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책방에 앉아 주인과 수다를 떨고 있으면 이상하게 먹을 것이 모인다. 처음에는 이웃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부부가 가져다준 빵이 온다. 빵을 먹으면서 얘기를 하고 있으면 책방으로 한 명의 손님이 들어온다. 머리에 커다란 헤드폰을 쓴 이십 대 여성이다. 그녀가 책방을 둘러보다 우리에게 “뻥튀기 드실래요” 한다. 그러면 그녀도 우리와 합석해서 빵과 뻥튀기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는 취업 준비생이고, 음악을 너무 좋아지만 어떤 일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알려준 아이돌의 노래와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얘기를 하고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리마스터링되어 재개봉 됐을 때 보았던 일련의 영화들에 대한 얘기로 이어진다.
마침 책방에는 내가 퇴사하기 전 마지막으로 편집한 철학 책이 입고돼 있다. 그녀가 이 책을 만드는 데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묻는다. 그러면 나는 책의 편집 과정을 들려주면서 쇼펜하우어의 철학자로서의 면모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면모들을 얘기한다. 이를테면 매일 아침 아트만이란 이름의 푸들을 데리고 산책을 다니고, 『우파니샤드』를 경전처럼 읽었으며, 아버지를 자살로 여의고, 어머니와 갈등하다 의절했던 시간들, 그로 인해 생긴 사랑에 대한 결핍, 여성 혐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괴테를 따랐던 시간들, 그에게 인정받고 싶었으나 오히려 반목했던 시간들, 몹시 강건하고 고집 세 보이는 인상과 달리 동물 학대에 얼마나 괴로워한 사람이었는지 등등.
생각해보니 13년간 책을 만들어 오면서 내가 만든 책을 가지고 독자와 일대일로 대화해본 기억이 없다. 이십여 명의 독자들을 초대해 북토크를 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서 차근차근 얘기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선뜻 이 두껍고 가격 나가는 책을 사겠다고 한다. 나와 책방 주인은 놀란다. 여행 중에 이렇게 무거운 책을 사겠다니...! 주인은 혹시나 그녀가 구매를 후회하지 않을까 하여 인터넷 서점에서 사도 된다고 말한다. 나도 그래도 된다고 거든다. 그러나 그녀는 결정을 바꾸지 않는다. 그리고 나와 주인에게 책의 안쪽에 글을 써달라고 한다.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서 나는 편지를 쓴다.
** 독자님, 안녕하세요, 이 책을 편집한 조소연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출판사에서 제가 마지막으로 만든 책이 되었네요. 오늘 음악에 대한 귀한 이야기 들려주어서 고마워요.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하셨지요. **님의 삶이 음악의 길로 가든 다른 길로 가든 그 길은 00님만의 삶이 될 것이에요.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이 책이 등불이 되어 주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