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삶을, 두려움 앞에서 사랑을 말하겠어요

그러한 태도로 흘러가는 삶을 살고 싶어요

by 연Yeon

소연님에게


우리가 대화할 때면 늘 온전하게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는데, 소연님에게 온전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찾아온 듯하여 기뻐요.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생이 얼마나 맑아지는지 잘 알고 있어서 더욱이요. 환희와 고통을 모두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사랑이란! 그것을 어떻게 누리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것이 얼마나 나를 빛나게 하는지 정말 잘 알아요.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온전한 사랑은, 만약 그 관계가 깨어지더라도 내 안에 체화된 기준이 되어 남은 삶에서도 나를 귀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러니 소연님이 죽음이나 결단에 대한 고민 없이 이 기적 같은 순간을 누리길 응원해요. 사랑을 함빡 받아 활짝 피어나길 바라요. 지난 편지에서 저는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그것은 저의 이야기일 뿐이라서, 소연님의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요.


결단이 대단할 필요 있나요. 변화가 요란스러울 필요 있나요. 쥔 손이 너무 단단할 때는, 놓는 소리가 요란한 법이지만 가볍게 툭 놓을 수 있다면,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흘러갈 수 있다면 거기에는 흘러가고 변화하는 매 순간만 있을 뿐인걸요. 소연님에게 다가온 흐름에 가볍게 몸을 싣고 흘러가보길 응원해요. 죽음도 있지만, 죽음으로 인해 생기는 새로운 탄생도 거기에 있을 테니까요. 죽음을 걱정하게 되면 죽음을 바라보게 되잖아요. 죽음에 등을 붙이고 삶을 바라보는 자에게 죽음은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따뜻하게 등을 밀어주는 존재가 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어쩌면 죽음에 대해서 너무 거창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나뭇잎도 가지에서 떨어지기까지, 긴 시간에 걸쳐 색이 바래고, 가지와의 연결이 차츰 약해지다 어느 순간 때가 오면 작은 바람에도 톡 떨어지듯이 자연스러운 죽음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소연님이 보낸 방황의 시간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부단히 달려 나가던 시간처럼 느껴져요. 그렇기에 가볍고 산뜻한 죽음과 살포시 피어나는 시작을 만나는 게 아닐까요. 그동안의 소연님의 방황과 고민이 가지고 있던 힘을 믿고 그대로 가보길 응원해요. 저는 그 힘을 결단이라고 부르겠어요.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방황할지언정 안주하지 않는 소연님의 기준이 되어 주었을 테니까요. 그 결단은 겉으로 요란하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 오랜 시간 소연님의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방황하게 만들고 새로운 사람과 장소를 만나게 한 원동력이라는 것을 알아요.


저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어요. 저는 온몸을 실었고, 비록 산산조각 났지만요. 후회는 없어요. 온전한 사랑의 감각을 느껴봤거든요. 덕분에 저는 무엇이 사랑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어요. 언제가 나를 지켜야 할 때이고 아닌지도요. 그리고 그것을 언어로, 몸짓으로 전달하는 물꼬를 틔웠어요. 저의 죽음이 가져다준 새로운 탄생의 새싹들을 바라봐요. 새싹을 보며, 결단의 순간에 용기를 낸 저를 나무라지 않고 잘했다고 말해주려고 노력하는 요즘이에요. 너무 아프고 무서웠어서 저마저 저의 선택이 미울 때가 있었거든요. 아직도 산산조각 난 영혼의 조각을 모아 이어 붙이고 있노라면, 내가 애정하던 나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가곤 해요.


저의 죽음은, 준비할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은 채, 아직 생떼같이 가지에 붙어있는 한여름의 나뭇잎을 손으로 잡아 뜯는 느낌이었어요. 아마 그래서 그 죽음이 저에게 고통과 놀람의 기억으로 각인된 게 아닐까 싶어요. 죽음 자체는 자연스럽고 따뜻한 것이지만은 죽음이 찾아오는 모양새와 때는 사람마다 달라서, 어떨 땐 너무 갑작스럽고 감정이 터져 나오는 사건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죽음 앞에서 저의 선택은 차라리 새로운 탄생이었어요. 상대가 나를 잡아 뜯으며 사랑의 죽음을 말할 때, 사랑을 더 크게 발화하겠다는 선택을 했어요. 가족, 특히 엄마가 제 안에서 죽을 때 아팠던 것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발버둥 쳤기 때문임을 알아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마주했을 때에야 죽음 자체는 자연스럽고 따듯하며 친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차라리 죽음 앞에서 삶을, 두려움 앞에서 사랑을 말하는 방향으로 제 에너지와 마음을 쓰기로 결심했어요.


그 덕분에 저는 길고 느리게 죽음을 향해 가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압력과 고통의 시간을 거쳤어요. 아니 거쳐 가고 있어요. 죽음이 결국 오리란 것은 알고 있지만, 동의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심술궂은 망나니가 목을 잘금잘금 썰어내듯 느리게 맞이하는 죽음의 시간을 가지고 있어요. 죽음까지 가는 모든 순간순간들을 음미하고 목격하고 있어요. 그리고 견디기 힘든 압력과 힘을 견뎌내는 모든 시간들이 저의 중력을, 깊이를 키워낸다는 것을 느껴요. 진정한 죽음을 맞이하는 만큼 흘러들어오는 새로운 탄생과 만남들을 또한 아주 느리게 맞이하고 있어요. 저의 죽음과 탄생은 이런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인간인지라 마음이 조급해지고, 정육점 주인처럼 칼로 탕 내리쳐 끊어내거나, 댐을 무너뜨리듯이 새로운 탄생과 만남이 터져 나오게 하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퍽 버겁지만요. 이제 저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서, 이 거대한 중력과 에너지를 어디로 흘려보낼지 적확한 방향이 드러날 때까지 쉬이 소비해버리지 않으려고 해요.


이 버거운 압력이 언제쯤 세상을 향한 추동력으로 풀려나갈까요. 내면의 수많은 것들이 언제쯤 언어의 옷을 입고 세상으로 나와 춤을 출까요. 그리고 그건 어떤 모양일까요. 숨이 뜨겁고 버거울 때면 그때가 언제일지 눈을 감고 상상해요. 흔들리는 초점이 고요해져, 하나의 과녁을 향하게 되는 순간을 기다려요.


2023년 5월 17일


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