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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묘 Feb 19. 2023

넌 여기서 슈퍼스타구나!

미얀마 바간

당신 몸이 뜨거워지지 않도록
저 아이들이 해님의 그늘을 만들어 주는 거라고요.
- 후지와라 신야 <동양기행>


내가 여행지를 고르는 예감은 문학에서 오는 듯하다. 

이 이야기가 나를 따라다녔다. 

그래서 미얀마! 

작은 그림자로 그늘을 만드는 아이가 있는. 기쁘다. 

논과 나무들 사이에 우뚝한 수많은 불탑들
다양한 크기의 탑들


바간의 파고다

다음날 전기 오토바이를 빌렸다. 

지도를 보며 올드 바간을 돌아다녔다. 

주로 존이 앞장서 달렸고. 길치인 나는 뒤를 따랐다. 

계획은 없었다. 파고다가 보이면 들렀다. 

아주 작은 파고다가 좋았다. 

한쪽이 무너진 파고다도 있었다. 

동굴 벽화가 예쁜 파고다 앞 초록 들판에는 염소들이 무릎을 꿇고서 풀을 뜯고 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우뚝한 파고다들. 

또 한적한 흙길을 달리는 기분이란. 느리고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해 지는 쉐산도 파고다에서

해 질 무렵 쉐산도 파고다에 올랐다. 

이곳에서 보는 저녁놀이 최고라니. 

주차장에 대형 관광버스가 서고 많은 여행객들이 파고다로 모이고 있었다. 

난 미리 좋은 자리에 앉았다. 

기다리며 스케치를 해본다. 

사람들이 주위로 와 그림을 구경했다. 

난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척했지만. 그림을 멈추지도 못하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옆에 앉은 존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사람들이 모두 네 그림을 보고 있어."


버스에 가득 앉은 아이들
머리에 꽃 장식을 하고 탑에서 기념품을 파는 아기엄마

머리에 들꽃 장식을 한 여자가 다가왔다. 

파고다에서 기념품을 파는 사람이다. 여자가 수줍게 물었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요."

다나카를 바른 볼에 큰 웃음이 피어났다. 

"주몽에 나온 송일국에게 여자 친구가 있어요? 진짜로 멋있어요?"  

기념품을 소개하는 건 잊었다.

"이민호는 여자 친구가 생겼나요? 김나나는요?"

잠깐 있어보라더니 달려가 친구들을 데려왔다. 

다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이었다. 

친구들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미얀마 사람들은 수줍다. 아직 호객이 수줍다.

"송일국은 세 쌍둥이의 아빠예요. 주몽은 오래전 드라마거든요. 이민호는 여자 친구가 생겼어요."

내가 대답했다. 야박했나?

다른 파고다에서도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이 나에게 모여들었다. 

여자들은 한국 드라마와 배우들에 대해 물었고. 

그때마다 존은 호객꾼들의 관심 밖이었다. 

멀찍이 서서 기다려야 했다. 

존이 부러워하며 나에게 말했다.

"넌 여기서 슈퍼스타구나!"


탑들의 나라


노을을 뒤로하고 숙소로 향했다. 

왼쪽 길로 들어가야 하는데, 길을 못 찼겠다. 

다시 오토바이를 돌려 찾아보았지만, 그 구부러진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길을 잃었다. 

마침 전조등이 깜박깜박. 우리의 전기 오토바이는 충전이 필요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지나는 사람도 없었다. 

언제 시동이 꺼질지 몰랐다. 존은 자신을 타박했고 나는 조마조마 뒤따라갔다.

맞은편에서 불빛이 보였다. 오토바이였다. 

앞뒤로 아이를 태운 아주머니였다. 다행이었다. 

우리는 뉴 바간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아주머니는 오른쪽 길을 알려주었다.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이었다니. 우리가 단단히 착각한 모양이었다.

길은 저수지로 향했다. 이상했다. 아니다 싶어 다시 돌아왔다. 그사이 날이 깜깜해졌다. 

지나가던 오토바이가 섰다. 또 그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우리를 몰라보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저주지 길을 알려주었고. 그렇다. 아주머니는 호객꾼이었다. 

저수지가 보이는 비싼 식당과 좋은 호텔에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저수지에서 보았던 러브호텔 때문에. 

또 두 아이의 엄마가 호객꾼이라는 사실에. 

엄마 뒤에 앉아 있던 아이가 우리를 알아보았다. 

여덟 살 돼 보이는 남자아이였는데, 손짓으로 엄마 대신 길을 알려주었다. 

아주머니는 당황해하며 떠났다. 

오르막 길이 나오자 시동을 껐다. 끙끙 끌었다. 

내리막에서는 천천히 달릴 수 있었다. 

길을 찾았고, 오토바이를 빌린 가게의 불빛이 보이자 안도했다. 

아이가 가르쳐 준 길이 맞았다. 겨우 숙소에 돌아왔다.


존은 쿤밍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선생님답게 쉬운 말로 나에게 이야기했고, 내 가난한 영어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감사! 

그럼에도... 영어로 하루 종일 이야기하는 일은 피곤한 일이었다. 

존과 함께하는 건 하루면 충분했다. 

난 존과 함께하지 않기 위해 다음날 뽀빠산 투어를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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