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악보를 손에 쥔 어린 시절부터, 악보를 들여다본 지 한 시간이 되면 음표며 가사가 어른어른하는 지금까지 나는 합창을 해왔다. 제대로 된 발성법을 끝내 터득하지 못해 두 시간을 연습하고 나면 늘 목이 쉬지만, 누군가가 이제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는 아마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충고는 꼭 귀담아듣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있다. 그건 내 노래가 소음이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노래에서 긴 호흡은 오랜 과제인데, 발성법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이루지 못할 것 같다. 함께 합창을 사랑하고 오래도록 노래해온, 그러나 영원한 아마추어인 단원들은 서로를 워낙 잘 알기에 스스럼없이 떠든다.
"난 긴 호흡이 안 돼. 두 마디마다 숨을 안 쉬면 죽을 것 같거든."
"그래서 내가 합창을 좋아하잖아. 여럿이 번갈아 숨을 쉴 수 있어서."
당당히 떠드는 것도 모자라 낄낄거린다. 너도 나랑 똑같구나. 아, 맘 편해. 이런 동질감이 주는 웃음일 것이다.
오래 함께한 사람들이라 노래 중에 누군가가 숨을 쉬지 않아야 할 곳에서 숨을 쉬면-그것도 티 나게- 대번에 누구 소행인지 알아차리고 여기저기서 피식거린다. 그러나 몇몇이 피식거리고 중얼거려도 합창은 쉬 중단되지 않는다. 불협화음의 소음으로 시작해서 오랜 연습 끝에 비로소 네 성부가 조화로운 화음을 빚어낼 때의 희열은 합창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순간순간 짜릿함을 느낄 때가 있다. 바로 번갈아 숨을 쉬어가며 긴 음을 아슬아슬 이어갈 때, 특히 그 음의 크기와 강약이 균일하게 유지될 때이다. 다만 그렇기 되기까지는 긴 인내와 오랜 협업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나를 죽이기'가 요구된다. 합창을 하면 '나를 죽이는 경험' 정도가 아니라 '나 죽이기의 일상화'가 가능하다. 내가 어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건, 내 소리가 남들이 다 인정해주는 꾀꼬리이건 그곳에서는 나를 철저히 죽이고 함께 한 소리를 내고 호흡을 맞추고 드러나지 않게 번갈아 숨을 쉬어야 한다. 번갈아 숨을 쉬되 그 음을 같은 크기와 강약으로 유지하려면 흔적 없이 사라졌다가 흔적 없이 나타나는 신공이 필요하다. 그 괴로운 자기 단련의 시간에 미쳐 우리는 20년 넘게, 길게는 30년이 훨씬 넘게 매주 일요일 저녁에 모여 여름이면 에어컨 바람을 들숨 날숨으로 삼켜 실내온도를 가열하고 겨울이면 히터 열기로 건조해지는 목을 연신 물로 축이며 듣기 싫은 노래를 아름다운 노래로 바꾸기 위해 용을 쓴다. 거기에 내 돈까지 들인다. 내 돈을 들여 합창하는 것이 얼마나 당당한 일인지 다들 잘 알면서도 늘 겸손히 주눅 들어 노래한다. 주눅이 들면 보다 쉽게 자기를 죽일 수 있고 누군가의 손끝에 완벽하게 놀아나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게 된다. 어쩌면 끝없이 스스로를 죽이고 불협화음에 진저리 치면서,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노래를 계속하면서 우리는 다른 의미의 긴 호흡을 이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의미의 긴 호흡도 합창에선 크게 어렵지 않다는 사실이다.
글에도 긴 호흡이 있다.
"서양에는 길게 쓰인 문장, 깊이 있는 문장들이 있었고 역사적으로 그런 선배들이 있었기에 헤밍웨이와 같은 작가가 나올 수 있었다. 따라서 그런 배경이 없는 우리는 먼저 긴 문장을 쓰는 훈련을 해야 한다.... 짧은 문장에만 익숙했던 독자들이 긴 문장을 만나면 당황하는 것 같다."
- 박상륭
내가 하는 SNS 계정에 어느 분이 인용해서 올린 글이다.
의욕에 불타 가열하게 번역에 매진하던 시절, 계약 조건에 따라 새 책을 맡으려면 매번 A4 석 장 정도의 샘플 번역을 제출해서 출판사와 에이전트의 심사를 거쳐 역자로 선정되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한 번은 거의 한 단락에 버금가는 길이의 문장과 맞닥뜨린 적이 있는데, 당황스러운 것은 그것이 한 두 군데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우리 글과 대체로 어순이 거꾸로 쓰인 영어가 수없는 쉼표로 끝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진땀을 흘려가며 비로소 문맥을 이해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한 문장으로 옮겼다. 긴 문장을 순차적으로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은 고통스러웠고 그 과정에서 수없는 회의에 시달렸다. 나는 재능이 있는가, 이게 정말 제대로 하는 것인가, 내가 하는 이 행위는 작가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그렇게 샘플 번역을 제출하고 얼마 뒤 에이전트에서 이런 답변이 왔다.
'문장을 끊어달랍니다. 가독성이 떨어져서 안 된대요."
온전한 몸체를 토막 내 달라는 이야기였다. 내 결과물에 대해 자신감보다 낯부끄러움이 앞서면서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작가가 이 일을 알면 얼마나 분통해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한편 진즉 말했으면 이 고생 안 했을 텐데 하는 괘씸한 마음도 들었다. 작가가 그 문장을 그렇게 길게 늘인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테고, 그런 문장이 책 속에 수시로 등장한다면 그 책은 필시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문체는 작가의 영역이고 그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나는 만연체의 글은 만연체여야 할 이유가 있으며 긴 문장이 지닌 힘과 장대함을 짧은 문장으로 그려낼 수 없다고 믿는다. 이제 눈도 손목도 예전 같지 않아 또 다른 긴 호흡을 유지해야 하는 책 번역에서 다소 멀어졌지만, 그때 그 책을 원문 그대로 길게 옮겨달라고 했으면 비록 내가 죽을 고생을 했더라도 그 출판사를 존경했을 것 같다. 책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때 난 역자로 선정되지 못했던 듯하다. 나는 좋은 우리 글은 꼭 필요한 자리가 아니면 쉼표를 찍지 않는다고 배웠다. 쉼표 없이도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긴 문장을 쓰는 힘을 기르고 싶다. 이래저래 내게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