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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소연 Jul 12. 2023

바다는 그 설움을

김녕항에 비가 내린다. 거센 비바람은 혹독해서 몸도 정신도 단단히 붙들어 매어야 한다. 백련사로 가는 길목에서 돌무더기 위에 떨어져 죽은 갈매기를 발견했다. 회색빛의 양 날개를 곱게 접은 채 하얀 깃털로 덮인 배를 드러낸 채 허공을 향해 누워 있었다. 갈매기는 왜 해안가도 아닌 이 외딴 들판에 와서 죽었을까. 나는 이 죽음 앞에서 철저히 타자일 수밖에 없다. 오른쪽 가슴팍에 검은흙이 뭉쳐 있었다. 누군가 던진 돌에 맞아 죽은 것일까, 나이 들어 자연사한 것일까, 여행객들이 던져준 먹이를 받아먹다 그들의 발길이 끊기자 굶어 죽은 것일까. 나는 이 동물의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모른다는 것은 나를 무력하게 하고 다만 그 죽음 옆에 가만히 있어 보는 것이다. 


강풍주의보 알림이 뜬다. 초속 20m/s 이상의 바람이다. 패딩과 모자, 우비로 중무장한 나의 몸은 한 걸음을 뗄 때마다 휘청인다. 우리가 어떤 죽음 옆에 가까이 있을 때, 그 죽음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자신에게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설령 그것이 내 어머니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싸늘하게 식은 몸이, 손이, 손가락이 굳어버리기 전에 매만지고 주물러보지만 그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힘에 나는 압도되고 마는 것이다. 어머니의 말은 조현병이란 질병으로 터져 나왔고, 그 말들은 외부 세계에 가닿지 못하고 떠도는 말들이 되었다. 나를 비롯해 아무도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지 못했다. 어머니가 자신을 표현할 적확하고 선명한 언어를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그녀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내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녀의 암호와 같은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을까. 갈매기가 하얀 배를 드러내고 죽은 자세로 어머니는 하얀 배를 드러낸 채 응급실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내가 그 몸을 직접 수습하고 싶었다. 흐트러진 머리를 정갈하게 빗어주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고 얼굴과 목과 어깨, 겨드랑이, 팔, 배, 엉덩이, 허벅지, 다리 사이, 무릎, 정강이, 발, 발가락 사이사이를 닦아주고 싶었다.


나의 발걸음은 벽화가 그려진 마을 골목으로 들어선다. 어떤 벽에는 하얀 파도의 포말이 양 갈래로 갈라지고 그 사잇길로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해녀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망사리와 테왁을 어깨에 걸쳐 메고 두려움 없이 저승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승에서 쓸 돈을 벌기 위해. 해녀들은 이를 두고 칠성판(관) 지고 들어간다고 한다. 숨이 다해 이승으로 올라오면 뼈가 쏙 빠지고 땅이 폭삭 꺼지고 머리는 어지럽고 눈에는 가랑비가 삭삭 온다. 살면서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이 올 때마다 해녀들은 바다에 들어간다. 울면서 소라, 전복, 미역을 캔다. 바다는 그 설움을 말없이 품어준다. 

어머니의 몸은 지상에서 사라졌지만, 나는 내 몸에 그녀의 유산을 지니고 더 큰 어머니를 섬긴다. 더 큰 어머니는 지상에서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와 울음소리를 들으라 한다. 그 대신 말하라 한다. 나는 이제 어머니의 입으로 말한다. 어머니의 신음이 말이 되지 못하고 바람처럼 떠돌 때, 나는 그 말들을 거두어들여 여기에 풀어낸다.      


김녕 궤네깃당


강풍을 뚫고 이십여 분을 걸어 궤네깃당으로 향한다. 400년 된 팽나무 가지에 빛바랜 오색줄이 휘감겨 있어 이곳이 신당임을 짐작하게 한다. 빈터를 가득 메운 노란색 유채와 보라색 무꽃의 가는 허리가 바람에 휘어질 듯 흔들리고 있다. 나무 뒤로 둥그렇게 주저앉은 터가 보이고, 이 터는 돌무더기로 뒤덮여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며 동굴로 이어진다. 타원형의 동굴 입구는 철창으로 막혀 있다. 나는 철창 틈으로 굴속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강풍이 휘돌아 나가며 내는 기이한 소리를 듣는다. 깊고 어두운 곳에서 터져 나오는 누군가의 통곡 소리처럼 바람이 퍼져 나와 나의 우비는 휘장처럼 펄럭인다. 이 신당의 주인이었던 궤네깃또는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용왕의 딸과 결혼한 뒤 제주도의 세변 난리를 정복하고 김녕리에 터를 잡았다. 마을 사람들은 매해 돼지 한 마리를 잡아 궤네깃또에게 제를 올리고 자손의 안녕과 산과 바다의 풍년을 기원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신당 뒤의 삿갓오름이 공동묘지가 되면서 사람들은 집에서 제를 올리게 됐다. 사람들은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 영웅이 된 신에게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제물로 바치고 그것을 나눠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운다. 신의 보살핌 속에 그들은 영혼과 육체에 생명의 기름을 채워 넣는다. 당으로 오는 길목에는 장례식장이 있고, 묘지화된 이 구역은 사람의 발길이 끊겨 을씨년스럽다. 신이 떠난 팽나무는 바람에 지쳐 늙었고, 신도, 사람도 찾지 않는 신당은 쇠락해 간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바람에도 지지 않고 흔적을 간직하는 것들. 바람과 영혼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들. 세계의 질서 바깥으로 내쳐진 것들. 팽나무와 동굴은 기억한다. 이 모든 것들이 먼 데서 비로소 돌아오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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