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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소예 Oct 21. 2022

스무 살의 나

추억 - 서랍 속의 글 꺼내보기.

5월은 스무 살의 계절이다.


움츠려 있던 꽃들이 자신의 존재를 뽐내며 자리를 비집고 나와, 

활짝 피어나기 위해 저마다 아우성이다.


나는 지금 이천 설봉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다.     

이천 관고시장 방면에 일이 있지만, 오전부터 만 보를 채우기 위해

굳이 멀리 공원에 주차를 한다. 마스크 해제로 사람들은 활기차다.


호수공원에서는 분수의 물이 시원하게 하늘로 뻗어 올라간다.     

코로나, 드디어 끝난 건가?

알 수 없는 불안 속에서도 반가운 풍경이다.     


아랫동네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공원 쪽으로 올라와서, 

등에 땀이 삐질삐질 난다. 


잠시, 쉼!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카페인도 충전하고 공원의 봄기운도 충전한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풍경도 보고. 사람도 보고.     


벤치에는 나이 든 딸과 그녀의 부모님이 앉아 있다.

딸은 아버지의 기억을 일깨우기 위해 큰 목소리로 

그러나 상냥하게 자꾸 아버지를 귀찮게 한다.     


" 아버지! 나 어릴 적에 화로에 참새 구워준 거 기억나요?"

" 기억나요? 안 나요?"     


아버지는 나지막하고 맥이 없는 목소리로..

"응.... 응... 기억 나" 속삭이듯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이들의 대화에는 관심이 없다.


어디로 가던 중에 아버지를 쉬게 해 주려고 잠시 머무른 거 같았다. 


딸은 다시 말한다.

"아버지.. 난 맛은 기억 안 나. 아버지가 구워준 것만 기억 나."     


그 말투가 어찌나 상냥하던지, 눈물이 날 뻔했다.     

아버지는 어디가 아프신 걸까?

딸은 아버지에게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은 걸까?     


그러나, 지금은 그녀가 부럽다.

아직, 부모님 그늘에 머물러 있으니.     


스무 살.

나도 그때는 아버지, 어머니 완전체로 내 옆에 든든히 계셨지.     


스무 살.

재수하던 시절.

죽어라 운동하고, 공부하고, 4시간만 잤어도 행복한 시절.   

  

1년 365일 쳇바퀴 생활.

주말에도 나는 성당에서 새벽 미사를 보고 종일 연습실에 살았었지.     


부모님 안에 있었고 내 꿈을 꾸기만 하면 되던 시절.     

곧 IMF를 맞이할 운명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꿋꿋하게 내 할 일을 하고.     

곧 죽음을 맞이할 운명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정서적 지원을 받으며, 직진만 하던 시절. 


내 욕구가 세상 모든 것인 시절.     

시대 상황, 집안 상황.

상관없이 나만 챙기기 바빴던 시절.     


내 스무 살은 다가올 고난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오로지 나만을 위해 존재했었지.


딸은 부모님의 피땀으로 원하는 것을 얻었고...  

   

그런데, 그 딸이 지금은 오로지 아이 생각만 한다.

몇 해 후면, 스무 살이 될 아이 생각을 한다.     


나의 스무 살에 대한 생각도 잠시.

나의 부모님에 대한 생각도 잠시.

벤치에 내려두고.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나, 아이의 전투를 위해 필요한 물건을

챙기러 출동한다. 아이는 내일 강원도로 시합을 간다.

덩달아 엄마도 마음이 바쁘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의 벤치.

그 벤치는 사람들의 사연을 계속 간직하고 있으려나.          


후야!     

자신만의 세상에 있는 너를 응원할게

어둡고 따뜻한 동굴 같은 엄마가 너를 응원할게.   


잊지 마!

어두움이 좋은 건, 빛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야.     


너는 엄마에겐 세상에서 가장 큰 빛이야.     


그리고...

엄마아빠.. 사랑해요.


- 2022. 5월 어느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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