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잼은 원래 투명하지 않다

by Soyeon Kim

"너희 엄마 맛있는 거 많이 해주셨는데."

고등학교 적 친구는 나를 만나면 조금 부러운 얼굴로 말하곤 했다.

설핏 웃었다. 우리 엄마는 아픈 사람이었는데. 다 자라지도 않은 내 위로가 필요하던 사람이었고 절대적인 믿음으로 딸을 의지하여 내 어깨를 하염없이 무겁게 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때 나는 누구보다 위로가 필요했는데.


남편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장항으로 떠났다. 어머니의 조기 위암 수술-내시경 점막 절제술이니 시술이 맞다-을 한 달 여 앞두고 오랜만에 고향으로 향한 것인데, 애들 어릴 적에 다 함께 다녀오고 나서 처음이니 대충 20년 만이다. 마음은 온 세상을 누빌 만큼 열정적인 어머니는 이제 여든이 훌쩍 넘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고향을 그리워하신지 꽤 되었다. 속없는 며느리는 그런 어머니를 붙잡고 어머니, 고향에 한 번 다녀오세요. 친구분들 계시잖아요. 안 보고 싶으세요? 속 깊은 척 이런 세대 착오적인 말이나 해댔으니 나이는 어디로 먹었나 모르겠다.

"여보, 어머니 모시고 가는 거니까 제발 속도 좀 내지 말고. 콱콱 밟지 말고."

"알았어."

길이 그리 막히지 않는 계절에 아침 일찍 길을 떠난 모자는 저녁 늦게야 서울로 돌아왔다.

"어머니 멀미 안 하고 잘 다녀오셨어? 어때, 좋아하셔?"

"응. 좋아하시지. 근데 엄마가 제일 멀쩡하시더라. 다들 집 밖에도 못 나오셔."

"장항은 어때?"

"그렇지 뭐. 옛날 집에 가봤는데, 공장이 되어 있더라. 모습이 간데없어."

그러면서 남편은 들고 온 비닐봉지를 식탁에 올려놓곤 텔레비전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구깃구깃한 봉지를 들춰보니 고구마 몇 개와 두 모자가 늘 그리워하던 고향 앞바다에서 난 박대 여남은 마리, 그리고 작은 딸기잼이 들어있었다. 본래 젓갈을 담았던 병이었는지 다른 잼병이었는지는 몰라도 씻어서 다시 쓴 게 분명한 작은 유리병에 조금 탁하고 검붉은 색이 도는 잼이 하나 가득 담겨 있었다. 잼을 조심스레 손에 쥐고 뚜껑을 여는 순간, 늘 피곤을 못 이겨 누워 있을 때가 많았고 내가 기쁘게 해 주면 안 될 것 같은 책임감에 늘 버겁기만 했던 엄마가 별안간 푸르스름한 타일 싱크대 앞에서 긴 주걱을 열심히 젓는 모습으로 저 까마득한 과거에서 돌아왔다.

"이 잼 어디서 난 거야?" 나는 흥분해서 물었다.

"어머니 친구분이 만들었다며 주시던데."


봄이 되면 엄마와 이모는 과일장수에게서 상품 가치가 별로 없는 값싸고 자잘한 노지 딸기를 한 관 사들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단내가 진저리 나도록 풍기는 부엌에 들어서면 엄마가 불 에 서서 긴 주걱으로 큰 대야에 담긴 딸기잼을, 아니 딸기와 설탕을 젓고 있었다. 간식은 먹고 싶은데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괜스레 주변 탁자며 의자에 코를 비벼대는 고양이처럼 나는 내 눈높이에서 벌겋게 닳아 올라 조만간 밑이 뚫리고 끈적한 딸기잼이 주룩 흘러내릴 것만 같은 대야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오락가락했다. 종일 단내가 진동하고 한참 많았던 딸기와 설탕물이 서서히 본래의 형체를 잃고 뭉그러지고 뒤섞여 끈적한 형체로 졸아붙을 즈음이면 엄마는 깨끗이 씻어서 말려둔 멕**하우스 커피 병 여러 개를 싱크대 위에 늘어놓았다. 드디어 잼이 다 고아진 것이다.


양이 처음의 반도 안 되게 졸아붙은 것이 안타까워 죽겠으면서도 잼이 바닥에 뚝뚝 떨어지면서 차례차례 병에 담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병에 담긴 딸기잼은 본래의 선홍색이 아니라 검붉고 탁했다. 아아. 나는 유리컵 숟가락을 들고 기다렸다. 저 들통인지 대야인지의 바닥에 눌어붙은 잼은 이제 내 차지다. 아니, 그건 엄마와 이모가 주걱으로 긁어먹은 것 같고 나는 아마도 마지막 병을 미처 다 채우지 못한, 그래서 만만해 보이는 잼을 노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걸 숟가락으로 푹 떠서 컵에 담고 찬물과 열렬히 섞었다. 세상 제일가는 천연 딸기 주스를 제조한 것인데, 그 후로 숱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먹어봤냐고, 그게 얼마나 맛있는지 아느냐고 코를 벌렁거리며 떠들어대도 하나같이 탐탁지 않아하거나 새겨들으려 하지 않았다. 숟가락 놀림을 따라 잼과 딸기 씨가 옷에서 풀린 실오라기처럼 물속에서 회오리치는 것을 바라보는 재미와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처럼 몽올 거리며 물속을 날아다니는 딸기를 씹는 맛은 그냥 나만 아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몇 시간의 노동에도 미처 뭉그러지지 않은 딸기를 씹는 맛은 짜릿했고 눌어붙은 딸기에서 나는 화독내도 농도 짙은 단맛 때문에 싫지 않았다.


제과회사에 다니던 아버지는 겨울이면, 검수 과정에서 정량에 못 미치거나 정량을 넘었다는 이유로 출시되지 못한 음료수를 집으로 두어 상자씩 가져왔고, 그럼 그 보배와도 같은 탄산음료는 마당 한편에 있는 광에서 겨울을 나며 오빠와 나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몹시 추운 날이면 행여라도 병이 얼어 터질까 봐 우리는 광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하루에도 몇 병을 없앴다. 그 옆에선 엄마가 들통으로 하나 가득 만든 식혜가 살얼음에 갇힌 채 함께 겨울을 났다. 그러나 그 시절 보배와도 같았던 이 두 음료는 내 기억에 광문을 열면 늘 놓여있던 광경으로만 남아있다. 현관에서부터 진저리 나도록 단 냄새로, 그리고 종일 졸아붙기를 기다리느라 지루하고도 흥분된 기억으로, 줄줄이 늘어선 커피 병에 가득 담긴 풍요로움으로, 시중에 파는 그것보다 백배는 달콤하며 향기로운 기억으로 남은 것은, 무엇보다 이제 내 곁에 없는, 늘 내가 버팀목이 되어야 해서 버겁기만 했던 엄마를 친구의 기억에서처럼 몇 시간씩 공들여 우리 남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었던 엄마로 되살려준 것은 이 검붉고 탁한 딸기잼이다. 그때도 지금도 딸기잼은 내게 엄마의 음식일 뿐, 서양에서 온 단 것이 아니다.


잼 병을 식탁에 내려놓고 빵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일부러 버터인지 트랜스지방인지가 왕창 들어서 보들보들한 식빵을 사 와서 딸기잼을 아주 두껍게, 듬뿍 발라 먹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미처 못 한 말을 떠올렸다.

'엄마, 그때 엄마가 만들어준 잼 정말 맛있었는데. 어딜 가도 그런 맛은 없더라. 이렇게 맛난 걸 많이 해준 엄마였는데 그건 다 까먹고 날 힘들게 한 기억만 붙들고 있었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딸기쨈1.jpg

2019년 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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