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소연 Jun 12. 2023

폭풍의 한가운데에서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사망하기 한 달 전 급속하게 정신을 놓으셨지만, 실상 어머니의 정신은 그 이전부터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어머니의 정신질환은 평생에 걸쳐 진행된 것이었다. 다만 그 과정이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고 그 눅눅한 일상에 젖어 있던 우리는 어머니의 성격이 유별난 탓으로 여겨 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식료품 도매상을 30년간 운영하셨는데, 2000년대 초반에 도매상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이 조그만 가게는 급속히 어려워져 아버지는 빚에 쫓기게 되었다. 부모님은 가게를 쉽게 정리하지 못하고 늘 빚과 이자에 쫓기는 숨 막히는 생활을 몇 년간 지속했다. 아버지는 오빠에게도 돈을 빌렸고 나에게도 돈을 빌려달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사회 초년생인데다 철없이 버는 대로 써버리던 내게 그만한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숨 막히는 생활 속에 어머니는 점차 생기를 잃어 가면서 폭음을 시작했다. 평소에는 가게 일을 보고 장을 보고 저녁상을 차리고 일상을 잘 꾸려나가다 이따금 폭발하듯 폭음했는데, 가게 뒷방에 토사물이 늘어져 있고 박스 더미에 늘어져 누워 있는 어머니를 발견하는 것은 나를 참담하게 했다. 

어머니는 이런 식으로 주기적으로 돌변하여 나에게 충격을 던져주는 일이 몇 년에 걸쳐 지속되었다. 놀라운 것은 어머니가 사회적 가면을 쓰는 기술이었다. 외가 친척들을 비롯하여 어머니의 동창들, 함께 등산을 다니던 사람들, 도매시장 사람들에게 어머니는 미인이고 다정한데다 순수하고 정 많은 사람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어머니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아주 좋았다는 점이다. 이런 면모는 분명히 그녀가 가진 수많은 모습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세상을 향해 내보일 수 있는 가장 밝은 모습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렇게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집에 오면 지인에게서 들은 모욕적인 말을 나에게 늘어놓으며 자신의 자존심이 얼마나 짓밟혔는지에 대해 괴로워했다. 어머니는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매우 민감했고, 집의 크기, 남편의 직업, 자식들의 성공 여부 등이 그녀에게는 아주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그중에서 남편에 대한 부분은 그녀의 가장 큰 콤플렉스였기 때문에 아무도 이 부분을 건드리지 못하게 베일에 싸놓았다. 특히 남편의 학력이 짧은 것은 동창들이 절대로 알면 안 되는 비밀의 성역이었다.  

내가 부모님과 떨어져 자취를 하고 있을 때에 퇴근한 후 저녁 무렵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녀는 술에 취해 있었고, 산에 올라와 있다고 했다. 이미 해가 저물었는데 산에서 술에 취한 채로 전화를 걸다니! 그녀는 두서없이 아버지와 오빠를 원망하는 말들을 늘어놓다가 전화를 끊어 버렸다. 아니, 전화가 끊긴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어머니가 산에서 잘못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어머니에게 수십 통의 전화를 했는데, 밤 10시가 넘어설 때까지 통화가 되지 않았다. 나는 119에 신고하는 수밖에 없었다. 119 상황실에서는 어머니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볼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20여 분 후에 119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어머니와 통화 연결이 되어 확인해보니 그녀가 이미 하산했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어서 빨리 귀가하시라고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119의 전화를 그토록 쉽게 받고 순순히 그 지시에 따랐다는 데에 나는 섭섭함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 어머니의 그런 태도는 평소 군인과 경찰, 구조대원 등 제복을 입은 공무원들을 신뢰한 데서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어머니의 신뢰는 어쩌면 결혼 전 마지막 연애 상대가 군인이었던 데에서 기원하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정신적 기복은 해가 갈수록 더 불안정해져 갔지만, 우리 가족들은 그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채지 못했다. 이 시기에 나는 삼십 대를 통과하면서 질 나쁜 연애와 책 만드는 노동의 고단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폭풍 속을 지나고 있었지만, 나는 어머니와 거리를 둔 채 그녀의 고통이 지나가기를 관망하던 잔인한 관찰자에 불과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영혼의 벽에 금이 간 채 서서히 소리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본인 자신도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