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녕 동방파제 쪽에 있는 숙소 주변은 육지와 바다의 경계선에 암반 조간대가 널찍하게 퍼져 있다. 11세기 초 한라산 화산이 폭발하면서 바다로 흘러 들어간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졌다. 늦은 오후에 썰물 때가 되면 검은 암반이 더욱 넓게 드러나면서 바다 끝까지 길이 열리는 것 같다. 그 길의 끝에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모여 있다. 바다에 물질하러 가지 못하는 할머니들은 여기서 뭍으로 올라온 우뭇가사리를 건져낸다. 나는 빈터에서 조용히 우뭇가사리를 말리는 할머니 곁에 앉아서 한동안 지켜본 뒤 청굴물 쪽으로 향한다.
김녕 청굴물
청굴물은 용천수가 솟아오르는 물터인데, 돌담을 쌓아 둥그렇게 정비해 놓은 형상이 마치 양수를 품은 여성의 자궁 같다.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게 이어진 돌길은 나팔관의 형상이고, 기다란 돌길을 중심으로 갈라져 고여 있는 용천수는 두 개의 난소와 같다. 용암대지 위에 비가 내릴 때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고 하부에 고여 있다가 해안선 부근에서 물이 솟아 나와 용천수가 되었다. 김녕에는 모래빨물을 비롯한 여러 용천수가 있고, 특히 이곳 청굴물에는 여름이면 유독 차갑고 맑은 물이 흘러나와 사람들이 병을 치유하기 위해 며칠씩 머물다 가곤 했다고 한다. 아픈 사람들이 정화된 물로 몸을 씻고 새롭게 태어나는 곳. 물속에 몸을 담그면 하나의 알처럼 사람을 품어주는 곳.
황금알 또는 황금자궁이란 뜻의 히란야가르바는 힌두교 신 브라흐마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창조의 신으로 불교에서 범천이라 불리는 신이기도 하다. 황금알에서 천 년의 시간을 보내고 태어난 그는 알의 한쪽으로 땅을, 다른 한쪽으로 하늘을 창조한 뒤 바다와 산, 별들을 만들었다. 머리가 네 개 달린 남성의 얼굴을 지닌 그는 이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해줄 여성 신이 필요하여 사라스와티를 만들었다. 그녀는 지혜와 학문, 예술의 여신이 되어 네 개의 손에 베다와 염주, 비나라는 악기를 들고 흰 백조를 타고 다닌다. 두 신의 결합으로 여러 생명이 탄생하는데, 그중에는 악신 아수라와 인간의 조상 마누가 있다.
인간을 낳은 사라스와티는 강의 신이다. 강물의 흐름은 모든 추악하고 무자비한 것들을 정화하고 언어를 창조하여 음률과 찬가가 되었다. 그것은 신들의 비밀스러운 교의가 되어 <베다>로 전해진다. 신의 언어가 인간의 언어가 되면서 그들은 마음속에 신을, 우주를, 세계를 품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노래하며 이 세계와 존재의 비밀을 알고자 한다. 진창에 뒹구는 비천한 삶 속에도 그 너머 고귀한 것의 존재를 염원한다.
인간의 삶이 신성해지는 것은 그들이 삶을 노래하기 시작할 때부터가 아닐까? 자신의 삶 속에 신을 불러들일 때 신은 현존하든 현존하지 않든 그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자기 안의 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구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 사람은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 창조’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