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연님에게
우리가 두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마음껏 약해지고, 두려워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두렵다는 것은 마주 보려 한다는 말 같아요. 외면하는 자는 두렵지 않아요. 불안하죠. 하지만 두렵다는 것은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려는 마음이 있다는 말이어서, 소연님의 두려움의 고백 속에서 저는 용기를 느껴요.
지난 편지에서 소연님은 저에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냐고 물었죠. 답하기에 앞서 소연님의 상상만큼 멋있게 용기를 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대단한 결심과 용기라기보다는 살기 위해 그랬어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어서 제가 아닌 모습을 꾸며내기도 하고, 제 진짜 모습을 억누르기도 했어요. 그 대상이 어머니였을 때도 있었고, 연인이었을 때도 있었어요. 그렇게 어딘가 부풀려지고 일그러진 상태를 알면서도 모른 척 살았던 것 같아요. 소연님 말대로 조금의 희생으로 얻어지는 것들이 너무 달콤해서요. 오히려 그 규칙 안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으려고 있는 힘껏 노력했어요.
그러나 붙잡아 두려고 애쓴 모든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내가 믿었던 사랑은 신기루처럼, 거품처럼 사라졌어요. 더 이상 착각 속에서 자위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기어 나왔어요. 희망이 없는 곳에 더 있을 수는 없어서요. 그곳에서 나는 천천히 죽어간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사랑받으려고 갖은 애를 다 써봐서, 내 몸과 마음이 다 축나서 죽을 정도로 해봐서, 거기에는 사랑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곳으로 가야 했어요. 뒤에는 죽음뿐이니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거든요.
뒤에는 죽음뿐이고 삶을 선택했기에 울면서도 앞으로 걸어가고 있어요. 한 번 경험한 것을 또 경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계속 새로운 곳을 향해 가고 있어요. 온전해지겠다는 말은 고유해진다는 말이라는 것을 제 선택을 살아가면서 새삼 깨달아요. 제 마음에서 올라오는 모든 감정과 느낌을 부정하지 않고 모두 보아줬는데 그중에 세상에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만 같은 지점들이 보일 때, 그때도 나를 긍정하는 일은, 맞아요 두려워요. 온전한 삶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인 것 같아요. 온전해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마주하게 되는 두려움이 있어서요.
결단은 어려워요. 단호하게 끊어내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힘은 ‘죽음’으로부터 길어 올리는 힘이에요. 살아서 겪는 작은 죽음들. 과거의 정체성과 이별하고 새로운 정체성으로 태어나는 일들. 과거의 정체성과 연을 맺고 있는 모든 것들과 이별하는 일들은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확실한 것은, 새로운 정체성에는 새로운 사람과 일들이 담긴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새로운 정체성이 나에게 더 편안한 것이라면, 나에게 더 편안한 사람과 일로 주변이 채워질 거예요. 그게 제가 체득한 같은 ‘종족’을 만나는 방법이에요.
저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숨기지 않고 드러냈을 때에 생긴 연결들은 하나하나 반짝이고 빛났어요. 그 어떤 것도 이제는 더 이상 공허하지 않았어요. 해방감과 충만함. 소연님이 하노이에서 느낀 것처럼요. 우리 둘 다 그것이 무엇인지 맛을 봐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아요. 물론 그렇게 생긴 연결과 깊은 신뢰의 관계에서 받는 고통 또한 말로 표현할 수 없게 컸지만요.
온전함으로 살아보려는 시도를 해보고 있는데요. 고통도 환희도 모두 나의 것이어서 좋아요. 고통이 없어서 좋은 게 아니라, 나의 고통이어서 좋아요. 있는 그대로 느끼는 환희와 고통은 삶을 생생하게 만들어줘요. 환희와 고통의 물결 속에서 저의 존재를 구석구석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지난 몇 년간은 고통이 아주 많았는데요. 그게 저에게 아주 좋았어요. 고통을 많이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자꾸자꾸 만져보고 냄새를 맡고, 이런저런 모양과 방법으로 다루어 볼 수 있었거든요. 고통 속에서 헤엄치고 탐험하면서 고통이 말해주는 메시지를 읽는 법을 배울 수 있었고, 고통에 대한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어요. 언젠가 이 지도를 들고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온전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온전하게 살 수 있는 영토가 많아질 테고, 그러면 우리는 어딜 가도 춤추듯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온전해진 사람들 속에는 내가 사랑한, 그러나 떠나온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요? 그들을 다시 만난다면 그렇게 만날 수 있길 희망해요.
2023년 5월 2일
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