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내겐 외부의 바이러스보다 더 진심으로 걱정하고 집중해야 할 작은 생명이 있었다. 다섯 살짜리 고양이이다. 함께 어미에게 난 두 언니에 비해 몸집이 왜소해서 얼마 못 가 죽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악착같은 식탐을 무기로 살아남아 5년 전 우리 가족이 되었다.
어미를 꼭 닮아 차도녀인 아이는 늘 우리와 50cm 거리를 좁히지 않았고 밥 달랄 때 외엔 우리를 찾는 법도 없었다. 문득 생각나서 찾아보면 이불속에 흔적도 없이 녹아있거나 침대 밑 구석에서 두 눈을 반짝이며 노려보고 있었다. 접근을 시도하는 식구들의 손등과 팔목에 깊지는 않되 쓰라린 보복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 살이 지난 뒤로는 어지간한 장난감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고양이가 보통 그렇듯 새 것을 보여줘도 5분 정도 반응하고 그만이어서 우리도 열렬히 놀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다섯 살이 되어가던 작년 봄, 해마다 봄이면 잠시 피부염을 앓던 앞다리에 예외 없이 분홍 속살이 드러나고 상처가 생겼다. 자기 혀로 핥아 생긴 상처였다. 그리고 이 상처는 1년 내내 아이와 우리를, 더 정확히는 가장 가까운 집사인 나를 괴롭혔다. 엄밀히는 고양이 자신이 가장 힘들었겠지만.
자식을 키울 때도 일상이었던 시행착오는 이 아이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나은 듯하면 도지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주려고 천으로 넥 칼라를 만들어 입혀주면 어느새 허점을 찾아내 그 까끌까끌한 혓바닥으로 다 나아가던 상처에 벌겋게 피를 내놓는 일이 반복되었다. 처음부터 장악하지 못한 대가로 약을 먹이는 과정에서 겪는 혼돈과 실패의 반복. 그와 함께 진행되는 설사의 연속. 여남은 개에 달하는 넥 칼라를 시도하고 번번이 좌절하다 결국 플라스틱 밖에는 도리가 없어 최대한 모서리가 부드러운 것을 찾아 소형으로 시작해서, 중형 대형까지 풀 세트를 갖추게 되었다. 아이는 가려운 부위에 입이 닿지 않자 핥는 부위가 발목으로 번졌고, 그것도 막히자 이젠 발바닥을 핥아 분홍색 이쁜 젤리를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더 큰 넥 칼라를 찾아 목에 끼울 때마다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그루밍이 본능인 고양이에게 목에 큰 칼을 씌우는 것만 같아 괴롭고 마음 아팠다. 아이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 중에도 먹는 것만큼은 악착같았다. 줄곧 이 병원 저 병원을 드나들었지만 확장된 알레르기, 즉 아토피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만 들을 뿐 난치병이라 궁극적인 치료법을 얻을 수가 없었다.
자식들을 다 키운 지금,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왜 이리 고달프고 애달퍼야 하는가. 1월에 시작된 싸움은 중구난방으로 치료와 실패를 거듭하며 10월 중순까지 이어졌고 내 속도 함께 피폐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