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몸을 맡겨보려고요

결단의 시작이 절박함이 아니어도 괜찮을까요

by 연Yeon

서영님에게


두렵다는 것은 마주 보려 한다는 것. 이 말이 저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몰라요. 저는 제 삶의 대부분을 도망치며 살아왔거든요. 내가 마땅히 맞닥뜨려야 할 현실에서, 해결해야 할 감정적 앙금에서, 사람에서요. 아직도 외면하고 있는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제 삶에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었나 봅니다. 외면하면 절대로 끝장낼 수 없잖아요. 끝이 오기 전까지는 불안을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니.


지난해였나, 코로나가 아직은 이슈일 때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어요. 이렇다 할 답은 얻지 못했지만 올해는 저에게 있어 큰 변화가 있을 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어요. 오랜 우울과 이별하고, 퇴사를 결심했어요. 미루기만 했던 일들을 정말로 해보기로 했고요. 여러 곳에 에너지를 쏟고 있던 걸 조금 내려놓기로 했어요. 그러려고 의도한 것이 아닌데 신기하게도 모든 것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저를 한 방향으로 이끌어요. 외면해 왔던 것을 마주 보라고요. 변화에 몸을 맡기라고요. 온 우주가 저를 돕는다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조금 거창한가요.


어디에도 길게 머물지 못하고 핑퐁핑퐁 거처를 옮겼던 이유가 모두 지금을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방황에 지쳐 어딘가에 머물고 싶어지기까지 이만큼의 시간이 걸린 것이라고요. 최근까지 가장 집중했던 테마가 안식처였거든요. 내가 나일 수 있는 곳. 그곳이 공간이든 시간이든 누군가든. 움직임 워크샵에서, 주크를 출 때, 아끼는 이들과 깊은 대화를 나눴을 때 간헐적으로 느꼈던 그 안정감을 더 오랫동안 느끼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되려면 결국엔 나 혼자서 온전해져야 되겠다는 것 역시 느꼈고요.


그런데 덜컥 누군가가 나타났어요. 그것도 제가 그렇게도 원했던 사람이. 저는 늘 모든 걸 털어놓고 싶었어요. 상대방도 그러길 바랐고요.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을 한 건지. 그걸 위해 그 사람의 과거 연애사나 어린 시절이나 트라우마를 이야기해야 한다면 기꺼이 듣고 싶은 사람이거든요.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신기루 같은,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아요. 그래도 서로를 이해하려 시도하는 마음은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건 절대로 무용하지 않은 일이고요. 그렇지만 서영님도 잘 아시다시피 감정에 솔직해지는 건 쉽지 않잖아요.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게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거나 허락되지 않아서 슬펐어요. 제가 상대방을 닦달하고 그 사람은 침묵하고 저는 마음을 닫고. 늘 그런 식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가능한 사람이 나타난 거예요. 우린 정말 모든 이야기를 해요. 어째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과거의 어떤 경험에서 연유한 것인지. 그렇게 상대방을 이해하고 싶어 해요. 제가 늘 그랬던 것처럼요. 가끔은 저보다 더 집요해서 과거의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느낄 정도로요. 어떤 이야기를 해도 될 것 같고 그걸로 나를 쉬이 판단하지 않을 걸 알아요. 그게 제게 큰 자유를 줘요.


그 사람은 감정을 싣지 않고 내가 납득할 수 있게 불편한 부분을 이야기해 줘요. 저도 불편한 게 있으면 참지 말고 꼭 얘기하라고 당부하고요. 우리가 더 나은 관계가 될 수 있도록 아주아주 노력해요. 구체적인 계획 없이 무작정 저지르곤 하는 나와 달리 체계적이고 분석적이고 논리적이고요. 우리는 서로에게 쉬이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사람이에요. 제게 불안 대신 안정을 줘요. 확신을 줘요.


다들 나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이 있잖아요. 그게 극심하면 자기혐오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누군가에게 솔직해지기 어려운 이유는 그것인 것 같아요. 나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면을 타인이 받아들이는 게 가능 키나 하겠냐고요. 솔직함이 가장 중요하다 말하는 저조차도 그걸 걱정하거든요. 그럼에도 이 친구는 받아들이겠다고 말해요. 사랑하니까요.


전혀 생각지도 않게, 그리고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 상황이 아직도 얼떨떨해요. 이 사람이 무척이나 귀한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섣부르게 누군가를 믿어도 되나, 하는 마음이 들어요. 아마도 이건 시간이 필요한 일이겠죠.


요즘 주변에 결혼하는 사람이 참 많은데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 한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기로 결심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어요. 너무 먼 미래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니 저는 그런 먼 약속은 잘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는 저와의 미래를 확신해요. 그게 무서우면서도 좋아요. 자기에게 상처가 된다고 해도 나 자신을 솔직히 드러낼 수 있다면, 우리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다 괜찮다고 해요. 서영님의 말처럼, 이 친구는 저와 함께하면서 맞이할 환희와 고통을 모두 기꺼이 안고 갈 준비가 되어있는 듯해요. 그리고 저는 이 친구 앞에서 종종 작은 사람이 돼요. 미안하고요. 또 사랑을 느껴요. 내가 나여도 나를 떠나지 않겠다고, 나 자신으로 있어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제 옆에 있어요.


지난 편지에서 그 결단은 죽음에서 길어 올린 것이라고 이야기하셨죠. 선택지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그건 과거의 정체성과 이별하고 새로운 정체성으로 태어나는 일이었다고. 서영님 제가 마주한 결단은요, 돌아갈 곳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느껴요. 죽음이라기보단, 제 앞에 놓인 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아주 편안한 샛길로 빠져든 느낌이에요. 죽음이란 걸 경험할 새도 없이 새로운 삶이 펼쳐지고 있어요. 이 삶을 잘 맞이하려면 이제부터 여러 이별을 준비해야겠죠.


결단의 시작이 죽음이 아니어도 괜찮을까요. 죽음과는 어쩌면 정반대에 있을 이 안정감으로 시작된 결단이 정말 결단이 될 수 있을까요. 그건 그만큼 절박하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지금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한 치 앞도 가늠할 수가 없어요. 그걸 지금 점쳐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테지요. 불안함만 커지게 만들 테죠. 그러니 계속해서 지켜보려고요. 이 안정감이, 지금의 결단이 저를 어디까지 데려갈지. 이걸 정말 결단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를요.


2023년 5월 10일


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