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하퓨탈레
사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하찮은 것을 위해서라도
세계일주를 하지 않을까?
<80일간의 세계일주> 쥘 베른
30분 동안 버스를 타고 담바텐 티 팩토리에 갔다.
거기서 립톤 싯 매표소까지 2시간을 걸어 올랐다. 끝이 아니다.
매표소에서 립톤 싯 정상까지 가파른 길을 40분 더 올라야 했다.
오르고 내려오는데 12킬로미터가 넘는 길이었다.
하루에 10킬로미터는 간단히 걸으며.
'천천히 한 발 한 발 걷는 건 할 수 있어!
그래, 천천히 조금씩 쉬지 않고'라고 생각했다.
내려오는 길은 한결 가뿐했다.
차 밭을 바라보다가 색연필을 꺼내 그림을 그렸다.
가까이서 차 잎을 따던 사람들이 나를 보았다.
한 명이 다가왔다.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노트를 살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누군가 내 그림을 보는 이 순간이 늘 부끄럽다.
다른 사람 둘도 다가왔다. 뒤로 와서 그림을 구경했다.
처음 다가온 사람이 그림 속 사람을 가리키며 자기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뒤에 있던 동료에게 이건 너라고 알려주었다.
좋아하신다. 다행이다.
셋은 밭 가장자리에 서서 자세를 취했다.
"나를 찍어요."
하퓨탈레가 좋아 4일 동안 머물렀다.
혼자서는 비용 때문에 엄두가 안 나던,
그러나 이름 때문에 꼭 가보고 싶었던 호튼 플레인즈 국립공원에도 다녀왔다.
자그마치 '세상의 끝' 이라니!
공원에는 중국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왜? 걷다가 친해진 중국인 커플에게 물었다.
중국과 스리랑카는 외교적으로 가깝다고 했다. 비자 없이 올 수 있다고.
커플이 말했다.
"명동에 놀러 갔었어. 사람들에게 말을 걸면 영어 못한다며 자꾸 피하는 거야."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못해 놀란 눈치였다.
드라마에서 모두 멋지게 나오니 얼마나 실망했겠는가.
떠나는 날 단골 식당 직원이 큰 배낭을 메고 가는 나에게 인사했다.
"안녕, 잘 가요."
크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어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