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결혼으로 한 번 떠났던,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나 엄마에게 병고가 닥치면서 외할머니는 이모 네로, 아버지는 살림을 줄여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면서 아주 떠나게 된 옛 집을 20년 만에 찾았다. 안주인을 잃은 집은 더 이상 집이 되지 못하고 내가 자란 터전도 그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는 황망한 기억이 나를 그 세월 동안 가로막고 있었다. 엄마의 다섯 번째 기일을 맞아 도선사에 가는 길, 비로소 기억을 더듬어 골목골목을 찾아들어가니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집은 큰길에서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거기서 다시 휘어져 들어간 곳에 있었다. 집은 분명 그 자리에 있는데 심정적인 자리는 변두리로 더 밀려간 것만 같다.
골목은 어느 한 집 개축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담장이 사라지고 곧게 뻗어있던 계단이 기역자로 구부러지고 광을 허문 자리에 차가 들어서 있을 뿐 그 집도 그대로였다.
대학에 입학하던 봄에 오빠가 입대하면서 오빠 방은 3년 시한의 내 방이 되었다. 서쪽으로 난 창문 밖으로 서늘한 산바람이 불어오는 밤이면 거짓말처럼 소쩍새 우는 소리가 깊게 들렸고 비 온 뒤엔 개구리울음 소리도 크게 들렸다. 바로 옆의 숲이 주던 청량하고 서늘한 내음이 스물 초반 나를 채우던 공기였다. 그 창문이 그 크기 그대로 낡아있다. 안방 전화기 위, 대문 밖에 누가 왔나 내다보던 좁고 기다란 창도 그대로이고 창틀 너머로 각지게 내민 큰 창문도 그대로이다.
처마 밑은 유행이 한참 지난 옥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있다. 살다 떠난 집의 쓸쓸함과 사람이 깃들었다가 나간 자리의 말할 수 없는 허전함이 그 빛에 있다. 물론 그 집엔 사람이 산다. 광을 허물고 바닥을 고른 자리에 치우침 없이 서있는 승용차가 깔끔한 비닐로 덮여있는 것을 보면 주인은 단정한 사람일 것이다.
허문 담장 안으로 차마 발을 디디지 못한 채 열 발자국쯤 멀리 서서 옛 집을 바라다본다. 사람이 떠난 자리는 지저분하거나 슬프다. 나의 옛 식구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던 모습이, 11월의 스산한 가을 저녁 마당에 놓인 큰 김치 통에 빨갛게 버무려진 채 쌓여있던 김장김치와, 그 옆에 중무장을 한 엄마와 이모의 뒷모습이, 옆집 아줌마가 장독대 너머로 제사 음식을 건네주던 모습이, 장독대 위에 하얗게 나부끼던 이불 홑청이, 그리고 깊은 밤 창문을 열고 숨을 들이쉬면 가슴속까지 들어오던 숲의 찬바람과 소쩍새 소리가 눈앞에 있다.
그리운 옛 집. 가슴 아픈 옛 집아.
2018년 5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