게 보인다. 잠이 덜 깬 건가 싶어 눈가에 낀 간밤의 흔적을 지우고 주변을 둘러본다. 역시나, X의 방이 아니었다.  방 안은 옷가지와 배달음식의 잔해들이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다. X가 잠들어있던 방 안을 제외한 모든 방문이 잠겨있고, 인기척 하나 없다. 누구의 소행인지 모르지만, 일단은 본인이 시달리던 집주인의 행각이라고 생각했다.


 대학 근처 싼 집을 찾던 X에게 온 행운. 방 2개, 거실 겸 주방, 화장실이 딸린 매물이 시세보다 갑절은 싸게 올라온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덜컥 계약한 X는 한 학기 동안 집주인의 참견을 넘은 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학생, 공부하느라 힘들지? 그래도 집 안에서는 조용히 있어줬으면 좋겠어. 밑에 층에서 민원이 들어와서..’


‘이봐요. 내가 아들 같아서 싸게 내줬는데, 이렇게 밤낮없이 쿵쾅대면 나도 곤란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여자나 끼고 놀아? 게다가 당신 때문에 건물 전체에 바퀴벌레가 수두룩해! 네가 풀었지? 나한테 복수하는 거야 뭐야?’


 X는 고시생으로, 잘 때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학원에 할애하고 있었다. 진저리 나는 집주인의 행각에 집을 뺀다고 해도 듣지 않고, 이런 식으로 X에게 화를 내고 있다. 요즘에는 본인을 죽이기 위해 벌레를 풀어놓는 거 아니냐, 어쩌냐. 너부터 죽여버릴 거라는 말도 서슴없이 하는 때였다. 이런 상황을 감안했을 때, 일단은 이 집에서 나가거나,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 것 같다. 이럴 때 공부에 방해될 거라며 핸드폰을 정지시킨 것이 애석하다.


 현관문은 특이하게 안쪽에 번호키가 달려있다. 그 위에는 각각 검정, 파랑, 빨강, 흰색의 4가지 색이 칠해져 있다. 이것이 힌트가 아닐까 싶다.  일단은 거실과 주방 사이에 있는 문부터 열어보자. 아마 화장실이리라.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돌려 잠그거나 열쇠로 따야 하는 것이 아닌 눌러서 잠그는 손잡이였다. 아이들이 갇히는 것을 방지한다고 잠금장치 반대쪽에 구멍을 뚫어 놓은 것 말이다.


 X는 다시 본인이 누워있던 거실로 간다. 구멍 안 쪽을 밀어 누르면 문이 열리기 때문에 그 안에 넣을 얇은 막대기를 찾는 것이다. 먹다 남긴 배달음식 사이에 이쑤시개가 있다. X는 속으로 중국집 서비스에 찬사를 보내며 화장실 문에 이쑤시개를 쑤셔 넣었다.


 특별할 것 없는 화장실이었다. 찌든 때 가득한 변기와 세면대. 곰팡이와 얼룩으로 도배된 바닥. 서랍엔 머리카락 잔뜩 끼인 빗과 정체 모를 열쇠가 하나 들어있다. 열쇠를 쥐고 나가려는 X의 시선이 거울로 향했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나가면 신고부터 해야 하니, 얼굴이라도 정돈할 겸 세면대의 물을 튼다. 의외로 따뜻한 물이 나와 애먼 얼굴에 잔뜩 적셔본다.


 세수를 마친 X는 김이 뽀얗게 서린 거울을 다시 본다. 그런데, 손자국이라고 하긴 이상한 모양이 거울에 떠올랐다. 수도를 뜨거운 쪽으로 돌리고 김을 더 서리게 하니, 거울에서 숫자가 나타난다.  


네모 칸에 그려진 숫자 7.  


 비누로 글씨를 썼는지 선명하게 잘 보였다. 그 외에는 별다를 게 없어 X는 숫자를 기억하며 다른 방으로 향한다.  화장실에서 주운 열쇠로 방문을 열어보았지만, 전부 들어가지 않는다. 거실을 빙빙 돌며 열쇠의 주인을 찾던 X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낡은 진열장에 열쇠를 꽂아보았고, 문이 덜컥 열렸다. 두툼하게 쌓인 먼지 속 진열장 색과 똑같이 칠해져 있는 또 다른 열쇠를 찾았다. 무심코 보면 찾기 힘든 모양새로 있었기에, 조심성 한 번 대단한 집주인이라고 생각하는 X였다. 


 새로 찾은 열쇠로 방문을 열어보니, 그곳은 침실이었다. 뭉쳐있는 이불 덩어리와 작은 테이블. 그 위에 놓여있는 오래된 노트북 하나가 전부였지만 말이다.  제일 먼저 노트북을 켰더니 비밀번호가 걸려 있다. 될 리 없는 숫자를 조합해 이것저것 눌러보다 포기한다. 신경질에 꺼버리려던 X는 그제야 화면 하단에 쓰여 있는 암호 힌트를 보게 된다.


암호 힌트 : 밑^^


 밑이라니. 노트북을 들고 테이블 바닥을 본다.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방바닥을 본다. 역시나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아리송한 힌트 덕에 더 어지러운 X는 들고 있던 노트북을 다시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손이 가는 대로 뒀더니 노트북이 뒤집어졌다. 그런데 노트북 바닥에 웬 스티커가 붙어있다. 노트북의 모델명과 시리얼넘버가 적혀있는 그 사이에 조그맣게 쓰여 있는 ‘방탈카엑케프’. 무슨 뜻인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이것이 노트북 암호임에는 틀림없었다. 


 바탕화면엔 정말 아무것도 깔려있지 않았다. 시작창을 열어보니 제어판, 내 컴퓨터 등 기본 프로그램만 나열되어 있다. 이 정도로 깨끗하고 맑은 노트북에 자신 있게 암호를 걸어 놓을 리는 없기에 이것저것 클릭해 보는 X였다. 열어놓은 창이 빽빽해질 무렵, X의 손에 걸린 최근에 사용한 파일. ‘17.11.10 일기. txt’ 파일 위치로 가기를 눌러 들어가 보니, 적어도 20개 이상의 상위폴더가 존재하였다. 이 정도로 숨기는 건 조금 아니다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제일 오래된, 첫 번째 일기를 열어본다.     


『17.03.06. 날씨 맑았다 흐림

공실이었던 1호에 총각이 들어왔다. 학생치고는 멀끔하고 인사성도 좋아 마음에 든다.』     


『17.03.17. 날씨 흐림

1호 총각이 초반과 다르게 인사도 안 하고 추레하게 다닌다. 교우관계는 원만해 보였는데 왜 나에게는 떨떠름한지 모르겠다.』     


『17.04.02. 날씨 비 옴

3호에 여학생이 들어왔다. 요즘 처자답지 않게 떡을 돌렸다. 1호 총각과는 다르게 예의 바르다. 1호 총각은 이미 눈밖에 난지 오래다. 예의 없고, 밤마다 시끄럽게 떠들며 이상한 노래를 쿵쾅쿵쾅 울리게 틀어놓는다. 찾아가서 조용히 해달라고 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     


『17.04.22. 날씨 맑음

1호 총각이 3호 학생에게 내 뒷담을 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볼 리 없다. 1호 총각의 본성이 드러나는 것 같다. 나를 무시하는 건 물론 피하는 것 같다. 월세나 제대로 나는지 몰라』    

 

『17.05.05. 날씨 천둥

1호 총각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 같다. 항상 청결을 유지하는 내 방에서 바퀴벌레가 나왔다. 아니, 요전에 3호 학생에게 요구르트를 줬는데 손이 스쳤다. 그때 내게 무슨 짓을 한 건가?』     


『17.05.13. 날씨 부슬비

두 연놈이 짜고 나를 죽이려고 한다. 집 밖에 무서워서 나가지를 못한다. 집안에 벌레가 잔뜩 생기고 몸이 간지럽다. 신경쇠약에 걸릴 것 같다. 경찰에 신고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놈들이 나를 보호하지 못한다.』     


『17.06.22. 날씨 맑음

온몸이 벌레에 물린 것 같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1호와 3호에게 가서 따졌다. 무서웠지만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놈들은 오히려 비웃음을 줬다. 죽여버릴 거야. 두 놈 다 죽여버릴 거야』 

    

『17.06.29. 날씨 장대비

6호에 사람이 들어온 것 같다.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내가 죽기 전에, 저놈들을 먼저 죽여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산다. 두 놈 때문에 집값이 떨어진다. 나를 죽이고 집을 빼았으려고 한다. 경찰이 나를 못 돕는다면 내가 대신해서 처벌한다.』     


『17.07.02. 날씨 맑음

닭을 잡아 1호 문 앞에 피를 뿌렸다. 빨갛게 칠해진 문짝을 보고 그놈이 화내는 걸 보니 꼬숩기가 그지없다. 이런 협박으로도 집을 뺴지 않는다. 3호랑 같이 나자빠졌으면 좋으련만. 6호는 아직까지 조용하다. 두 연놈만 사라지면 다시 평화가 찾아올 것이고. 벌레도 사라질 거다. 내 피부도 백옥같이 고와지겠지.』     


『17.10.14. 날씨 비 옴

왜 나를 못살게 굴지 못해 안 달인 거지. 다 죽여버릴 거야. 계획은 완벽하고, 집세가 떨어질 걱정도 없는 것 같다. 나는 1호와 3호의 협박과 폭력에 집세도 못 받는 가녀린 피해자다. 너무나도 무서워서, 내가 죽임을 당할까 봐 동영상으로 유언을 남길 예정이다. 증거도 남겼다. 그놈들이 풀어헤친 벌레들과 내 몸을 보면 알 것이다. 나는 항상 그들에게 친절했는데 왜 그런 내게 망발을 서슴지 않는 것인가. 저런 젊은 놈들은 사회에서 없어지는 게 국가적 이익이다.』     


『17.11.16. 날씨 쾌청

1호와 3호가 공실이 됐다. 4호에 사람이 들어왔다. 친절하다. 6호가 점점 시끄럽게 군다. 다음은 너구나?』     

 X는 6호가 본인임을 인지했다. 생각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남녀가 눈 맞아서 도피했다느니, 소문이 나쁜 집이 있다더니 하는 소문이 있었나 싶었다. 당시에는 관심도 없을뿐더러 으레 있는 뜬소문이라는 생각에 신경을 껐었다. 과연 본인이 당해보니 뜬소문도 사람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집주인이 오기 전, 누군가가 오기 전에 서둘러 이 집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X는 노트북을 닫고 주변을 더 살펴보았다. 무언가 있을 것 같았던 이불은 먼지만 풀풀 날렸고, 노트북이 올려져 있던 테이블 다리 틈새에서 또 다른 열쇠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지막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간 방은 서재였다. 별다른 것 없어 보였지만 묘하게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건 책장의 나열순서.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물론 각기 다른 정리방식이 있겠지만, 장르, 표지 색, 책 높이, 제목 등으로 정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책장의 책들은 전부 들쭉날쭉 눈을 어지럽힌다. 


 서재 가운데 있는 빈백에 앉아 무언가 있을 힌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 X의 뒤통수로 자꾸만 누군가가 쳐다보는 느낌이다. 벌써 사람이 왔나. 이제 나는 죽는 것인가. 식은땀이 난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뒤를 홱 돌아봤다.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니 있다. 벽에 걸려있는 그림이 그것이었다. X는 설마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림의 눈에 카메라가 달려있는 것인지 알아보러 가까이 갔다. 그런데 X가 움직일 때마다 그림의 눈이 자신을 쫓아온다. 왼쪽으로 자리를 옮겨도,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겨도 시선이 X를 따른다. 


 가까이서 봤더니 일전 미술관에서 본 입체아트였다. 패널을 부채모양처럼 지그재그로 접어 한 면에는 동물을, 다른 한 면에는 사람 등을 오려 붙여 작품을 보는 사람이 이동할 때마다 그림도 같이 움직이는 신기한 작품이었다.


 서재에 붙어있는 그림은 둘 다 인물화로 한쪽은 모나리자가, 다른 한쪽은 고흐가 그려져 있었다. X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그림과 시선을 맞췄고, 그림이 볼 수 있는 끝까지 가보니, 그들이 닿는 시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단 고흐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그곳에 있는 두꺼운 책을 꺼내보니, 겉만 책모양이고 있고 속은 상자로 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비디오테이프가 들어있다.


X는 이것이 집주인의 일기에 쓰여 있던 유언 뭐가 아닐까 싶어 눈에 잘 띄는 곳에 올려두었다.  이번엔 모나리자 시선의 끝으로 가본다. 그곳에는 하늘 사진이 잔뜩 실려 있는 잡지가 있었고 제일 앞장에는 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하늘은 높고 쾌청하다, 산의 푸르름을 더해 더욱 진한 하늘을 찾을 수 있다. 하늘의 끝을 맛보면 땅을 빼앗아버리고 싶을 것이다.’


다시금 수수께끼에 빠진 X였다. 


 도대체 왜 본인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모르겠다. X는 평범한 대학생이자 고시생으로, 막학기를 졸업하기 전 시험을 보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다. 고시원에 들어가기 너무 막막해 한 학기만이라도 마음 편한 집에서 살고 싶다며 부모님께 손을 빌린 것이다. 이상한 집주인의 행실이 거슬렸을 뿐 그 외적인 것은 완벽했다. 수수께끼를 뒤로하고 본인의 상황을 돌이켜보던 X는 멍한 눈으로 서재의 책들을 바라보았다. X였으면 장르-높낮이 순으로 정리했으리라. 뒤죽박죽인 책들을 보고 있자니 아까 전의 문장이 떠올랐다. 


‘하늘은 높고 쾌청하다, 산의 푸르름을 더해 더욱 진한 하늘을 찾을 수 있다. 하늘의 끝을 맛보면 땅을 빼앗아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책 표지의 색들이 단순하다. 파랑, 녹색, 갈색. X는 일단 색별로 책을 정리했다. 


각각 나열된 책들의 단어는 다음과 같다.


파랑 - T / G / I / H / E 

녹색 - R / O / U / F

갈색 -  E / R / E / H / T


문장에는 더하고 빼기라는 뜻이 들어 있었다. 이걸 각기 숫자로 정리하면 


파랑 - EIGHT

녹색 - FOUR

갈색 - THREE


 8+4-3=9가 나온다. 힌트가 쓰여 있던 책이 하늘과 관련이 있었으므로 이 숫자는 도어록의 파란 부분 즉, 두 번째 비밀번호가 될 것이다.  X는 생각을 끝으로 아까 전 찾은 비디오테이프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점점 끝이 보인다. 이 비디오를 마지막으로 X는 탈출할 수 있으리라. TV 테이블을 열고 비디오테이프를 넣었다. 쓰레기와 함께 나뒹구는 리모컨을 주워 화면을 돌리니 얼마간의 노이즈가 발생된 뒤 집주인의 얼굴이 보였다.


 ‘나 김주인은 2017년 11월 16일, 이렇게 유언을 남깁니다. 제가 있는 건물의 101호와 103호 사람들에게 살인협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저를 업박하고 무시하며 제 방에 벌레를 풀어.......(중락) 증거가 없다며 경찰은 피해자인 저를 그대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렇게 있다가는 제가 정말로 죽임을 당할 것 같아.....’


 일기에서 본 내용과 다름이 없다. 평소 보던 집주인의 모습이었지만 어딘가 눈에 초점이 없고 손과 옷에는 붉다 못해 검은 얼룩들이 간혹 묻어있다. 아마 거사를 치르고 난 뒤에 찍은 게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말에 무슨 힌트라도 있을까 놓치지 않고 들었지만, 별다를 게 없어 보여 주변 상황에 눈을 돌렸다. 이곳에서 촬영한 것은 아닌 것 같은 게, 뜯어진 벽지의 흔적만 겨우 볼 수 있는 콘크리트 벽과 빛바랜 조명만이 집주인을 밝히고 있다.


 몇 번을 돌려보던 X는 집주인의 어깨가 들썩이는 순간 뒤로 보이는 검은 얼룩을 발견했다. 그저 곰팡이 얼룩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던 X는 그 부분만 반복 재생하며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검은 얼룩에는 미세하게 0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이게 숫자인지 얼룩이 생기다 만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것에 사활을 건 X는 비디오를 그대로 튼 채 현관으로 향했다.


처음 화장실에서 발견한 숫자 7. 김이 서려있었기 때문에 도어록의 흰색, 4번째 번호일 것이다. 두 번째로, 일기장에서 본 내용을 토대로 하면 101호의 문에 피 칠을 했으니 빨강이 3번째 번호. 서재에서 찾은 것과 비디오에서 본 것을 전부 조합하면.


검정, 파랑, 빨강, 흰색

0 / 9 / 1 / 7      


띠딕-


익숙한 도어록의 열림음이 들린다. 드디어 탈출이다!     


 이런 사건이 있던 게 어느덧 2달이 지났다. 탈출한 X의 신고를 받고 집주인에게 찾아간 경찰은 뜻밖의 소식을 전해줬다. 집주인은 사실 집주인이 아니라는? 사실. 부동산을 끼고 계약했으니 집주인의 얼굴을 몰랐지만, 내가 집주인이오 하고 나타난 사람을 집주인으로 오해한 상황이었다. 이 사람도 그냥 월세살이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던 101호와 103호는 그저 평범하게 계약을 파기하고 이사를 갔다는 것이다. 실제 집주인에게 연락을 해서 말이다. X를 감금한 것도 아무런 의심 없이 ‘손님 대접 하려는데 잠들어서 난 내 볼일 보러 갔다’는 가짜 집주인의 진술로 무마되었다. 살인미수도, 협박도 없어서 그렇다나 뭐라나.


 이렇게 시원한 마무리 하나 없이 끝난 이 사건도 X의 졸업과 동시에 묻히게 되었다. 고시에 실패한 X는 고시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부동산 직거래 사이트에 집을 올려놓았고, 가짜 집주인은 그대로 잘 살고 있는 중이다.     

‘00 대학 도보 5분 거리 집 내놓습니다.

주택가라 밤에 조용합니다. 집도 넓고 깨끗해서 살기 좋습니다.

저는 이웃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잘 지내면 아무런 걱정 없이 사실 수 있을 겁니다.

졸업하게 되면서 집 싸게 올립니다.

추천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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