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고양이 상냥이
시장이 재밌다.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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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고객인 어린이의 마음을 사로잡자.
시장에 사는 고양이 상냥이가 있습니다. 조금 삐뚤어졌지만, 목에 하얀 나비넥타이 무늬가 있고요. 시장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아함, 잘 잤다."
상냥이가 기지개를 켭니다. 하루가 시작되었네요.
누굴 만나는지. 어디에 가는지. 또 무얼 하고 노는지. 자 이제부터 상냥이를 따라가 볼까요?
상냥이가 방문했던 가게들입니다. 모두 실제 있는 가게를 모델로 했어요.
올챙이국수를 처음 보았습니다. 항아리에 국수가 보관되어 있고요. 국수를 떠 그릇에 담고 양념장을 올리면 뚝딱 한 그릇이 만들어집니다. 전 여기서 메밀 배추전도 처음 보았고요. 매콤한 무채가 든 메밀전병도 처음 맛보았습니다. 다 근처에서 팔고 있어요.
제가 방문한 날 간판 속 할머니는 안 계셨어요. 아무래도 따님이신 듯, 맞나요?
초기 스케치에는 국숫집이 붐비도록 사람을 가득 그렸어요. 그러나 상냥이가 열 시 반쯤 찾아가는 곳이라, 하는 수 없이 손님을 줄였습니다. 밖에 벗어 놓은 신발도 몇 개 지웠고요. 그래도 많아 보이죠? 장사가 잘 되길 바라는 제 마음입니다.
잡곡 찾아보느라 시간을 좀 썼습니다. 저는 쌀, 보리, 서리태 정도만 알고 있었거든요. 막연히 알던 잡곡을 정확히 그려야 했고요. 또 색까지 조화롭게 보이게 하려고 하니 공부가 필요했어요. 렌틸콩-갈색류, 녹두-연두, 강낭콩-밝은 갈색류, 팥-적색, 차조-올리브색 이렇게 체크하면서 스케치했고요. 외에도 율무, 기장, 수수, 들깨, 참깨, 그리고 아마씨, 메조, 메주콩, 완두, 찰흑미 등이 위에 그려져 있습니다. 휴~. 물론 햅쌀, 보리, 서리태도 있고요.
처음에는 상냥이와 덩치 고양이가 사납게 맞서는 모습으로 스케치했었어요. 냥이가 등을 부풀리고 털을 세우면 귀엽고 재미있잖아요. 그러나 글작가님의 도움말로 조금 온순하게 바꾸었습니다. 어린이 독자들이 무서워할 수도 있으니까요.
자료 조사차 글작가님과 시장에 방문했을 때예요. 한복집에서 이것저것 묻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렇게 정겨워 보이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집에 계신 할머니에게 색이 고운 한복을 선물해주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귀여운 손자 손녀에게 색동 한복을 맞춰주고 싶은 것일까? 둘 다일지도 모르고.'
글작가님이 말했어요.
"저 두 분을 꼭 책에 담고 싶다."
그래서 그대로 담았습니다.
상냥이는 한 살 남짓한 수컷이고요. 딱 호기심 많고 말썽도 피우는 나이예요.
'상냥이가 시장에서 어떤 말썽을 피울까?'
저는 고양이 네 마리를 키우는 집사 무수리입니다.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고요. 전화가 온다던지. 커피 물이 끓는다던지. 작업 중에 잠깐 자리를 비울 때가 있거든요. 그 사이 하쿠, 요다, 진저, 진용이 중 하나가 책상 위로 펄쩍 튀어 오르고요. 문제는 책상 위에 물감이 그대로 있을 때예요. 어김없이 녀석은 물감을 밟고 지나갑니다. 그리던 그림을 안 밟고 지나가면 다행이고요. 발바닥 젤리에 물감을 잔뜩 묻힌 채, 귀신같이 저를 피해 도망 다닙니다. 맞아요, 우리 집 고양이가 제일 똑똑할 때에요. 저는 온 집에 찍힌 발바닥 도장을 뒤쫓으며 지우고 다녀야 합니다. 엄청 욕하면서요.
글작가님께 제안했지만 쓰이지 않은 에피소드 중 하나예요. 자료조사도 에피소드도 많이 모은 후, 책의 분위기와 흐름에 맞게 자르고 버무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오른쪽 파란 양복 조끼를 입고 계신 분이 이발소 할아버지입니다. 올해 85세, 시장 제일의 어른이시고요. 꼬마 냥이 졸졸이에게 도움을 주지요.
이발소에 방문했을 때, 할아버지는 말끔히 양복을 입고 계셨습니다. 건강하셨고요. 가게는 단정하고 깨끗했어요. 가게 한쪽에 검은 연탄이 쌓여 있어 인상 깊었습니다. 아직 연탄난로를 사용하고 계시더라고요. 할아버지의 단골손님들은 거의 돌아가셨다네요. 그래도 일이 좋아서 계속하신다고 합니다.
골목들이 미로같이 좁고 헛갈려서 미로 시장인가요? 저는 갈 때마다 헤매게 되는데요. 헤매느라 시간을 보내는 곳, 그래서 더 재밌는 곳 같아요.
1층이 전통 재래시장의 모습이라면, 2층은 개성 넘치는 예술시장이에요. 1970년대 지어진 시장 건물을 조화롭게 잘 살려내고 있었습니다. 옛날 창문은 오히려 보기 좋았고요. 칙칙한 벽과 바닥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어두울 수 있는 골목과 천장에는 밝은 등이나 나비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고요. 그래서 한결 산뜻해 보였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예술이 공존하고 있어 더 운치 있어 보인다고나 할까?
처음 방문했을 때 저는 시장에 '또 가고 싶다'라고 생각했어요. 세 번 방문만에 '여기서 살아보고 싶다.'라고 생각했고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2층 미로 예술 시장의 빈 가게를 아주 저렴히 빌릴 수 있더라고요. 집에 계신 고양이들만 아니라면 흠...
참고한 가게 이름은 정확히 쓰지 않았습니다. 가게가 문을 닫거나 바뀔 수도 있고요. 또 그림책에 소개되지 않은 가게들이 서운할 수 있으니까요.
원주 다이내믹 댄싱 카니발에 온 타이완 팀 공연을 참고했습니다. 시장에서 공연도 볼 수 있다니. 내년 공연이 기대가 됩니다.
이 장면은 글 없이 펼침 화면으로 그렸어요. 상냥이와 졸졸이가 함께 보는 공연. 한마디로 클라이맥스!
눈치채셨나요? 그동안 졸졸이가 상냥이 뒤를 쫓아다녔다는 것을요. 앞 페이지에서 졸졸이의 조각을 찾아보세요.
북 카페에 매번 갔습니다. 폰 충전도 편하고 조용해서 오랫동안 앉아 있었어요. 안으로 들어가면 이층 다락방이 있는데요. 책의 15장면을 다락방으로 설정했다가 피아노 때문에 1층으로 바꾸었습니다. 앞에 수예점 언니가 나와서, 도서관 언니를 아주머니로 바꾸었고요. 상냥이와 졸졸이를 챙기는 아주머니도 잘 어울리죠?
제가 주장했던 표지 손글씨입니다. 알록달록하죠? 아쉽게도 검은색 제목으로 갔지만요. 만들어놓고 보니 상냥이 털색 같은 검은 제목도 마음에 들어요.
오른쪽은 썸네일이에요. 스케치 전에 이렇게 전체를 그려보고 분위기를 잡아봅니다. 썸네일에서는 그림이 작으니까 수정이 쉬워요. 책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막 시작했을 때에는요. 수정하는 일이 힘들어서 이 단계가 부담스러웠는데요. 지금은 이렇게도 그려보고 저렇게도 바꿔보기도 하는 이 썸네일 작업이 즐겁습니다.
전체 썸네일을 살펴보면요. #9 상냥이가 자는 장면이 빠졌어요. 클라이맥스가 다가오는데 좀 늘어지는 느낌이 들어서요. 빠진 뒤 장면부터 앞으로 이동. 상냥이를 쫒는 졸졸이를 두 장면으로 만들어 시장을 더 보여주었고요. 도서관 카페는 두 장면으로 줄였습니다. 저녁 무렵, 상냥이와 졸졸이가 함께 시장의 명물인 밝은 등을 바라보는 장면이 책의 마지막입니다.
"미로 예술 원주 중앙시장에 상냥이가 진짜 있을까요? 졸졸이는요?"
실제로 시장에 고양이가 많이 있어요. 고양이를 챙기시는 분도 계시고요. 운이 좋으면 고양이 벽화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해주는 포토제닉한 냥이도 만날 수 있습니다. 상냥이와 졸졸이는 시장에 사는 고양이들을 모델로 했어요. 딱 한 마리가 아니에요. 똑같은 고양이를 만난다면 저에게 연락 좀 주세요.
한 권의 책을 만든다는 것은 글작가, 그림작가, 디자이너, 그리고 출판사의 협동이 필요한 일입니다. 이렇게 나온 책이 맘에 들 때. 아~, 이 배부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죠? 이 만족감을요. 고생한 건 다 좋은 기억으로 바뀝니다. 또 같이 작업했던 사람들끼리 돈독 해지고요. 진짜 선물이지요.
상냥이를 따라 걸어 보세요. 미로 예술 원주 중앙시장을 더 재밌게 돌아볼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