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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소연 Jul 15. 2023

목숨마다 넋 나가게 하지 말고 (2)

매년 음력 3월 8일이면 김녕 해녀들은 용왕에게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잠수굿을 한다. 몸 비린 해녀들은 제의에 참석하지 못하고 제물을 올리는 세 명의 해녀가 3일 전부터 몸을 정갈하게 하고 전복, 소라, 한라봉, 떡, 산딧쌀, 향, 청주, 감주 등을 준비한다. 그 제물들을 무녀가 받아 제상에 올리고 오색천의 용왕기가 세워지면 신들을 초대하는 노래가 시작된다.  

    

김녕 잠수굿 현장(2023.04.27.)


대천 바다 물질 내려가면
머리 짓누르게 맙서
머리 어지럽게 하지 맙서
목숨마다 넋 나가게 맙서
심장 뛰게 하지 맙서
심장 멎으게 맙서

- 잠수굿 ‘용왕맞이’ 노래 중     


무녀의 노래는 신의 당부를 인간에게 전함과 동시에 수중의 넋이 된 영혼들을 위로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에 신의 손길이 닿기를 염원한다. 이 지상에서 허망하게 사라진 존재들이 구천의 바람이 되어 떠돌지 않기를 빌고 또 빈다. 우리는 죽은 이의 존재를 기억함에서 이 세계의 잔인함에 대항할 수 있으므로.      


우리 어멍 나를 낳은 날은
해도 달도 없는 날에 나를 낳았나
요렇게도 힘든 일을 시켰던가
울면서 헤엄쳐 가고, 헤엄쳐 오고

- ‘해녀의 노래’ 중     


나는 어머니에게 내가 태어난 시간을 여러 번 물었지만, 그녀는 언제나 “밖에 해가 없고 아주 어두울 때였어”라고 대답했다. 어머니의 그 말은 나의 축축하고 음습한 운명에 대한 어떤 예감을 하게 하는 말이 되었다. 해녀는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물질이란 고된 노동의 숙명을 자신이 태어난 시간의 운명 탓으로 노래한다. 그녀는 울면서 물질하고 울면서 노래한다. 그녀의 노래가 나에게 전해지는 순간 운명은 더 이상 운명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세상을 관통하면서 움직이는 목숨줄이 된다. 노래는 공명하면서 나의 운명을 통과해 나가고 나의 삶과 그녀의 삶은 연결된다. 이제 우리는 혼자가 아니게 된다.


김녕 잠수굿 서우젯소리 현장(2023.04.27.)


온종일 진행되는 잠수굿의 제차는 서우젯소리에 이르러 절정에 다다른다. 신들을 맞이한 해녀들은 한 해를 무사히 살아낼 용기와 힘을 회복하고 다 함께 신명 나게 춤을 추고 노래한다. 다 같이 덩실덩실 한바탕 놀면서 불턱에 앉아 같이 국수 먹고 불 쬐던 해녀들은 자신들이 한배에서 난 자매보다 더 진한 피를 나눈 자매들임을 확인한다. 이때 무리 중의 해녀 한 명이 허리춤에 바구니를 달고 마당 밖으로 뛰어나간다. 그녀는 바닷가와 마을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좁쌀을 뿌리고 사람들은 징을 울리면서 그녀의 뜀박질을 더욱 북돋는다. 해녀는 신들린 사람처럼 방방 뛰면서 지상에 골고루 씨를 뿌린다. 이를 씨드림이라 부르는데, 이 제차를 통해 해상 무사고와 해산물의 풍요를 기원한다. 해녀는 뛰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자신과 동료들의 고된 삶에도 지복이 내리기를 기도하지 않을까. 서우젯소리를 할 때만큼은 신이 아닌 인간이, 해녀들이 무대의 전면으로 나와 놀이의 중심이 된다. 집단의 유희를 통해 그들은 자신의 슬픔에 갇히지 않고 타인에게로, 바다로, 세상으로, 신에게로 슬픔을 흘려보낸다. 슬픔은 서로에게 다가가서 공명하고 공유되면서 흐르고 흐른다. 그 속에서 슬픔은 투명한 것이 된다.

해녀들이 바닷속에서 숨을 참고 물 밖으로 나와 테왁에 기대어 숨을 뱉어낼 때 그들이 껴안고 있는 테왁은 마치 하나의 알처럼 보인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육신으로 하나의 알을 품고 그것에 기대어 삶을 살아낸다. 테왁은 그들의 목숨줄이고, 파도에 몸이 휩쓸릴 때마다 그들이 저승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지 않게 지켜준다. 그들은 테왁으로 고통과 맞닥뜨리는 존재이다. 나에게도 테왁이 있다면, 그것은 글을 쓰는 일이 될 것이다. 매일의 물질이 매일의 글쓰기가 되어 삶에 대한 허무와 냉소로 가라앉지 않게 해줄 것이다. 나는 그들처럼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더 깊은 곳으로 잠수해 들어간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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