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같은 ‘종족’을 찾아 헤매고 있다고

by 연Yeon

서영님에게


사실 모든 삶에는 모순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나는 왜 그렇게 그게 커다랗게 느껴졌나 돌이켜 보면 저의 취향이나 선택 같은 것들이 결코 보편적이지 않아서였던 것 같기도 해요. 소수자로 사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기준 앞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는 일이잖아요. 그것이 얼마나 불안한 것인지 서영님도 잘 아시죠.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에 자신의 정체성을 깊이 고민하게 되지만요. 그게 그들을 단단하게 만들고요. 일종의, 혼돈 속에서 평화를 찾는 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직간접적으로 나의 어떤 면모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겠다는 예감을 느낀 날, 저는 적당히 순응하기로 결심했어요. 거부와 도태. 그게 너무 무서웠거든요. 저의 보편적이지 않은 부분은 멀리서 보면 잘 티가 나지 않았고 숨기려면 얼마든지 숨길 수 있었어요. 안심할 수 있는 아주 소수의 친구들에게만 그걸 오픈했죠. 고맙게도 아무도 그것을 가지고 저를 재단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깊은 연결감을 느꼈고 그 친구들과 함께할 땐 온전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단 한 번이라도 내가 나로서 온전하다는 감각을 느끼고 나면, 시간이 적게 걸리든 오래 걸리든 그걸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저 이번에 하노이에 다녀왔잖아요.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이었어요. 역시나 춤을 추러 다녀왔고요. 그 이벤트에 온 댄서의 에너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한국을 떠나왔다는 것 때문이었는진 모르겠지만 해방감을 느꼈어요. 이해관계와 문화적 차이와 타인의 시선, 그런 것들에서 모두 해방되어서요. 그러니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어요. 그 몰입을 가능하게 해 준, 또 그것을 함께한 파트너들에게 거리낌 없이 애정을 전했고요.


그리고 아주 깊은 연결감을 느꼈어요. 제가 지난 편지에서 춤이 주는 즐거움은 즉각적이지만 왠지 공허한 면이 있다고 했었죠. 근데 거기선 그러지 않았어요. 겨우 4시간을 자고 워크샵을 계속 듣고 심지어 마지막 날은 밤을 새웠는데도 몸은 피곤하지만 저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충만했어요. 아주 좋은, 나를 채우는 대화를 하고 난 것처럼요.


그날 차차티클럽에서 우리는 같은 ‘종족’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 같다고 했었잖아요. 서영님과 제가 닿고자 하는 그 통합은 결국 그것을 위한 것이라고요. 불안함을 잠재워 줄 나의 친구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줄 내 편.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감각. 그걸 그곳에서 느꼈어요.


그걸 아는 데도, 결단을 내리기는 왜 그리 어려운 걸까요.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비웃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왜 그리 작아지게 되는 걸까요. 여전히 두려워요. 내가 감각한 것은 명확한데 타인의 말 한마디로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어요. 그러면 또다시 불안해지고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라는 굴레로 다시 돌아가고. 너무 안온하잖아요. 조금의 희생으로, 약간의 불완전함으로 얻어온 것들이 많으니까.


단편적인 모습 하나만으로 나를 쉽게 재단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고, 내가 나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막막함은 또 얼마나 지난한 일이에요. 그리고 제가 이미 아끼는 이들이 나에게서 등 돌리는 것이 가장 두려워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면 못 견디게 슬퍼질 텐데.


이 작아지는 마음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요? 저는 타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란 걸 알아요. 온전함을 위해 용기내고 싶어요. 서영님은 20대 초반에 스스로 온전해지겠다고 결심하셨잖아요.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나요? 분명 무척이나 두려웠을 텐데. 결심 이후에 펼쳐지는 모든 일들은 그 두려움보다 더 외롭고 고통스러웠을 텐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해요. 용기를 잃지 않았던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궁금해요.


저 어느 날의 일기에 그렇게 적은 적이 있어요. 언젠가는 온전히 내가 나인 채로 존재하고 싶다고. 내가 나여도 안전한 세상. 편견으로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아니면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용기를 가지거나. 이 편지를 계속 쓰다 보면 닿게 될까요? 이 지면에서도 두려움 없이 솔직해질 수 있는 날이 올까요?



2023년 4월 26일

소연



사진은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표지의 일부. @Laura Makabres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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