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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소연 Jul 17. 2023

겉절이와 할머니 (2)

책방 문이 빼꼼히 열리면서 한 할머니가 스티로폼 용기에 든 무언가를 불쑥 내민다. 용기에 갓 딴 상추로 무친 겉절이가 들어 있다. 그것을 들고서 할머니는 머리에 쓴 두건을 밀어 올리면서 수줍게 웃어 보인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어여쁜 미소를 본 적이 없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겉절이를 무쳐서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은 그 마음에서 나는 봄날의 마음을 본다. 두근거림을 본다. 유채꽃처럼 노랗고 말간 마음을 본다. 상추의 푸릇푸릇함 같은 마음을 본다. 주인이 그것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에게 “삼춘 감사해요!”라고 인사한다. 할머니는 우리와 눈을 마주치면서 잠시 웃어 보이고는 느리게 걸어간다. 나는 그녀의 눈에서 시간의 무게를 견뎌온 적막하고 무해한 영혼을 본다. 할머니는 말없이 겉절이를 건네고 이 섬은 아무 조건 없이 나를 품어준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그런 멍청한 짓이 또 있을까
블라우스 소매를 걷어붙이고 비굴한 거리를 마구 걸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선 재즈가 흘러나왔다
금연 약속을 어겼을 때처럼 비틀거리며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탐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몹시도 불행한 사람
나는 몹시도 모자란 사람
나는 무척이나 쓸쓸하였다

-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할머니가 가장 예뻤을 때, 어머니와 같이 잡초를 뽑고 있으면 봄바람이 하릴없이 불어 가슴이 두근댔을 것이다. 가슴이 시려서, 시큰거려서, 설레서, 붕붕 떠서… 육지 순경이 마을에 당도했을 때 할머니는 가장 예뻤을 것이다. 순경의 총부리에 정강이를 얻어맞을 때 할머니는 가장 예뻤을 것이다. 산에서 숨어 살다 마을로 돌아와 어머니, 아버지, 오빠 시신도 못 찾았을 때 바다 앞에 망연히 서 있던 할머니는 가장 예뻤을 것이다. 이웃집 살던 살결 고운 언니가 죽고 없어진 걸 보았을 때 할머니는 가장 예뻤을 것이다. 그 언니가 군경들에게 몸을 내어주지 않아 죽은 걸 알고 숨을 참았을 때 할머니는 가장 예뻤을 것이다. 옴팡밭에서 마을 사람들이 군경들 총에 맞아 쓰러질 때 눈이 뒤집어지고 두 손이 피로 물들어도 할머니는 가장 예뻤을 것이다. 산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폭도라 불렸을 때 할머니는 가장 예뻤을 것이다. 딸 셋, 아들 둘 낳고, 남편 군 갈 때 물질 해서 번 돈으로 차비 대줄 때, 할머니는 가장 예뻤을 것이다. 할머니가 바다 앞에 서서 파도가 잘랑잘랑 들어와 어머니 아버지가 두 팔 벌려 부르는 것 같아 그 바다로 들어가고 싶을 때 할머니는 가장 예뻤을 것이다.**     


4․3 사건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참혹한 폭력 속에 살아남은 뒤에도 폭도, 빨갱이라는 지목을 받게 되는 것이 두려워 자신이 겪은 일을 함부로 발설하지 못했다. 가족과 이웃이 무참히 죽임을 당할 때의 순간은 오래된 영상처럼 머릿속을 맴돌며 그들을 과거 속에 머물게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말은커녕 울음소리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대를 건너오는 동안 엄혹한 어둠 속에 자신을 가두어야만 했다.

트라우마는 우리에게서 목소리를, 언어를 앗아간다. 과거의 기억에 갇힌 사람은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 오랜 시간 침묵한다. 아니 침묵해야만 한다. 그 일을 나의 목소리로 발화하는 순간, 자신의 수치심과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력함과 연약함을 드러내는 순간 타인의 멸시를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맞서야 한다. 그러기에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 발화되지 못한 슬픔은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의 몸에서 변형을 일으킨다. 슬픔은 혈관을 타고 흘러 다니며 감각을 무뎌지게 하고 그것을 언어화할 표현 방법을 차단한다.  

4.3 사건을 증언하는 고완순 할머니는 인터뷰 도중 나 이런 거 자꾸 하면 죽겠어, 자꾸 과거 생각이 나서, 나 이런 거 더 안 하고 싶은데, 하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녀가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의 두려움과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단어 한 자 한 자를 고르며 말하는 그 수고로움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고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 고통의 크기와 깊이를 나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니 들을 수밖에 없다. 그녀가 계속 말해주기를, 멈추지 않기를 바라면서 경청하는 것. 그리고 그 말들을 기억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리고 공부하는 것. 격렬한 고통을 겪은 뒤의 인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고 이해하는 것. 그 공부는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와 그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함을 알고 있다. 자신의 슬픔을 인식하고 이해하기 위한 적절한 언어를 찾고 그것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문장을 형성하고 그것으로 말들의 흐름을 이뤄나가는 과정 속에 있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된 행위임을 안다.     



* 이바라기 노리코 지음, 정수윤 옮김, 『처음 가는 마을』, 봄날의 책, 2019

** 이 이야기는 유튜브 채널 ‘씨리얼’에서 2018년 4월 16일 취재한 신춘도 할머니와 ‘스브스 뉴스’에서 2019년 4월 3일 취재한 김연옥 할머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하였다.

*** KBS 제주 4.3 7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그날’(202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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