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마닐라 / 14년 전 여행
인트라무로스에서 한 거지 여자가 다가와 좁은 길을 못 지나가게 했다.
그와 몸이 안 닿으려고 이리저리 피하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가려는데... 내 모자를 휙 채갔다.
순간 번쩍 드는 생각.
'내가 아끼는 모자!'
'머리 눌린 채 이대로 못가!'
벌써 저만치 가 있는 여자에게 'HEY! 소리치며 달려가
그의 손에 든 내 모자를 잡는데
이 여자, 모자를 못 잡게 이리저리 흔들며 날 좀 놀린다.
내가 모자를 꽉 움켜쥐자 그는 안 놓으려고 힘을 좀 쓴다.
내가 강하게 잡아끌자 뚝 놓친다.
꼭 모자를 뺏으려는 건 아니었을 듯.
낚아채서 달아나면 내가 잡을 길이 없었으니까.
내가 포기하면 갖고 아님 말고 뭐 그런 태도.
여행 첫날이라 많이 놀랐다.
마닐라 소문도 나빴고...
그렇게 물건과 돈을 낚아채면 당할 길이 없겠다 싶고...
한편 나보다 미치고 여윈 여자인데
난 왜 마주쳤을 때 피하려고만 했나 싶다.
재미있는 건 내가 미친 여자와 실랑이하는 모습을 지켜본 마부가
마차를 끌고 따각거리며 다가왔다.
저 여자 미쳤다고 손가락을 자기 머리 위에 놓고 뱅뱅 돌린다.
"괜찮아?"
안부를 물어주니 반갑고 고맙다.
그러나 깔레샤는 인트라무로스에서 가장 악명 높지 않았던가.
아니다 다를까 본심을 드러낸다.
"맘, 어디 가요? 맘, 맘, 어디 가요?"
마차에 나를 태우기 위해 따라온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영업한다.
"노~우!"
난 웃으며 의사를 분명히 하고 내 갈길 간다.