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영화 다시 보기를 진행하며 영화 <괴물> 이야기를 먼저 내 놓습니다.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아직이라면 스포가 많다는 것을 알립니다.
ⓒ 봉준호 <괴물>
영화 <괴물>은 한국영화 사상 가장 비현실적인 프로젝트로 불렸다. 한국의 대중문화시장은 세계 7위 규모지만 유독 판타지나 공상과학 분야는 인기가 적다. 그래서 처음 봉준호 감독이 한강에 괴수가 출현한다는 설정을 꺼냈을 때 그 자신을 비롯한 모두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이 비현실적인 아이디어가 설득력을 획득하는 방식이 참 묘한데, 이 설정이 바로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 영화의 모든 출발이 그렇듯 말이다.
<괴물>에서 비극은 기능하지 않는 시스템에서 출발하는데 그 속에 사는 평범한 사람이 극한 상황에 놓이면서 시스템의 모순과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괴물에서 비극의 시작은 한국이 존경해 마지않던 미군부대에서 시작한다. 선진국이며 일제시대 직후 내전을 치른 우리를 구한 강대국 미국 고위 관리는 엄청난 양의 독극물을 한강에 버리라고 지시한다. 명령을 받은 한국 군인은 상식 밖의 지시에 결과를 걱정하며 이의를 제기하지만 군인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 (무책임한 상사의 지시에 복종해야만 하는 합리적인 하급 실무자의 상황은 현재 진행중이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나라에는 더 큰 비극의 문이 열리기 마련이다.
한강은 여러 모습을 지닌 일상의 장소이다. 친구, 가족과 함께 짜장면과 치킨을 배달해 즐기기도 하고, 연을 날리기도 한다. 누군가는 목숨을 끊으러 가는 곳인가 하면, 누군가는 건강히 오래 살기 위해 운동하고, 직장에서 생긴 억울한 일로 속을 풀러 가는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는 한반도에 기반을 둔 세 나라가 한강을 쟁탈하기 노력했고 한강을 차지한 국가는 전성기를 누렸다.
영화 <괴물>은 한강의 다양한 용도만큼 다양한 시민의 시각에서 괴물이 활보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백주대낮 한강에 나타나 난동을 부리는 괴물과 도망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둔치와 주차장, 고가도로 버스에서 목격하는 시점으로 마치 시민들이 각자 위치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인 듯 긴장감과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익숙한 장소 한강에 낯선 괴물을 던져 놓아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가장 비현실적인 프로젝트는 현실성을 획득한다.
<괴물> 스토리 플롯은 점진적 공포감을 조성하는 일반 괴수물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에일리언이나 고질라 혹은 퍼시픽 림 등은 플롯의 목적이 인류를 구하거나 생존, 혹은 주인공의 트라우마 극복 혹은 정서적 성장이기도 하다. 그런 거대한 이야기와 <괴물>은 거리가 멀다. 봉준호 감독도 한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한 적이 있는데, 아이를 잃은 아버지와 가족이 필사적으로 아이를 되찾으려는 유괴물에 가깝다. 이 또한 관객들을 비현실적인 설정에 몰입하게 한다. 바로 아이를 빼앗긴 부모와 가족의 심정이다.
“장르를 의식하면서 그것을 바꾸고 섞으려 노력한 것이 아니라 캐릭터와 상황에 몰입해서 따라가다 보니 장르가 이질적으로 혼합되고 비틀려 있는 특이한 결과에 이르렀다.” <괴물 메이킹에서 봉준호, 52p>
한때 유행하던 시나리오 작법 책 <캐릭터 중심의 시나리오 쓰기>에 나올 법 한 말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캐릭터가 주도적으로 지배하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캐릭터의 동기가 가장 중요하고, 대부분 그 동기는 논리적 근거를 대기 어려운 인간의 강한 본성에 근거한다.
<괴물>에서 현실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오히려 코믹하다. 감독이 꼽는 가장 한국적인 코믹한 장면은 합동분향소에서 슬퍼하는 유가족에게 차를 빼라는 경비원과 얼른 달려나가는 유가족의 모습이다. 듣도 보도 못한 괴수에게 아이를 유괴당한 설정이지만 보는 이는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빼앗긴 것을 찾기 위해 맨땅에 헤딩하며 구르고 온몸을 부딪히는 평범한 루저들이 엉뚱하게 상황을 해결해가는 모습은 웃기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다.
딸밖에 모르는 무능한 아버지 ‘강두’, 대학을 나오긴 했지만 데모밖에 한 것 없고 취직도 못한 잔머리 1등 백수 ‘남일’, 매번 느린 거북이 동메달 양궁 선수 ‘남주’, 뇌물과 인맥으로 일을 해결하려 귄위를 믿고 복종하는 할아버지 ‘희봉’은 여러 번 어려운 상황에 놓이지만 매번 이들중 하나의 특기는 쓸모가 있다. 각자 딱 한가지 잘하는 것으로 힘을 합해 가족의 희망, ‘현서’를 구하려 뛴다.
정부는 한강에 날뛰는 괴수를 없애려 검증도 되지 않은 ‘엘로 에이전트’를 미국에 큰돈을 주고 구입한다. 다시 한번 강대국의 힘을 빌려 그들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 믿는다. 오합지졸 가족은 각자 최선의 힘을 하나씩 보태 현서의 위치를 알아내고 일자무식 강두는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를 무기 삼아 탈출한다. 강두가 환자복 차림으로 한강다리를 달리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강두와 가족을 응원한다.
<괴물>에서는 유독 카메라가 캐릭터를 평행을 따라 달리는 장면이 많다.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에서 사용되었는데, 봉준호 감독은 <괴물>에서 이 기법을 변주하며 절박하고 다급한 가족의 심정을 전달한다. 남주가 현서의 위치를 문자로 확인하고 달릴 때 카메라는 나란히, 혹은 위에서 함께 달린다. 강두가 바이러스도 없는 자신의 피를 무기 삼아 탈출할 때 강두와 함께 달리다가 앰뷸런스를 탔을 때 줌인으로 하며 화면에 속도감을 증폭시킨다.
옐로 에이전트가 뿜어내는 노란 연기가 자욱한 한강에서 가족은 노숙자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사투를 벌이고 관객은 강두와 가족의 삶에서 가장 긴박한 순간을 함께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과 힘, 에너지가 모여 이룬 순간은 우리 중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하지만 목표한 것을 이루지 못하고 절망의 순간, 딱 죽지않을 만큼의 희망 혹은 변명을 얻는 우리들의 이야기 말이다. 가족은 죽을힘을 다해 구하고 싶었던 현서 대신, 현서가 온 힘을 다해 구한 세주를 안는다.
한강은 다시 평화로워졌고 강두와 세주는 밥을 먹는다. TV에서는 바이러스 운운하던 미국인 의사가 바이러스는 없었다는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아마 총을 곁에 두고 밥을 먹는 것이 일상이 될 정도로 판결과 진상 규명에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밥 먹는데 방해가 되니 TV를 꺼버리고 강두와 세주는 맛있게 먹는데 집중한다. 하루를 살아야 하는 소시민들에게 중요한 사람들의 발표 같은 것은 그저 TV 속 이야기일 뿐이다. 이렇게 비현실적이었던 이야기 <괴물>은 비극도 희극도 아닌 그냥 사는 이야기, 평범한 우리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는 그렇고 그런 대단한 이야기가 된다.
“누구도 그 어떤 누구도 이 어린 두 영혼을 도와주지 못했다는 거죠. 자기들 스스로 끌어안고 나오는 것을 볼 때는, 아버지로서 느낌보다는 이 사회의 어른 입장에서 통곡의 눈물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점에서 현서의 마지막 체온을 느꼈던 세주가 강두에게는 현서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실오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주가 눈을 뜨고, 그러니까 새로운 희망으로 눈을 뜨는 거죠. 그렇든 안 그렇든, 강두는 세주를 안았을 것 같아요, 살아있기 때문에 안고 간다는 겁니다. 하지만 만약 아이가 죽었어도 안고 가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