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역사라는 단어가 있다.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만큼의 수치스럽거나 절망스러운 경험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이기에 후회에서 비롯되는 고통은 견디기 힘들다. 때문에 매일 같이 잠들기 전 생각하며 이불을 걷어차고는 한다. '그때 그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상황에서 내가 왜 나섰을까', '한다고 할걸' 등등의 후회는 지금 당장 행복한 일이 생기더라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주워 담을 수는 없다. 과거로 돌아가 그 상황을 마주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쪽으로 바꿀 수도 없다. 기껏해야 하는 것은 곱씹으며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걸, 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이런 후회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은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뿐이다. 그때, 나의 행동은 가장 최선의 몸부림이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가 본다면 긍정회로를 돌린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다.
흑역사라는 비가역성 난관에 봉착했을 때 후회가 밀려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항상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생각으로 주체적인 인생을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계속된 좌절을 맛보게 되고 결국 ;이 상황은 어쩔 수 없었어', '그 사람이 그런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등의 타인을 탓하기 시작한다. 나에게 마땅히 해줘야 하는 것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탓을 하고, 결국 증오가 생긴다. 못된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프랑스 철학자인 몽테뉴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그 경험을 배가시키고 그것을 예민하게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삶을 만끽하는 자신만의 지혜가 있다며 남들보다 삶을 두배로 만끽하기 위해서는 춤을 출 때 춤만 추고, 잠을 잘 때 잠만 자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니까 단순히 내 삶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상황을 단순히 흑역사 또는 좋았던 기억으로만 남기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라는 말이다. 몽테뉴는 전문적인 업무를 수행하듯 열의와 역량을 발휘하며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결국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최선을 다한다면 후회를 줄이거나, 후회하지 않음을 뜻한다.
결국 흑역사를 용서하며 극복하고자 한다면 수동적인 삶이 아닌 능동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게 아닐까? 어떤 일이든 내가 몰두하고, 집중한다면 그만큼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고, 후회되지 않는 상황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원하는 것을 하지 말고, 해야 하는 일을 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게 진정한 내 삶을, 인생을 받아들이는 방법 중 하나라고 본다.
다만 나 역시 사람이기에 흑역사를 용서할 수 있는 대인배는 아니다. 하지만 과거의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슬픈 인생이 될 것으로 여기니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는 것이다. 나의 행동이, 생활이 내가 만족하는 수준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주체가 되는 내가 인생에 더 몰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긴 삶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