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소예 Oct 21. 2022

메모하지 않으면 그날은 없다.

추억 - 서랍 속의 글 꺼내보기.

*서랍에 갇혀 있던 글들을 하나씩 꺼낸다*

브런치에 처음 입성하여 기록한 일상의 글.

다시 읽어보니 참으로 평화로운 날이었구나! 



혜민스님의 코끼리 명상을 하고 있다.


오늘은 스님께서 신현림 시인의 <침대를 타고 달렸어>라는 시집 중에서

"딸아, 너도 사랑을 누려라."를 읽어 주셨다.


"딸아, 너도 사랑을 누려라."


엄마가 쓰러지기 전에 하신 이 말씀이 유언이 될 줄 몰랐다.

누구든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 사랑을 누려라.


일만 하지 말고, 열애의 심장을 가져라.

누구나 마음속엔 심리 치료사가 있단다.

심리 치료사가 바로 사랑이다.


많은 것을 낫게 하고 견디게 하고

흩날리고 사라지는 삶을 위로하고 치료한다.


"딸아, 너도 사랑을 누려라."

사랑 안에서 고양이 같은 민감한 지혜를 배우고,

타인을 위해 나 자신 내려놓는 법을 익히고 즐거워하라.


웃음 샴페인을 터뜨리고

인생 신비의 동굴을 찾고

눈, 비, 빛과 바람..

셀 수 없이 많은 축복을 누려라.


살아 있는 최고의 희열감에 젖고,

그 느낌을 메모하렴.

메모라도 안 하면 그날은 없다.

아무것도 없다.


인생의 회전목마는

성공과 명성의 기둥을 도는 듯하지만

수천만 원 지폐나 명품이 아니라

만지고 보인 즐거움이 아니라

사람은 사랑으로 강해지고

사랑의 능력 속에서 커간다.

혼자 살 수 없는 우리는 사랑으로

특별한 사람이 된다.


바다가 배를 만나 너울거리듯

사내와 여인이 만나 아이를 낳고

폐허를 다시 세워 사람을 부르고

마음이 마음에게 전하는

영혼이 영혼에게 전하는

따뜻한 배려의 말로 힘겨운 나날을 견디는 인생.

함께 있는 장소를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만들고

함께 있어 가장 평온한 들판이 되어 주어라.


이 세상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고

같은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못 만날 때를 생각하며 사랑하라.

영영 다시 못 만날 때가 오니 깊이 사랑해라.


자신의 딸이 사랑이 충만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어머니의 깊은 마음이 감동이다.

메모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말에도 머무르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일상을 메모해볼까 한다.


새벽 5시, 커피를 내리고 청귤 차를 탄다.

저녁에 삶아 둔 고구마 3개와 땅콩 도넛 2개를 남편의 아침 도시락으로 싸준다.

뱃살을 빼기 위해 아침밥을 먹지 않겠다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던진다.

"이게 더 찌겠어."

그러면서도 감 한 개와 녹용진액을 얼른 먹으라고 챙겨주는 나를 발견한다.


7시 30분, 아이가 밥을 먹는다.

오늘 아침은 고사리나물과 계란 프라이 2개를 넣은 비빔밥이다.

아이는 후다닥 먹고, 후식으로 황도도 먹었다.

비타민과 칼슘도 먹어야 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오랜만에 등교하는 날이라서

정신이 없었던 건지 챙겨주는 걸 깜빡했다.

중2인 아이는 혼자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갈 수 있지만, 대부분 모셔다 드린다.

아이가 운동부라서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에 있기 때문에 대단히 안쓰럽다.

코로나로 대중교통 이용이 꺼려진 이후, 아이는 엄마 운전기사를 당당하게 이용 중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새벽에 내려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감 한 개를 흡입한다.

빨래 돌리는 동안 설거지하고, 대충의 집안일을 마무리한다.


10시는 운동 타임이다. 사이버 강의를 들으며 80분 동안 천천히 걷는다.

변화하는 세상을 느끼고 싶어서 얇은 지식이나 상식을 쌓고 있다.

몸과 마음의 근력을 만드는 시간은 11시 30분 명상 타임으로 마무리된다.

특히나 오늘은 명상 타임의 영향으로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명상이 끝난 동시에 전화벨이 울린다.

점심식사를 끝낸 남편의 전화이다.

특별한 내용이 없는 통화를 끝낸 후 청소기를 돌린다.

복층에 올라가서 청소기를 한번 더 돌리고, 밤새 화분이 안녕하셨는지 인사를 나눈다.

고질병인 어깨 통증이 도져서 마사지 기계에서 마사지를 받고,

아래층에 내려와 컴퓨터를 두드린다.

전업주부이지만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있다.

거래처 송금을 하는 등 남편의 무급 비서이다.


오후 1시가 훌쩍 넘어서 배가 고프다. 나의 점심은 밥에 고구마순 비벼먹기.

강화도 순무김치가 맛있어서 밥을 더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30분 뒤, 후식으로 땅콩 도넛을 먹었다.

그냥 밥을 더 먹을걸 그랬다. 달콤함의 유혹은 이기기가 힘들다.

남편에게 도넛 2개 먹는다고 잔소리를 할 처지는 아닌 듯하다.


두둑해진 배에 후회와 만족을 동시에 하며 컴퓨터로 이것저것 검색한다.

최근에 쓰고, 읽고 하는 문학타임을 많이 가지리라 다짐했기 때문이다.

여기 브런치에도 가입을 한 첫날이다.

어떻게 꾸미고 사용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글을 쓰고 있다.


4시는 라디오 붐붐파워 하는 시간.

늘어지기 좋은 시간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붐디를 좋아한다.

1일 1 요리 저녁 메뉴를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의 메뉴는 갈치조림이다.

두툼한 제주산 갈치와 계량하지 않고 느낌대로 만든 양념장으로

갈치조림을 끓여냈다. 실패하지 않았다. 아니 맛있다. 다행이다. 휴~

붐디와 게스트 고재근의 신나는 추임새를 들으며 요리를 멋지게 완성했다.


퇴근하고 온 남편은 7시에 저녁을 먹었고, 차 한잔 마시고

복층에 올라가서 마사지를 받고 있다.

나는 저녁을 치우고 마무리하지 못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이는 9시에 학교를 마친다. 당연히 녹초가 되어있을 아이의

픽업을 가야 하고, 9시 30분쯤에 저녁을 다시 차려야 한다.

치우고 나서 아이 마사지 기계 세팅해주고 이것저것 도와주다 보면

밤 11시이다. 업무 마감시간이다.

이렇게 말하니 웃음이 나지만 그렇다.

그 이후 책을 볼 수도 있고, 코로나의 따분함을 이기지 못해

15년 만에 입성한 TV를 잠깐 볼 수도 있다.


자유로운 듯 또는 갇혀있는 듯한 아무것도 아닌 나의 일상이다.

하지만 명상을 통해서 소소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려 계속 노력하고 있다.

의식의 흐름대로 계속 끄적여보리라.


2020.10.26.





작가의 이전글 안녕! 이어령 선생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