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기록 - 시처럼 이야기 하기 - 인생의 마지막 '듣고 싶은 말'
웃으며, ‘안녕’할 수 있다면.
이어령 선생님께서 웃으면서 손 흔드신다.
후세대가 거시적 안목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세상의 지혜, 세계적 국면에 대해 따스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시다가,
이젠 정말 인사를 해야겠다며, 여러분 잘 있으라며,
손을 흔들어 ‘안녕’ 인사를 하신다.
할아버지의 모습을 한 해맑은 소년.
떠나는 자의 모습도 아니요, 이별의 슬픔도 아니요,
그저 생의 한 과정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자로서
나는 나의 길을 갈 테니, 너희는 잘 있어라! 하는
모습으로 밝고 의연하게 손을 흔드신다.
너무 해맑은 순간이라 슬픈 감정이 들어올 틈이 없다.
그저 나도 함께 손을 흔들어 배웅하고 싶은 마음이다.
죽음은 늘 명상에서 접했던 문구 그대로,
그저 ‘깊은 잠’ 일뿐이구나! 생각이 들었던 찰나이다.
아침은 탄생이요, 밤은 죽음이니.
우리는 늘 새로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는 인생이다.
우리는 이 순환의 세계에 초대된 사람들이다.
누가 먼저일지 몰라도, ‘깊은 밤’으로 날아가 버릴,
그날을 위해 서로 인사를 나눌까?
성경학교에 초대된 아이들처럼 둥그렇게 둘러앉아,
롤링 페이퍼를 써볼까?
롤링 페이퍼가 돌고 돌아, 나에게 다시 올 때.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나도 너를 좋아한다고 적어 준다면.
작은 오해로 사이가 서먹한 친구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준다면.
이왕이면, 인기가 많아서 내 종이가 새까맣게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면.
이 롤링 페이퍼를 가슴에 안고,
그곳을 떠날 때 너무 행복하지 않을까?
내 인생의 롤링 페이퍼를, 이별의 롤링 페이퍼를
장식해 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내가 그들에게 ‘사랑의 언어’를 듣기 원한다면,
나 또한 그들에게 살아있는 내내 사랑을 표현해야만 한다.
그래서,
아직은 내 인생의 사랑이 너무 작고, 보잘것없는 거 같아서.
큰마음으로 통 크게 사랑하고, 나눈 게 없는 거 같아서.
아무리 이별을 앞둔 것을 가정한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말’을 나열하는 것은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가족에겐 늘 듣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나의 강아지, 재간둥이 ‘칸’]
나를 새벽마다 쓰다듬어줘서 고마워요.
나를 오랫동안 혼자 두지 않으려고 애쓴 거 알아요.
함께 산책해서 행복했어요.
그래! 그래서 더 많이 안아주고,
너와 함께 많이 걸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의 아들 후야, ‘꿈꾸는 나무’]
엄마, 나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난다고 고생 많았죠.
엄마 덕분에 나는 밝게 지낼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감사해요.
그래! 이렇게 적고 보니, 어떻게든 아이의 마음에
환한 태양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남편, ‘천천히 크는 큰 나무’]
난 늘 당신이 1순위였어.
욱하는 남편 참느라 고생 많았어.
우리 다음 생애에도..
갑자기, 분위기가 깨지고 글을 멈추게 된다.
웃음이 피식 터진다.
어쨌든!
난, 남편에겐 1순위가 되고 싶은가 보다.
그건 이 사람 성격을 이 세상에서 제일 인내하고 있는 1순위라서 그렇다는 합리적인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나의 인연들’에게]
당신의 글은 얼어붙은 내 마음을 녹였어요.
당신의 친절은 절대 잊지 못할 거 같아요.
당신의 유머러스함은 우리에게 많은 에너지를 주었죠.
당신은 늘 우리를 웃게 했죠.
당신과의 만남은 내 인생의 큰 복이었어요.
이런 이야기들로 나의 롤링 페이퍼가 채워질 수 있다면...
아! 나는...정말!
온 마음으로 인연을 사랑하고,
인생을 사랑해야겠다! 깨닫게 된다.
이런 말을 듣더라도, 부끄럽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어느 날.
웃으며, ‘안녕’할 수 있다면...
그냥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이니,
나를 배웅하는 이들이 슬픔보다는
‘잘 살았어. 수고했어. 그래! 잘 가! 안녕!’
인사하며, 시원하게 보내 줄 수 있다면..
나는 다시 소녀가 되어
꽃길을 향해 함박웃음을 띄며 뛰어가리라.
그날이 와도 나는 정녕 기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