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설국열차>: 리더의 자질

봉준호 영화 다시 보기

by 박소연

*이 글에는 그래픽노블과 영화 <설국열차>의 스포가 있습니다.


원작이 있는 영화의 경우, 원작의 어떤 부분을 살리고 어떤 부분을 영화적 특성에 맞게 변경할 것인가의 고민은 필연적이다. 원작의 포맷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새로 만들 포맷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원작 팬들의 날카로운 심판을 견디고 새로운 팬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다. 그렇다면 봉준호의 영화 <설국열차>는 원작 그래픽노블 <설국열차>와 어떻게 같고 다를까?


<설국열차> 원작 그래픽노블 (좌 ⓒ 자크 로브/장마르크 로셰트)과 영화 (우 ⓒ 봉준호)

봉준호의 어릴 적 꿈이 만화가였다는 것은 유명하다. 그는 직접 그린 만화를 들고 만화과 교수를 찾아가 보여주었고 교수는 (꿈을 키워줄 만도 했는데) 소질이 없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일화가 있다. 우린 운이 좋다. 덕분에 봉준호는 만화가의 꿈을 접었고 결과적으로 영화라는 우리 시대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예술 형태를 통해,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그의 영화를 기다리는 흥분은 동시대를 사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그린 콘티가 책으로 출간되면 스스로 만화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의 영화에 만화적 연출이 유독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인 듯하다. <옥자>에서 미자가 온몸을 던져 보완 유리를 깨는 장면이나 <플란다스의 개>에서 개 도둑과 관리실 여직원의 추격 장면 등은 만화를 실사로 옮긴 듯한 느낌을 준다. <괴물>에서 강두가 죽은 줄만 알았던 딸 현서의 전화를 받고 정지한 가족들의 모습은 마치 정지된 만화의 페이지를 보는 듯하다. 이 잠깐의 쉼은 감정을 리드미컬하고 유연하게 이끌어 준다.


영화 <설국열차> 콘티의 한 컷 ⓒ 봉준호


그래픽노블 <설국열차>

총 4부까지 출간된 설국열차는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번갈아 계승하며 이어지고 있다. 최초 원작을 구상했던 자크 로브는 1970년대에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글을 써서 알렉시스에게 그림을 부탁했다. 그러나 알렉시스가 사망하자 장마르크 로셰트가 처음부터 그림을 다시 작업해 1984년 1부를 출간했다. 그런데 글 작가인 자크 로브가 1990년 사망하자 장마르크 로셰트가 글 작가 벵자맹 르그망과 함께 2권과 3권을 각각 1999, 2000년에 출간한다. 4권이 2015년 출간되었는데 글 작가 벵자맹 르그망이 그림 작가 올리버 보퀘트와 함께 했다. 2013년 개봉한 영화는 1, 2, 3부에 기반했다.


1부 탈주자는 꼬리 칸을 탈출한 프롤로프가 사회운동가 아들린과 함께 머리 칸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이야기이다. 열차의 한 칸씩 이동하는 주인공을 따라 책장을 넘기며 독자도 천천히 이동한다. 열차는 인류가 만들어 놓은 지구의 모든 것이 축소돼 있다. 각 칸의 특성을 하나씩 경험하면서 주인공과 독자는 감정적 유대를 형성한다. 2, 3부는 젊은 혁명 지도자가 기존 세력과 부딪히며 겪는 갈등과 고민이 담겨있다.


원작의 한계는 거기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스토리의 완성도가 가장 높은 1부는, 인간은 어떤 상황에도 계급을 만든다는 사실과 두 주인공의 인간적 욕망, 엇갈린 선택으로 맞는 결말이 인상적이다. 1986년 앙굴렘 국제 만화축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그러나 2, 3부는 다소 피상적인데, '절망적인 현실에서 지도자는 거짓 희망이라도 주어야 하는가 혹은 현실을 전달해야하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는 있지만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 큰 감흥이 없다.


영화 <설국열차> 의 설정과 공간 ⓒ 봉준호


영화 <설국열차>, 설정의 극대화

영화와 원작의 가장 큰 공통점은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기후변화로 얼어붙은 지구에 마지막 생존자를 태우고 끝없이 달리는 열차가 있다. 그리고 생존자들에게는 계급이 있는데 꼬리 칸부터 앞으로 갈수록 더 높은 계급이라는 것이다. 열차 안은 지구의 축소판처럼, 계급과 종교, 쾌락과 탐욕이 존재한다. 영화의 멈추지 않는 기차를 보고 원작을 접한 사람들이라면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다. 그래픽노블에서 열차는 멈추기도 하기 때문이다. 2시간에 관객을 몰입시켜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영화에서는 그럴 수 없기도 하지만, 열차가 멈출 수 있다는 것은 솔직히 말해 매력이 없다.


영화 <올드 보이>가 일본 동명 만화의 설정만 가져왔듯 <설국열차>도 원작의 설정만 공유한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2013년 부천만화축제에서 원작자와 만난 봉준호 감독이 설명하듯, 원작 1부의 설정에 기반해 2, 3부의 특징을 살렸다. 영화 <설국열차>는 봉준호 영화 중에서는 가장 별로지만 포맷이 다른 점을 고려하더라도 원작보다 훨씬 수작이다.


영화 <설국열차>는 열차라는 공간적인 특성을 아주 잘 활용했다. 멈출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는 긴 공간은 마지막 남은 인류의 절망적인 투쟁을 극대화한다. 뒤로 물러설 곳 없는 사람들은 삼엄한 감시 속에 문이 열리는 몇 초의 틈을 이용해 순식간에 앞칸으로 전진한다. 이후 좁고 긴 달리는 열차 안에서 앞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들의 투쟁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더 떨어질 수 없는 인간성의 바닥에서 ‘사람’이 되고 나은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자 그들은 처절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혁명의 목적은 마지막 남은 인류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인간이고 이들의 혁명은 처절하다.


영화 <설국열차>의 컨셉 아트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엉성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가장 정치적인 영화다. 누군가 보내는 의문의 쪽지가 ‘어디에서, 누가 보내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면 머리 칸에서 커티스가 겪는 좌절감은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 쪽지는 영화의 강력한 설정인 열차라는 공간을 생각하는 순간, 결정적인 스토리의 구멍이 된다. 그러나 설국열차에서 주목할 점은 스토리가 아니라 캐릭터이다. 영화 <설국열차>는 혁명 지도자인 커티스를 통해 지도자, 리더의 자질에 초점이 있다.


영화 <설국열차>는 혁명 지도자를 다룬 이야기들과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역시 그래픽노블 원작인 <브이 포 벤데타>, 리들리 스콧의 <로빈 후드>, 한국 소설 <홍길동>은 혁명과 지도자에 관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혁명 지도자의 이야기를 영웅 서사로 다루고 있는 것과 달리, <설국열차>의 커티스는 누구나 그를 지도자로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은 끊임없이 리더의 자질을 의심한다.


영웅 서사는 주인공이 영웅으로 태어났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브이 포 벤데타>의 경우 압도적인 능력을 지닌 브이가 시민을 일깨우고 전체주의에 대항한다. 브이의 태생은 정부의 실험으로 생긴 돌연변이에서 기인한다. 시스템에서 태어난 오류가 시스템을 파괴하기 위해 작용하는 것이다. 리들리 스콧의 <로빈 후드>에서 로빈 롱스트라이드의 아버지는 부당한 정부 관리에 저항하다가 살해당한다. 그는 실력으로 지지를 얻기도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그의 저항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홍길동> 역시 당시에는 서자의 서러움을 표현하고 신분제도를 타파하는 상징이었지만, 또한 반은 양반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시민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들은 태생부터 영웅이다.


영웅 서사의 혁명 이야기 좌 <브이포벤데타> 중 <로빈후드> 우 <홍길동> (한국 최초 장편 컬러 애니메이션)


반면 커티스는 다른 세 이야기처럼 스스로 지도자가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계의 종말이 오는 통에 어른이 되고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했다. 맛있는 아기 고기를 위해 살인을 하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누구보다도 꼬리 칸의 잔인함과 참혹한 현실에 동화되어 있던 사람이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도덕적 기준이 없는 혼돈 속에서 사람들은 희생을 통해 스스로 기준을 세웠다. 커티스는 타인의 희생을 보면서 부끄럼을 느끼고 자신을 혐오하는 스스로 ‘인간’이기를 선택했다. 극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선한 행동을 보고 도덕을 배운 커티스는 ‘나은 선택’을 통해 식인을 일삼던 폭력배에서 혁명의 지도자가 되었다.


꼬리 칸의 다른 사람들도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희망을 주고, 앞칸으로 전진하도록 이끈다. 그 모든 상황에서 아기의 맛을 아는 자기혐오의 고통을 견디는 것은 보통 사람이 될 수 있는 가장 강한 지도자의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커티스는 다른 세 이야기의 영웅보다 순수한 혁명가의 자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희생할 줄 모르는 지도자는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그는 희생을 두려워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커티스는 엔진 속의 아이를 꺼내기 위해 팔을 희생하면서 그는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격을 획득하고, 혁명의 완성, 모두가 갇혀있던 열차를 벗어난 새로운 희망을 잉태시킨다.


스스로 나은 사람이 되는 선택을 거듭한 끝에 커티스는 머리 칸에 도착해 엔진을 멈춘다. 자신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자신이 적임자인가 질문하는, 겸손하지만 행동할 줄 아는 지도자가 세상에 몇이나 되던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기존의 부당한 질서를 개선하는 것, 타인이 제시한 훌륭한 의견을 받아들이고 협력하는 것이 리더의 자질이다.

영화 <설국열차> 스틸컷 ⓒ 봉준호


봉준호의 혁명

봉준호 감독은 최근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JTBC와 인터뷰를 가졌다. 왕관의 무게에 대한 앵커의 말에 그는 “지금 왕관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10년, 20년 후에는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왕관은 아마 아카데미 감독상 혹은 작품상이 아닐까. 미국 백인 유대인 남성만 받을 수 있다는 그 왕관을 그가 쓴다면, 전 세계 영화 꿈나무들의 가슴속에 또 다른 꿈 하나를 심게 될 것이다. 냉철하고 현실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예술가들이 있다. 종종 그들은 작품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혁명을 이루기도 한다. 의도한 바는 아닐지 몰라도 영화 <설국열차>는 그가 할리우드로 가는 다리를 놓았다. 어쩌면 봉준호라는 감독은 영화 속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혁명을 이뤄낸 인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그의 혁명이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영화 <설국열차> 촬영장, 봉준호


참고: 시각 문학 0호 내면, <봉준호 감독은 정말 설국열차의 원작자를 만난 것일까? > 조프리,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영화 ‘설국열차’ 관람한 원작자들 반응은?> 최정애, <영화 같은 시간> 이음


속닥속닥 덧붙임

기후변화의 피해와 위기의 상징인 북극곰은 <설국열차>에서 열차밖에 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이라는 희망으로 등장한다. 원작의 구성 스케치에도 있었던 북극곰의 등장과 영화 속 의미는 정말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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