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이 카제 <러브 올 아레나 투어> 콘서트에 다녀오다.
일본의 가수 후지이 카제의 <러브 올 아레나 투어>에 다녀왔다. 이렇게 재미없는 문장으로 첫 문단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덕심을 가득 담은 문장으로 시작하면 그 부담스러움에 사람들이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를 것만 같아 지극히 평범한 문장으로 써보았다. 어떻게 가게 되었고 누구랑 다녀왔는지 등은 블로그에 쓸 예정이며 브런치에는 오로지 콘서트 후기만 담겠다.
교토에서 신칸센을 타고 나고야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아오나미 선을 타고 마지막 역인 킨조후토 역에 내렸다. 역사에서부터 콘서트장인 ‘포트 메세 나고야’가 보였다. 나고야 역에 있을 때만 해도 사람이 많다고 생각 못 했는데 입장 대기 줄을 보니 사람이 정말 많았다. 생각해보니 인기 가수만 출연할 수 있다는 연말 방송인 홍백가합전에 2회 연속 출연한 가수라는 걸 깨달았다. 그 이전부터 좋아했기에 실감하지 못했다.
내 자리는 W 구역의 8열이었다. 메인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부터 가장 먼 자리까지 0부터 10으로 나눈다면 4 정도 되는 자리였다. 너무 가까우면 아래에서 무대를 올려다 봐야 하고 너무 멀면 가수가 면봉 크기처럼 보이는 단점이 있는데 딱 좋은 자리였다. 후지이 카제는 자전거를 타면서 등장왔다. 무대 바깥쪽을 크게 한 바퀴 돌며 관객들에게 인사해 주었다. 평소에도 소박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주던 그 다운 등장이었다.
메인 무대에 도착한 카제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첫 곡은 세션 없이 피아노만 치면서 잔잔한 노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거짓말처럼 밴드 연주 없이 혼자 피아노를 치며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허밍하다가 자연스럽게 반주가 들어왔을 때 절대음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치이고 말았다.
첫 곡은 The sun and the moon. 한국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는 없는 곡이라 처음엔 커버 곡인 줄 알았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카제가 부른 2020 도쿄 올림픽 주제가였다. 모르는 곡이라 더욱 집중해서 들었다. 이 첫 곡부터 바로 다음에 이어진 ガーデン(가-덴)까지 홀린 듯이 빠져들어갔다.
그다음 곡은 ロンリーラプソディ(론리 랩소디). 피아노 전주부터 소름이 쫙 돋았다.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하자면, 작년 여름 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 스페인의 한 미술관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며 들었던 곡이다. 그때의 그 햇살과 분위기 속에서 이곡의 진가를 알게 됐었지, 하고 잠시 추억에 잠겼다. 리드미컬한 곡에 맞게 카제가 피아노 꽝꽝 쳐줘서 좋았다. 어딘가에서 카제는 피아노를 드럼처럼 친다는 표현을 봤는데 정말 그렇다.
다음 곡은 Mo-Eh-Wa. 차분하게 불렀다. 중간중간 메세지를 읊조리던 카제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旅路(타비지). 카제가 곡을 부르는 도중에 잠시 울먹였다. 학창 시절의 애틋함, 그리움을 담은 곡. 위로의 말을 전하는 노래 가사에 전주부터 울먹이던 나도 카제가 울 때 같이 울었다.
다음 곡은 Damn. 이 곡부터 댄서와 함께 춤을 추는 무대가 꾸려졌다. 춤추며 노래하는 카제가 행복해 보였다. 그 순수한 미소는 정말 빛이 났다. 이런 댄스곡은 영상으로만 볼 땐 그렇게 신나지 않아서 카제의 하이텐션이 와닿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내가 제일 신났다. 땀이 나서 코트를 벗을 정도였으니.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신나는 곳을 어쩜 저렇게 차분하게 듣지? 의아했다.
へでもねーよ(헤데모네-요). Damn으로 높아진 텐션 그대로 신나게 불렀다. 이 무대를 볼 땐 댄스 곡을 연출하는 방법론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과하지 않은 적당한 조명의 강도, 방향, 색깔 모두.
다음은 やば。(야바). 서정적인 멜로디로 출발해서 후렴구에는 시끄러워지는 곡. 이때부터 계속 홀려있던 거 같다. 좋아하는 곡이든 별로 안 좋아하는 곡이든 중요치 않았다.
YASASHISA. 댄스곡이 끝난 다음 조금 차분해진 무드로 부른 첫 번째 곡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기도 한데 우리 쪽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불러 줘서 행복했다. 애절하고 슬픈 곡. 후반부에 카제가 아- 하고 애드리브를 지를 때 세션 소리가 같이 터져나가는 듯한 연출이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일 줄 알았던 SAYONARA Baby가 다음 곡이었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밝고 희망찬 곡. 카제가 첫 등장 때처럼 자전거를 타고 관객석 사이사이를 누볐다.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손 흔들어 인사해 줬다. 아이 같은 사람이라 느꼈다.
Shinunoga E-Wa. 홍백가합전에서 충격적인 퍼포먼스로 화제가 됐던 곡이다. 그 퍼포먼스가 재연될 것을 알고 들으니 항마력이 조금 딸렸지만 곡은 좋았다. 그런 안무도 당당하고 뻔뻔하게 해내는 걸 보면 역시 보통 녀석이 아니구나 싶었다. 하긴 가사부터가 당돌하다. 죽는 게 나아, 라니. 엔딩에선 카제가 정말 죽는 듯 쓰러지며 곡이 끝났다.
Seishun Sick. 앞 곡에서 쓰러진 카제가 누워서 부르기 시작한 곡. 담백하게 잘 불렀다. 곡명처럼 청춘이었다!
지금의 카제를 있게 한 곡이라고 해도 거창하지 않은 きらり(키라리). 밝은 에너지가 넘쳤던 무대였다. 燃えよ(모에요)까지 흥을 잃지 않고 카제와 함께 신나게 불렀다.
다음 곡은 まつり(마츠리). 일본의 봄이라는 정서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곡. 마츠리라는 단어가 주는 그 느낌 그대로를 표현한 듯한 멜로디가 특히 인상적인 노래다. 콘서트 장에서 들으니 새삼 여기가 일본이구나 싶었다.
grace. 그 무엇보다 카제가 정말 행복해 보여서 좋았던 무대. 그리고 마지막 곡은 何なんw(난난w). 카제가 마지막 곡이니 영상으로 찍어도 좋다고 했다. 나는 이 곡이 가장 카제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난 내 길을 갈 거야. 어떤 선언과도 같았던 마지막 곡과 함께 콘서트는 끝났다.
꿈만 같았던 그날의 기억들.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